"아빠, 사느라 수고하셨어요. 고통스러웠던 세상은 잊고 편히 가세요."
이 한 마디를 왜 못 했을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엄마한테 전화가 왔다. 그날은 아들 친구들과 밤을 지새운 다음날이었다. 아들 친구 엄마한테 밤 11시에 전화가 왔다. 내일까지 조별과제를 제출해야 하는데 아들이 보내준 영상을 편집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이들이 밤늦게 몰려왔고 아들은 영상을 편집하고 나는 맥도널드 햄버거를 사서 날랐었다. 밤을 새우고 몽롱한 하루를 보내서 일찍 잠자리에 들려는 참이었다.
아버지께서 며칠 전부터 잘 안 드신다고 해서 장어탕을 사서 보내드렸었다. 한 번이라도 더 찾아가 뵐 걸 그랬다. 멀거니 누워만 계셨던 아버지다. 엄마랑 갈 때마다 부딪히는 게 싫어서 엄마가 없는 시간에 찾아갔다. 추석을 일주일 앞두고 있었지만 아직 더위가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해 여름은 참 더웠다. 더위에 지치고 일에 지친 나는 아버지를 찾아갈 기력이 없었다. 9년째 병석에 누워계신 아버지는 점점 죽음을 향하고 있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찾아뵀었는데 왜 그 마지막 한 달 동안은 아버지한테 가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아버지가 아직 따뜻했다. 정신없이 병원에 울면서 도착했던 거 같다. 아버지는 커튼에 가리어진 채 혼자 누워계셨다. 차가운 흰색 타일과 스테인리스 기구들이 가득한 공간에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아버지는 늘 혼자였다. 장례 절차를 밟기 위해 엄마는 집으로 갔다. 아버지의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얼굴색은 점점 더 어두워져 갔다. 아들은 멀찍이서 할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눈을 감고 계신 아버지한테 무슨 말을 전해야 할지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하염없이 눈물만 쏟아졌다. 아빠, 편히 가시라고. 이 세상에서는 고생 너무 많이 했으니까 저 세상에서 좋은 것만 누리고 사시라고. 다시는 이승에 오지 마시라고. 속 많이 썩여서 죄송했다고. 사랑했다고. 하지만 말이 터져 나오지 않았다. 목이 막혔다. 점점 식어가지만 아직 따뜻한 아버지의 손과 팔을 잡고 울기만 했다. 한참을 서서 아버지 곁에서 울기만 했다.
마지막 인사를 못 한 게 늘 마음에 걸렸었다. 살갑게 따뜻한 말 한마디 못 하는 딸이었는데 가시는 순간에도 내 입은 얼어붙고 말았다. 입이 딱 붙어서 떨어지질 않았다. 울음 끝에 나오는 흐느낌조차 입 밖으로 새어 나오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남아있는 감각이 청각이라는 것을 들었다. 그래서 부모가 돌아가실 때 가족들이 마지막 인사를 하면 좋겠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아버지의 온기가 남아 있었을 때 귀도 열려있었을 텐데 끝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버지를 마지막으로 보는 순간, 당신은 아름다웠다. 세상의 끈을 놔버려서인지 맑고 고운 얼굴이었다. 아버지가 병원에서 퇴원하셨을 때 아버지는 밤새 사경을 헤매곤 했다. 내가 이렇게 아픈데 어딜 가요? 아버지는 밤마다 데리러 오는 저승사자와 실랑이를 벌였다. 어느 때는 돌아가신 할머니도 오셨다고 했다. 허공을 휘저으며 아버지는 너무 아파서 같이 못 간다고 했다. 병원에서도 아프다는 말 한마디 안 하던 아버지였는데 저승에서 온 영가들한테는 솔직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9년을 누워 계셨다. 고통을 벗어난 기쁨이었을까? 아픔도 삶의 고통도 아버지에게 남아있지 않았다. 주름 하나 없이 활짝 펴진 아버지의 얼굴이 평온했다. 아버지는 분홍빛으로 밝게 빛났고 돌아가신 분 같지 않았다. 아버지를 보내드리는 슬픔은 없었다. 기쁘게 아버지를 보내 드릴 수 있었다. 깨끗하고 평화가 가득한 아버지의 모습은 처음 보았다. 살아계실 때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모습을 당신을 보내면서 보았다.
10년 전 추석을 5일 앞두고 당신은 소풍을 마쳤다.
귀천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