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짝사랑이다. 사춘기 시절에도 이십 대, 삼십 대에도 이런 짝사랑을 해 본 적이 없다. 이렇게 애달픈 적이 없었다. 마음을 다 하고 혹시나 나를 미워할까 노심초사한다. 참 못난 어미다.
도대체 내가 왜 이렇게 애타하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다. 전생에 아들한테 지은 죄가 많은가 도무지 모를 일이다. 아들의 표정을 살피고 혹시 나 때문에 기분이 상했나 별 쓸데없는 생각을 하곤 한다. 안부 전화가 없어도 서운하고 어쩌다 전화가 오면 반갑다. 저 아쉬울 때 오는 전화가 분명한데도 전화기에 아들 이름만 떠도 기분이 풀린다. 이렇게 얄팍한 마음으로 아들을 섬긴다.
나도 부모에게 전화하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아들 전화를 기다리는지 모를 일이다. 엄마한테 전화 오는 것을 귀찮아했는데 아들의 귀찮아하는 목소리가 역력하면 나는 섭섭해한다. 부모한테 연락도 안 하고 나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살았는데 아들한테는 안부전화 안 한다고 섭섭하다는 문자를 한다. 아버지는 나한테 전화를 안 하셨다. 혹시나 음식을 불에 올려놓고 전화받느라 잊을까 봐 걱정이셨다. 아이 보느라 바쁜 내가 안부 전화 한 통 안 해도 아무 말도 안 하셨는데 난 왜 이런지 모르겠다.
병원이란다. 아버지가 교통사고가 났는데 집으로 아무리 전화를 해도 연락이 안 됐다고 했다. 일을 한다고 바깥일이 한창 바쁠 때였다. 집에 들어가는 둥 마는 둥 했다. 밤새 회의를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일하느라 퀭한 눈을 하고 날이 환하게 밝은 아침에 집으로 돌아올 때가 많았다. 아버지는 집에 계시지 않았고 남대문 새벽 도매시장에서 머플러를 만들어 팔던 엄마도 집에 없었다. 텅 빈 집에 갑자기 전화벨이 울렸다. 아버지는 집 전화번호만 알고 계셨다. 황당함에 병원으로 달려가보니 아버지가 동네 산책을 나오셨다가 버스에 치였다는 거다. 그것도 하루 전에 말이다. 참 무심한 딸이었다. 그런 내가 아들한테 전화오기를 이렇게 바라면 안 되는 거다.
요즘 아들은 열심히 산다. 듣기만 해도 기특하고 어쩌다 저네 집에 가서 밤늦게 돌아오는 아들을 보고 안쓰럽기도 했다. 아픈 아들을 찾아갔다가 왜 자주 오냐고 핀잔만 들었다. 지난 학기 시험기간부터 연달아 바쁜 아들이 걱정됐는데 결국 몸살이 나고 말았다. 싫은 소리 할 줄 알면서도 국을 끓이고 고기를 사고 홍삼을 사들고 아들한테 달려갔다. 제 몸이 힘드니 짜증이 심하다. 엄마니까 나한테 짜증부리겠지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결국 화가 나서 싫은 소리를 퍼붓고 왔다. 호기롭게 나와서는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낸다. 줏대도 없는 엄마가 되고 만다.
아들이 바쁘대서 대신 일을 처리해 줬는데 고맙긴커녕 오히려 귀찮아하는 말에 기분이 상했다. 아들이 너무 얄미워서 이모한테 털어놓으니 "자식이 다 그렇지"라고 한다. 아쉬운 걸 알아야 고마운 눈치라도 보이겠지 싶어서 용돈을 줄여볼까 뭐 해달라고 하면 해주지 말아야지라는 치사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행여 부족하지는 않을까 앞서서 미리미리 해주고는 오히려 내가 섭섭해 투덜거린다. 고맙다는 말 안 한다고 핀잔을 주던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고맙다는 말을 나도 하기 싫어했는데 고마운 척을 안 한다고 아들한테 심통을 부리고 싶어지는 나다. 자식을 키우면서 어른이 되기는커녕 애랑 씨름하는 내가 우스워진다.
얼마 전부터 아들한테 서운한 마음이 안 들도록 얘기하기로 했다. 아들이 어려서는 어디 놀러 갔다 오면 꼭 내 선물을 사 왔다. 고마운 마음은 한가득인데 그걸 제대로 표현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괜히 쑥스러우니까 뭘 이런 걸 사 왔냐고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몇 년 전에 친구들과 일본 갈 때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니까 진짜 단 한 개도 안 사 오고 저 먹을 과자만 사 왔는데 그게 섭섭했다. 알아서 해주길 바라면 더 섭섭해진다. 열아홉 살 아들은 엄마 생일이라고 케이크를 멋쩍게 전해주었는데 군대를 다녀오고 복학을 하더니 아들은 마음이 바빠서인지 엄마 생일도 잊고 산다. 말 안 하고 혼자 기대하다가 실망하기 싫었다. 괜히 섭섭해져서 구시렁거리기 싫었다. 차라리 선물을 달라고 말하기로 했다. 작년 생일은 당뇨 전단계니까 케이크 말고 앞치마를 사달라고 했다. 그때는 같이 살았는데 며칠을 얘기한 끝에 받았다. 올해는 따로 사니까 문자로 보냈다. 내 생일이니까 이거 사달라고 화면을 찍어 보냈다. 다음날 '지금 봄'이라는 문자와 함께 선물을 보냈다는 카톡 문자가 도착했다. 엎드려 절을 받고 섭섭해하지 않기로 했다.
돌아보면 나는 참 무심하고 무뚝뚝한 딸이었는데 아들한테 참 바라는 것도 많다. 제 앞가림 잘해나가는 아들을 묵묵히 응원하고 싶은데 가끔 옹졸한 엄마로 바뀌곤 한다. 내 마음이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