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회는 작은 생명 하나에도 쉽게 마음을 건넨다. 길가에서 굶는 고양이를 보면 불쌍하다는 말이 먼저 나오고, 물그릇 하나를 놓는 일에는 큰 이유가 필요하지 않다. 연민은 빠르고, 반응은 즉각적이다. 그런 감수성이 일상의 공기를 이루는 사회다.
그런데 동시에, 한때 국가의 얼굴이었던 존재에게 사형이라고 하는 가장 극단적인 처벌의 언어가 공공연히 오르내린다. 책임을 묻자는 압력과 분노의 방향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런 말이 생각할 틈도 없이,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가 연약한 생명 앞에서는 한없이 조심스러워지는 태도와 같은 장면 안에 놓여 있다는 점이 묘한 간극을 만든다.
이 장면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지점이라기보다, 지금 이 사회의 공기가 어떤 결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풍경에 가깝다. 작은 생명 앞에서는 가벼워지고, 큰 이름 앞에서는 가장 무거운 언어가 호출되는 그 온도 차이가, 설명 없이 같은 화면 안에 놓여 있다. 연민과 단죄가 서로를 밀어내지 않은 채 공존하는 모습이, 한동안 그대로 남아 있을 뿐이다.
사진: Unsplash의Andriyko Podilny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