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 없이 흘러간 시절이 있다.
망하지도 않았고, 크게 흔들리지도 않았다.
요즘처럼 버텼다는 말이 인사가 되는 시기에,
굳이 꺼내어 말할 사건이 없다는 사실은
묘하게 안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루는 다음 하루로 이어졌고,
선택은 늘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되는 쪽에 머물렀다.
그 시절의 나는
힘들지는 않았지만,
어디로 가고 있는지는 말하지 못했다.
그 시간들은 우리를 보호해 주었지만,
어느 방향으로도 이끌지는 않았다.
질문이 필요 없었고,
그래서 방향도 생기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삶의 방향이 또렷해졌던 순간들은
대개 편안하지 않았다.
상처가 있었고, 설명이 무너졌고,
그래서 선택을 피할 수 없었다.
어쩌면 문제는
나를 흔들었던 순간들이 아니라,
아무것도 묻지 않았던 시간일지도 모른다.
그 시간들은 우리를 망치지 않았지만,
어디로 데려갔는지는 여전히 분명하지 않다.
그래서 지금,
이 질문만 남는다.
상처 없이 흘러간 시간들은
과연 우리를 어디로 데려갔을까.
사진: Unsplash의Aleksandr Ledogoro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