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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남 May 05. 2024

검은 바탕에 그려진 글.

읽지 않는다. 본다.

"It's like we've forgotten who we are, Donald."

"Explorers, pioneers, not caretakers."


크리스토퍼 놀란의 영화 ‘인터스텔라’의 대사다.

메세지는 간결하다.


사람은 눈으로 보는 세상을 그저 믿

지구상의  동물[One of Them] 불과하다.

그러나, 동시에 영장류[Primate].


<으뜸가는> 지구상의 한 동물.


눈으로 세상을 판단하면서도,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검은 도화지 속 가능성의 그림을 눈으로 볼 수 있도록 구현해 낼 수 있는 존재.


인터스텔라 과학의 언어(기호, 수식)로만 표현될 수밖에 없었던, 까만 세상에서만 그리던  무엇을 눈의 세상으로 연출해  작품이다.


수십억 인구의 지구에서 한 남자를 독보적인 영화감독으로 자리매김하게 한 그의 능력은, 어쩌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지닌 것이 아닐까.


글자는 그림이다. 검은 바탕에 새겨진.


'글이 그림이라니, 이게 무슨 개소리야?'

'글은 98% 흰 바탕에 쓰여 있는데?'


글 [Writing] : 어떤 생각을 일정한 형식에 따라 글자로 나타낸 것. 시·소설·수필·희곡·일기·편지·논설·신문 기사 등 일정한 내용을 담은 모든 기록을 두루 이르는 말. 세는 단위는 줄·편


과연 그러할까?

보는 습관에 가려진 진실을 쫓아가보자.


글의 탄생은 '사람들이 알아보기 위한 기호'에서 출발했다.

보다 쉽고 빠르게 그림을 기억하고, 전달하기 위한 것.


눈과 뇌는 전기 신호를 주고받는다.

그러므로 글이란 읽히는 것이 아닌 '보기 위한' 약속된 기호들의 연속이다.


타이포그래피를 보며 '세상 쓸모없는 기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누구나 보기 좋게 디자인된 글을 부정하지 않는다.


눈을 감아보자.


세상이 온통 검다.

그곳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보았다.

이제 기호들로 보기 좋게 표현한다. 그것이 글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전달한다.

그런데, 그것을 본 사람들이 이해를 하지 못한다.

그들의 머릿속에 명확하게 떠오르게 할 수 없다.

그래서, 더 보기 좋은 영상으로 연출해 낸다.


크리스토퍼 놀란 같은 영화감독의 역할이다.


글의 시작은, 검은 바탕 위에 그려진 그림이었다.


우리는 그저 본다.

글을 본다.


'보기 좋은 글'

'보기에 불편함이 없는 글'

'보기에 어렵지 않은 글'

'보면 기분이 좋아지는 글'


글의 시대가 저물어간다.

과학기술의 '눈부신' 발전 덕분이다.


인간은 보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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