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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다남 May 17. 2024

주부라서 쪽팔려요.

당당하지만 부끄러운

179cm, 72kg, 30대, 주부다.

그리고 남자다.


이 사실을 글 뒤에 숨어서야 밝힐 수 있는

비겁한 사람이다.


한국에서 기대하는 남자의 성 역할은 분명하고

아주 오랜 시간 '한국남자'를 증명하려고 애썼다.


그러나 집안 살림을 훨씬 잘하는 남자다.

사업 고객의 컴플레인만큼이나

주방에 있는 세제 브랜드, 성능, 향기에 민감하다.


와인을 사랑한다. 그래서 와인바도 했었다.

향기가 어떻고, 저떻고 다 좋다. 좋은 순간에만 누릴 수 있는 무용함을 사랑한다.


늘 당당한 척 신념을 말하면서도

마음속 아주 깊은 곳에서는

부끄럽고 숨고 싶었다.

‘한국 남자'답지 못해서.


어렸을 땐 몰랐다.

"너, 그거 재주다? 여자랑 편한 대화가 되는거."

어린 나는 그저 "그래요? 그런가.." 정도로만 여겼다.


와인 바에서 사람을 상대할 때도 모른 척 했다.

"여자들의 공감 중심의 대화를, 내가?"하면서


그래, 나는 쪽팔렸다.

남자답게 행동해야만 한다는 세뇌의 결과물.

스스로를 외면하고 ‘남자라면’ 해야 할 일을 쫓았다.


그러나 이제 당당히 밝히며 살 것이다.

나는 본능적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성 역할의 경계는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

여성이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은 어마무시하고

충분히 여성은 사회에서 두각을 드러내고 있다.

이내 곧, 머릿수로 버티던 남자들은 밀려난다.

하루빨리 인정하고 고개 숙일 마음의 준비를 해두자.


나는 더 이상 쪽팔리지 않다.

내가 보통의 남자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제는, 글 뒤에 숨지 않을 것이다.


나는 주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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