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끝에서 만난 나
이모가 물었다
"그러면, 살은 어떤 방법으로 빼려고 하는데?"
나는 잠시 숨을 고르고 말했다.
"이모가 전에 말했던 약이요. 그거 한번 먹어보려고요."
이모도 기억나지요? 제가 다이어트 3번 성공했던 거요.
중학교 시절 이모랑 같이 운동 다녔을 때, 결혼하기 전 그리고 작년에도...
죽을 만큼 노력해서 10킬로 즘 빠졌었잖아요.
아쉽게도, 요요가 어김없이 찾아왔지만요.
이번에는 약을 먹어보면서
블랙홀 같은 요요를
이기는 방법을 찾아보려고요
세 번의 다이어트와 세 번의 요요,
나의 다이어트는 언제나 기승전 요요라는 완벽한 서사를 갖추고 있었다.
마음이 아프지만 요요의 이유를 떠올려 본다.
중학교 때는 학교 일정이 바빠져서 운동을 그만두었을 때 찾아왔고,
결혼 전의 다이어트는, 결혼 후 바로 임신으로 이어졌다.
작년에는 디스크가 심해져 운동을 쉬었더니 어김이 없었다.
이모가 알려준 병원은 한때 번화했던 구도심에 있다. 어릴 때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근처였다.
주차장이 따로 없어 병원 옆 골목에 차를 주차했다.
희끗희끗한 머리의 의사 선생님이 금빛 안경테 너머로 눈을 치켜뜨며 나를 보았다.
"왜, 약을 먹고 살을 빼려고 하는데요?!"
노력 없이 쉽게 살을 빼려는 사람을 보는듯한, 진회색 말투였다.
기분이 유쾌하지는 않았지만, 의사 선생님의 서늘함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초등학교에서 병원까지의 거리는 몇 걸음이 안되었다.
하지만 이곳에 들어오기까지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에게 나는, 다시 안 만날 수도 있는 환자들 중 한 명이지만 나는 절박했다
돈을 내면서도 눈치를 살펴야 하는 내 모습이 혼란스러웠지만,
속으로 짧은 한숨을 삼키고 나서 약간의 미소를 띠었다.
그리고 지금까지의 다이어트 분투기를 짧지만 간절하게 말했다.
"혼자서는 불가능한 요요를 이번에는 극복해보고 싶어서요.
저 나름대로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찾아왔어요"
"다이어트 약은 처음 먹는 거니까, 먼저 반알을 먹어 보고 괜찮으면 한 알 먹는 건 어때?"
이모의 말이 떠올라 약을 반으로 잘랐다.
약의 크기는 여느 알약들보다 작았다. 반알만 먹어서 효과가 있을까?! 싶었지만
처음은 언제나 조심스러운 법이니, '내 몸의 반응을 살피는 게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모를 부작용이 걱정되기도 했다. 하지만 60대인 이모가 복용했을 때 이상이 없었고,
효과를 보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다음 날 아침, 약을 삼켰다.
그런데 점점, 아주 독한 몸살감기약을 먹은 듯 머리가 멍해졌다.
식욕이 생기지 않는 게 아니라, 정신이 몽롱해서 먹는 걸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약을 먹으면 물이 당긴다는 말을 들었지만, 나는 금붕어가 되어 물을 계속 삼켰다.
2리터 즘 들이켰을까? 입마름 증세가 조금씩 나아졌다
슬펐다, 나는 다이어트 약이 맞지 않는 사람이구나.
'아... 절벽 앞이다. 더 이상 물러날 곳은 없다...'
절벽 위 잿빛 구름 틈으로 한 줌햇살이, 고개 숙인 아이에게 비추었다
내가 숨길 수 있는 가장 깊은 곳,
생각조차 하기 싫어서 심연에 묻었던 것이 서서히 떠올랐다.
저녁 금식이라는 다짐
늘 싸던 점심 도시락을 준비하며, 도시락을 하나 더 챙겼다.
허기를 덮어줄 단백질셰이크도 잊지 않았다.
퇴근길 차 안에서 그 도시락을 이른 저녁으로 먹었다.
때때로 늦은 오후, 간식으로 먹은 날도 있었다.
여분의 도시락 안에는 양배추나 사과, 닭가슴살 샐러드 같은 가벼운 음식들이 들어 있었다.
누구에게나 처음은 있다. 늦은 밤의 배고픔은 아주 조금씩, 잦아들었다.
그리고 '이건 내방식일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켠에 스며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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