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다이어트, 시작
초등학교 때였다. 새 학년이 되어 학교에 갔다.
담임선생님이 몇 가지 이야기를 전한 뒤 말씀하셨다. "자, 이제 번호를 정할 거예요. 모두 복도로 나가서 키 순서대로 줄 서세요."
50여 명이 한꺼번에 나가, 서로의 머리 높이를 살피며 줄을 섰다. 나도 함께 나갔지만 줄보다 먼저, 조용히 실내화를 벗어서 신발장에 넣었다.
키가 큰 순서대로 서면 나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든다. 내 키로는 어쩔 수 없이 맨 뒷줄에 앉아야만 한다.
하지만 나는 뒤가 아닌 그 앞줄, 혹은 두줄 앞을 더 좋아했다.
최대한 키가 작게 보이려 무릎을 살짝 구부렸다. 조심히 절뚝 걸음을 걸으며, 친구의 키를 살폈다.
앉은키 때문에 뒷사람에게 방해가 되는 것은 낮은 의자에 앉으면 됐다.
50여 명의 뒷자리에 앉기는 무엇보다 싫었다.
수업을 할 때 앞이 잘 안보이기도 했지만,
단지 뒷줄에 앉았을 뿐인데... '호위병이 되어서 아이들을 지키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이 들만도 한 것이, 물건을 나르거나 힘을 써야 하는 일이 생기면 "뒷번호부터 10명 나오세요"라고 했다.
게다가 어릴 때부터 살집이 있는 편이었다.
5학년 때 키가 지금과 크게 차이가 없는 데다가 살까지 쪘던 것이다.
"키가 크다"라는 말과
성인이 된 후에도, 조금만 엄살을 피우는 듯해 보이면
"소도 때려잡을 것 같이 생겼는데 왜 그래?",
"뭐든, 다 잡아먹을 것 같은데..."같은 말들을 들었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왜, 그렇게 기분 나쁜 말을 함부로 하세요? 혹시 단점을 지적받으면 기분이 좋으신가 봐요?
남의 단점을 아무렇지도 않게 말씀하시는 것을 보니까요!"
그렇게 말해봤다면, 덜 힘들게 성장할 수 있었을까?
사춘기가 다가오면서, 키가 크고 살이 찐 나를 일컫는 인격적인 모욕의 말과 시선에서 멀어지고 싶어,
점점 내 안으로 깊숙이 들어갔다.
몸은 성인이 되었지만, 마음은 아직도 초등학교 복도 위에 서 있었다.
누군가의 무심한 한마디에, 실내화를 벗은 아이가 고개를 떨궜다.
얼마 전의 일이었다.
친한 동료에게 'B커피숍에서 파는 팥빙수가 가격이 저렴한데도 맛있다'는 걸
알려주려고 커피숍에 갔다. 점심시간이 끝날 무렵, 팥빙수를 들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같은 사무실의 남자 동료가 빙수와 내 얼굴을 힐끗 보더니 말했다.
간식을 좋아하게 생겼네요
불쾌함이 올라왔다. '살을 빗대어 말하는구나...'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레 짐작이 되었지만,
공연히 분위기를 무겁게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무안함을 깨고 싶어 말을 이었다.
"에이, 날씬한 A 동료도 간식을 정말 좋아하던데요.
저는 생각보다 간식을 많이 안 먹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A는 잔근육이 많더라고요!"라고 대답했다.
아마도 그에게 운동을 알려주다가, 잔근육이 많다는 걸 알게 된 모양이다.
잔근육이 많은 사람과 나, 둘 다 외모로 평가를 했구나...
이성에게 외모평가를 듣는 것도 힘든데, 괜한 말을 보태서 비교까지 덤으로 받았다.
예고 없는 날벼락이 떨어지니 당황스러웠다.
외모 평가는 결국 인격을 향한 공격이다
듣는 사람에게 매번 처음인 듯한 충격을 남긴다
친한 사람이라면 서로의 마음을 대략 알고 있으니, 한 번 정도는 웃어넘길 수도 있다.
하지만 가깝지 않은 사이에서의 그것은, 갑자기 날아온 강펀치를 맞은듯한 느낌이었다.
'나랑 가까운 사이도 아닌데, 이런 말을 할 자격이 있나?'
퇴근하는 길에, 평소 믿고 따르던 *나미이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기 너머로 이모 목소리가 들리니, 어린아이가 엄마에게 이르듯 낮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
"이모, 이성에게 몸평과 함께 비교를 당했어요, 기분이 너무 나빠요!
아무래도 다이어트 시작해야겠어요." 이모는 내편일 거라 믿었다.
"기분 나빴겠네! 그런 사람이 다 있니?" 같은 말을 기대했다.
그런데 이모가 조금도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건넸다.
그 사람한테 고맙게 생각해
그 말 안 들었으면, 살 빼려는 마음을 안 먹었을 거잖아
그 순간, 화를 내던 내 머릿속 반대 편에서
‘댕—’ 하고 종 같은 소리가 울렸다.
아주 커다란 타종봉이, 화를 내던 머리의 반대쪽을 세게 친 것 같았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화도, 고마움도 아닌 어떤 것이
머릿속을 묘하게 흔들었다.
*나미이모: 성경의 나오미에서 비롯된 이름. 따뜻하지만 냉철하고,
인생의 본질에 대한 깨달음과 울림을 주는 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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