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동안 커트 머리를 고수해 왔다
계절 앞에 서면 늘 미세한 것들이 달라지곤 한다
햇살의 온도, 바람의 모양, 공기에 실린 냄새들
그런 것들의 변화는 아주 미미하지만,
나는 언제나 그것들을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편이었다
그래서 계절이 시나브로 바뀌기도 전에
마음은 이미 달라진 공기를 느끼며
어느새 다음 계절의 기운 속으로 스며가곤 했다
공기에 섞여 떠다니는 것들이 달라지면
마음의 방향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았다
그날도 그랬다
바람에 익숙하면서도 낯선 냄새가 묻어있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문득 머리 스타일을 바꾸고 싶어졌다
다만 전과는 조금 다른 내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엔 파마를 해보면 어떨까?
오래전 직장생활을 처음 시작하던 무렵에 한번 했었는데,
문득 그때의 여릿했던 기분이 스치듯 지나갔다
오랜만이었다
나를 꾸며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을 조금 간질였다
살이 빠져서라기보다,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닌 나의 일상에
변화를 주고 싶었다
그렇게 늦여름이 지나갔다
파마머리는 어느새 내 머리스타일처럼 자리를 잡았다
손끝에 닿는 감촉은 여전히 어색했지만,
이상하게 그것이 싫지 않았다
머리를 바꾼다고 모든 게 달라질 수 없었지만
그것은 변화를 예감하고 있던 내 마음이
조용히 보내던 신호는 아니었을까?
그즈음, 마음이 조금씩 멀어지고 있었다
어떤 일들은 여전히 손에 익었지만 그 익숙함조차 나를 지치게 만들었다
사무실의 공기, 점심시간의 대화,
그리고 무심한 말투하나에도 마음이 예민하게 반응했다
그때는 몰랐다
머리를 바꾸는 일보다 훨씬 큰 변화를
내가 스스로 선택하게 될 줄은
계절이 가을로 접어들자 공기의 숨결도 달라졌다
아침 공기가 차가워지던 날, 나는 저울 위에 올라섰다
조금은 다른 나를 만날 줄 알았다
그런데 숫자 앞에 서면, 여전히 예전에 내가 남아있었다
저울에 오르기 전 숨을 죽이고, 가디건을 벗어두었다
0.5키로의 차이에 마음이 흔들렸다
살이 빠지면 마음도 스르르 가벼워질 줄 알았다
몸이 가벼워질수록
마음은 오히려 더 조심스러웠다
그때 문득 알았다
마음의 무게는 몸보다 뒤늦게 떠나는구나
그래도 괜찮다
나는 늦어도 멈추진 않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