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지 않는 유지법

by 마음산책

쿠키는 10개월 때 대전에서 데려온 파양견이다


처음 우리 집으로 데려오던 날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착한데 예쁘게 품에 안기는 녀석을 보면서

'세상에 이렇게 예쁜 강아지도 있구나' 싶었다


강아지는 주인과의 이별을 순간을 본능적으로 안다고 한다

집에 데려온 후 한동안 잠을 못 이루고 불안해했다

데려오기 전부터 강아지 입양을 공부 했고, 이후에도 관련된 책과 프로그램을 찾아보며 배웠다


우리 집에 적응하게 하려고 매일 산책을 시키고,

유치원에 보내 강아지들과 놀게 해 주었다

그렇게 파양의 기억 위에 덮을 시간을 모았다


그러던 어느 날, 쿠키가 내 품에 조용히 기대어 잠들었다

그렇구나


유지한다 는 말은 힘겹게 버티는 게 아니라
서로에게 마음을 기대 보는 건 아닐까


쿠키와 사람들이 출근하는 옆으로 산책하며 익숙한 길을 걷는다


쿠키는 냄새를 맡으며 새로움을 담고, 나는 기억의 파편들을 내려놓는다

흙냄새와 바람소리, 나뭇잎 사이로 마음의 조각들이 손을 내밀어 그림처럼 이어졌


갑자기 떠오르는 장면이 바람에 흩어질까 봐,

나는 요히 벤치에 앉아 숨을 가다듬었다




3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때 우리 집의 형편은 4년제 대학에 보낼 만한 여유가 없었다


서울에 있는 학교는 부대비용이 많이 든다며 엄마가 만류하셨지만,

운이 좋게도 가까이 있는 대학에 장학금을 받고 들어갔다


기숙사 생활을 하며 낭만과 꿈,

'대학'이라는 보호막 안에서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어'라고 되뇔 만큼 행복했다


그런데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에 큰일이 생겼다

기숙사 방에서 전화기를 붙잡고 우는 날이 늘어갔다


엄마는 울음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휴학하고, 가정에 좀 도움을 주면 어떻겠니..."


많이 고민했다

'가족이니 도와야지' 싶어 휴학원서를 들고 학과사무실을 찾아갔다

그런데 선배들이 입을 모아 말했다

"학교를 나가면, 다시 돌아오기는 정말 어려워"


엄마처럼 눈물을 닦으면서 생각했다

'내가 지금 정말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


결국 나는 마음을 정했다

엄마의 눈물을 뒤로하고

대학을 졸업해야겠다


내 인생이 언발의 오줌누기가 되면 안 되었다


힘들게 들어간 대학을 뒤돌아 나올 수는 없었다

집을 도울 진짜 방법은,

지금은 학업을 이어가는 것이라 믿었다


얼마 뒤 미등록으로 인한 퇴학예정 통보서가 날아왔다


교수님들이 내 상황을 들으셨

나를 아껴주시던 교수님은 전공 책과 함께 격려금을 담은 봉투를 건네주셨다


친구는 자신이 받은 서관 근로 장학금을 내밀며 말했다.

"우리 집은 형편이 좋은 편이니까, 이거로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어"

동아리 간사님은 누군가가 빌려주셨다며, 학비의 남은 부분을 채울 수 있을 만큼의 도움을 주셨다


하루가 마지막 날인 듯 소중했다

내 것이 아닌 은혜를 누리며,

'허투루 살면 안 된다'는 이유가 선명해졌다


그렇게, 내 안에 잡초가 뿌리내렸다


밟히면 더 단단해지고

햇빛보다 진해지는

작은 생명 한 포기였다




폭풍이 지나간 뒤,

모든 게 무너진 줄 알았다


가만히 돌아보니, 나도 살아있다

나도 같이 죽었는 줄 알았는데

살아있었네


이건 안도였다




Ai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나는 엄마, 아내, 맏며느리, 친구—

이렇게 나를 이해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문득 물었다

"나도 사람이야?"


순간적으로 손가락이 멈췄다

, 나도 사람이구나


고무줄놀이, 숨바꼭질하느라 해가 기우는 줄도 모르던 아이,

흰 우유가 먹기 싫어 실내화 가방에 넣고 조심히 들고 오다

지난번처럼 터져서 혼나던


활발했지만 생각이 많고,

꿈을 자주 생각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참 잘 자랐

아기가 어떻게 아기를 키웠고,

엄마가 되고, 맏딸이 되고, 맏며느리가 되었네


참, 대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