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여섯 번째 이야기

by 홍주화

엄마와 아빠는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누가 더 원인제공자인지는 모호했다. 엄마는 사업상이라는 명목으로 술을 마시고 새벽에 들어왔다. 아빠는 엄마가 들어오지 않아서 홧김에 집안 물건들을 두드려 깨부수었고, 심지어 공동주택의 복도 유리창마저 망치로 부쉈다. 그리고 경찰에 실종신고를 밥 먹듯이 했다. 그의 심리는 딱 하나, 어서 빨리 엄마를 눈앞에 잡아오라는 미성숙한 것이었고, 그건 어린애처럼 어리석고 이기적인 행동이었다.

둘이 싸울 때마다 불똥은 늘 나에게 튀었다. 특히 아빠가 문제였다. 그는 부부싸움의 끝에 늘 나를 두들겨 패며 “니 새끼 때문에 집안에 재수가 없다.”라고 폭언을 퍼부었다. 집안 분위기는 늘 살얼음판을 걷는 듯했다. 그 틈에서 가뜩이나 자존감이 박살 나있던 난 더욱더 심각한 우울증을 겪었다.


둘은 돈 문제로도 늘 다투었다. 아빠는 엄마에게 “무슨 카드값이 이렇게 많이 나와? 네가 맨날 술 처먹고 펑펑 써대니까 그러는 거잖아?”라고 쏘아붙였다. 그러면 엄마는 “당신이 돈 안 벌고 있으니까 그런 거야. 생활비를 다 카드고 긁는데 당연한 거 아니야?”라고 되받아쳤다.


급기야 우리 집은 경매에 넘어갔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순식간에 길거리에 나앉는 신세가 되었다. 다시 또 집안을 지탱한 건 엄마였다. 엄마는 어디서 돈을 융통해 와 수유동의 반지하 월세를 구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난 수유리에 살고 있다. 물론 지금은 반지하가 아닌 주택이지만.


반지하에 살아보긴 처음이었다. 13평짜리 실내는 너무 좁아서 식탁 하나 놓을 공간이 없었고, 우리는 밥상을 펴놓고 식사를 했다. 화장실은 바닥보다 높은 곳에 있었다. 반지하라 변기물이 내려가지 않아 그리 설계되었다고 했다.


그랬음에도 난 조금도 현실 감각을 되찾지 못했다. 난 여전히 ‘노무현과 진실 사건’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부모는 이제 그러려니 하면서 대꾸조차 하지 않고 내가 떠들거나 말거나 놔두었다.


괴로움의 연속이었다. 진실 사건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난 점점 더 늪에 빠져들었다. 그 당시에도 아빠는 전혀 경제활동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다행히도 수유리로 이사를 와서 엄마의 부동산 사무실이 대박을 냈다. 엄마는 한 달에 천만 원씩 소득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1년 만에 우린 반지하를 탈출해 4층 빌라로 이사를 했다. 24평짜리였고, 통창으로 햇살이 잘 드는 집이었다. 반지하를 탈출하자 그제야 나도 숨통이 트였다.


난 학교를 1학기 다니고, 1학기는 휴학하고 있었다. 간신히 연명하는 삶에 학교생활에 낙이나 의미가 있을 리 만무했다. 난 졸업을 해야 한다는 생각도, 졸업을 한 후 뭘 어떻게 해야 한다는 생각도 일절 하지 않았다.


그 무렵 에픽하이라는 그룹이 ‘원’이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그 노래를 듣고 난 나의 이야기 같아 전율을 느꼈다.


그대 눈물이 볼에 쏟아지는 걸 이유 없이 쏟아지는 걸

아무도 모르죠 심장 속에 유리조각 폭풍이 몰아치는 걸

상처가 병이 돼서 모든 문이 벽이 돼서

거울 속의 내가 적이 돼서 아프죠


아무도 그댈 모르게 가두고 숨을 조르게 놔두고

끝을 고르게 만들죠 (참 나쁘죠)

이 세상 속에 설 이유 없앴죠

돌아갈 길을 선택도 없이 마냥 걷겠죠

내 마음보다 그대 숨이 먼저 멎겠죠


상처(When you cry, cry)

흉터(Though you try, try)

눈물이(Say goodbye, bye)

흐르고(The time is tickin', tickin')

죽음(When you cry, cry)

속을(Though you try, try)

헤매던

널 내가 구해줄게


You are the one(One) 어둠 속을 걷고 있을 때

어둠 속에 네가 사로잡힐 때 내 숨이 같이 해

넌 나의 구원(One) 내게 손을 건네준 그대

세상 속의 문이 네게 닫힐 때 내 손을 바칠게


You are the One 넌 나의 구원

You are the One 넌 나의 구원

You are the One 넌 나의 구원

나의 구원

One


Time is tickin' T-ta


세상에 불을 지른 그대 손이죠

사람들의 눈가림은 그대 몫이죠

그대 눈에 비추던 고통이란 별이 그대 도시죠


(아직도 꿈을 베나요) 숨을 세나요

쏟아버린 눈물 깊이를 재나요

희망은 가라앉는 종이 밴가요 슬프죠


혹시 밤에 땀에 흠뻑 젖어 깨나요

양심이 땅에 기며 버벅 대나요

끝이라고 생각되나요

괜찮아요 cause I understand


내가 고장 난 그 몸의 흉터

산산 조각난 그 혼의 숨겨버린 눈물도 지워줄게요

그대 손을 내 손에 움켜쥐고 믿어줄게요


상처(When you cry, cry)

흉터(Though you try, try)

눈물이(Say goodbye, bye)

흐르고(The time is tickin', tickin')

죽음(When you cry, cry)

속을(Though you try, try)

헤매던

널 내가 구해줄게......


난 입학한 지 9년 만에 가까스로 졸업을 했다. 한 학기를 남겨두고 도저히 학교에 갈 에너지가 없어 학교를 포기하고 자퇴를 하기 직전, 난 과의 교수님들에게 전화를 걸어 “졸업할 수 있게 에프 학점 말고 디 학점만 주세요.”라고 사정을 하고, 무단결석을 했다.


놀랍게도 두 분의 교수님이 B를, 세 분이 A를 주셨다. 그리고 난 한 교수님이 이렇게 설명을 해주었다.


“우린 주화 네가 과거에 얼마나 똑똑하고 성실한 학생이었는 지를 잘 알아. 그래서 안타까운 마음에 학점을 준 거야.”


졸업을 하자 취업이란 걸 해야 했다. 그러나 여전히 현실 감각이 없는 난 이력서조차 넣지 않았다. 그 무렵 싸이월드라는 게 대유행을 했다. 난 동기들의 싸이를 몰래 훔쳐보며 사회에서 잘 나가는 그들을 질투하고 부러워했다.


동기들은 다 번듯한 대기업에 입사하여 외제차를 몰고 다니며 해외여행을 다니고 있었다. 나만이 홀로 도태되어 있었다. 난 낙오자였다. 내 인생은 이제 회복이 불가능해 보였다. 더는 내려갈 곳이 없는 밑바닥 막장이었다.


결국 난 할 일이 하나도 없어 보습학원에 영어강사로 취직을 했다. 학원 원장들은 아주 좋은 내 대학간판과 고등학교 학벌을 보고 날 반겼다. 내가 처음 근무한 학원은 방학동의 <뉴캐슬 학원>이란 곳이었다. 그곳에 가서 난 처음으로 월급을 타고 경제활동이란 걸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뉴캐슬의 원장은 두 달째부터 월급을 밀리더니 결국 난 세 달 치의 월급을 떼어 먹히고 학원을 그만두었다. 난 그 원장을 노동부에 신고해야 한다는 것조차 몰랐다. 그저 이것이 밑바닥 인생의 비애려니 했다. 그 무렵 난 어느 것과도 싸울 의지나 현실적인 해법을 강구할 이성이 남아있지 않았다.


결국 돈을 받아온 건 나의 아빠였다. 법보다 주먹이었다. 아빠는 뉴캐슬 학원에 가서 깽판을 부렸다. 처음에 원장에게 “내가 상담을 좀 하려고 하는데.....”라고 운을 띄우자 원장은 신입생 상담인 줄 알고 반색을 했다. 원장은 깍듯하게 아빠에게 “자녀가 몇 학년이시죠?”라고 물었는데 그 때 아빠는 “아, 내가 좀 다니려고.” 라고 미친 소리를 했다.


“네?”


원장이 당황하자 아빠는 그 자리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목청을 높여 “어이 김씨. 우리 같이 학원 하나 다니면서 영어 배우자.” 라는 등의 미친 소리를 늘어놨다. 그리고 “당신 홍주화 알지? 내가 걔 아빠야. 밀린 월급은?” 이라고 말하자 원장은 그 자리에서 현금을 토해냈다.


이후로 난 다른 학원에 취직을 했다. 이번 학원도 이상했다. 그 학원 원장도 제정신이 아닌 건 똑같았다. 그는 2시부터 밤 11시 근무까지 단 한 번도 학원 건물 밖으로 나가는 걸 허락하지 않았다. 난 하루 종일 갇혀있는 신세였다. 심지어 그는 일요일에도 무급으로 나와서 일을 하라고 했다.


난 그게 불합리하다는 걸 인지하기 못했다. 그저 학원가는 다 이렇게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줄 알았고, 이런 세계에 속하게 된 난 내 처지와 신세만을 한탄했다. 그리고 난 그 학원에 1년이나 근무를 했다. 내가 그 원장이 이상했다는 걸 알게 된 건 나중에 다른 학원들에 가서였다.


좌우간 학원가는 막다른 골목이었다. 피마르는 세계였다. 달마다 돌아오는 내신대비와 보충수업, 특강 등으로 난 몸을 혹사했다. 너무 힘이 들어서 집에 돌아오면 십분은 옷도 갈아입지 않고 가만히 누워 숨을 골랐다.


노무현 대통령이 죽은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난 어이가 없다못해 충격을 받았다. 나의 적, 내 사건의 꼭대기이자 주동자인 그가 자살을 했다는 건 나의 인생과 진실 사건이 영원히 미궁에 빠지고 내가 이대로 밑바닥에서 살아야한다는 뜻이었다.


희한하게도 세상은 나와는 너무 무관했다. 까뮈가 <이방인>에서 말한 것처럼 난 그 무심함에 다정함을 느꼈다. 난 약간의 싸이코패스적 기질을 갖고 있었다. 모든 게 무감각하고 무의미하기만 했다.


난 인간 존재 자체를 의심하고 회의하고 그 존재에게 일말의 기대도 가지지 않았다. 인간은 지구 상의 암덩어리에 불과했다. 한 때 뜨거운 인류애로 문학작품을 읽으며 뜨거운 감동을 느끼던 난 결국 누구보다 차갑고 무심한 인간이 되어 있었다. 난 아무도 다른 사람들은 날 모르는 미지의 곳으로 가고 싶었다. 익명이라는 것은 마력적이었다.


엄마가 일하는 사무실은 수유 3동의 중앙시장 한 복판에 위치해 있었다. 난 역시 출근을 하지 않는 날마다 엄마의 사무실에 붙박이장처럼 눌러앉아 있었고, 곧 중앙시장의 상인들과 안면을 트고 친분을 쌓았다.


옷가게, 미용실, 호프집 등의 주인 여자들은 다 40대였다. 꽃다운 나이의 나와는 다르게 이미 중년인 그들은 내가 어리다는 이유만으로 날 높이 평가하고 부러워했다.


그들의 인생도 밑바닥인 건 똑같았다. 다달이 애들 학원비와 공과금 걱정을 하는 그들은 대학 문턱도 못 밟아보고, 비행기 한 번 못 타본 이들이었다. 심지어 자식이 왜 공부를 잘해야 하는지도 몰랐다. 대한민국 대학교의 서열과 순위조차 몰랐다.


난 내가 고등학교, 대학교 때 어울리던 이들과는 완전히 다른 그들과 어울려 놀았다. 그리고 인간의 삶에 정말 아무 것도 없다는 깨달음에 직면했다. 그 무렵 나는 시를 한 편 썼다.


-인생 참맛은 막장의 맛-


내 나이 서른 셋에


일상은 뻥카


인생은 농담


삶은 계란, 한 개 오백원


일상의 목표는 행복


인생의 목표는 자아실현


삶의 목표는 해탈이라던


스물 둘의 나, 어디로 갔을까


세상이 날 속여도 기만해도


꿋꿋이 버티자니


어느 덧 모든 게 우스워지더라


니들이 막장 맛을 알아?


삼겹살엔 소주에 막장


한잔 술에 한숨 하나


한잔 술에 어머니, 어머니


모든 게 더럽고 서러워


막장은 익어 참맛이 되어간다


그렇지만 그 시절의 밑바닥 막장 내공이 오늘날 내 존재를 형성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난 지금 내가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와 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과 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간다.” 라는 불가의 말처럼 강하고 선하고 단단하다는 것을 잘 안다. 그 모든 경험과 시간들이 날 잠재력 있는 원석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보석으로 세공한 것이었다.


난 일주일에 3일만 출근하는 파트 강사를 하면서 나머지 요일에는 과외를 하기 시작했다. 과외는 학원보다 벌이가 괜찮았다. 그러나 문제는 한달에 정해진 수업 일수와 시수를 맞춰야 했기에 크리스마스나 명절 때도 일을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난 미친 듯이 열심히 돈을 벌었다. 2008년도, 지금보다 20년 가량 전인 당시 돈으로 내 소득은 월 4-500만원, 꽤 고소득자였다.


여전히 어울리는 사람들은 시장통의 상인들이었다. 그들의 보잘 것 없는 삶을 보면서 난 내가 그들에게는 비교적 부러운 사람이 된다는 걸 알았다. 그들은 돈을 잘 버는 날 부러워했다. 그러나 그들은 내가 돈을 잘 버는 게 교육을 잘 받아서임을 모르는, 지독한 소시민들이었다.


난 2년만에 5천만원을 모았다. 당시 난 내 존재의 근거를 돈으로 찾았다. 내가 버는 돈은 쓸 시간이 없는 만큼 족족 모였고, 그 5천만원으로 난 2009년 9월, 수유동에 내가 원장인 학원을 개원했다. 학원 이름은 탑클래스 영어학원이었다. 영어 한 과목만을 가르치는 영어 전문학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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