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일곱 번째 이야기

by 홍주화


학원은 개원을 한 후 2달 동안 원생이 0명이었다. 임대료와 강사월급은 나가는데 난 밑 빠진 독에 물을 붓고 있는 형국이었다. 그리고 나의 아빠는 학원을 개원함과 동시에 폐암 말기 판정을 받았다. 이제는 약물 치료도, 방사선 치료도 안 되는, 이미 뼈에까지, 온몸에 암이 다 전이되어 있는 상태였다.


아빠는 쌍문동의 한일병원에 입원했다. 어차피 치료는 목적이 아니었기에 한마디로 연명을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진통제를 맞으며 하루하루 목숨줄을 부지했다.


그 해 겨울, 아무도 없는 학원을 지키다가 밤이 되어 아빠의 병실로 걸어가는 길은 유난히도 춥고 눈이 많이 왔다. 난 심각한 정신적 공황 상태를 겪고 있었다. 학원 사업을 시작한 것만도 힘에 부치는데 아무리 애증의 대상이었다고는 해도 직계 가족의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는 건 정신적 타격이었다.


아빠는 날마다 눈에 띄게 야위어갔다. 그리고 아빠의 곁에서 24시간 그를 보살펴주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한평생 원수 같이 지냈던 엄마였다. 엄마는 초인적인 의지력으로 아빠의 곁을 지켰다.


개원 세 달 만에 한 아이가 등록을 했다. 중학교 1학년인 그 남자아이는 매우 총명하고 예뻤다. 난 있는 힘을 다해 그 아이를 열심히 가르쳤다. 그리고 기적처럼 그 아이의 엄마가 동네의 친구들 스무 명을 소개했다. 그들이 다 등록을 했고, 나에겐 개국공신이자 은인이 바로 그 아이였다.


아빠는 내 학원생이 스무 명이 되었을 때 사망했다. 마지막으로 아빠와 나눈 대화는 “아빠, 나 이제 학원생 스무 명이야.”였다. 그때 아빠는 힘없이 미소를 보였다. 아빠는 유언으로 나에게 “약 잘 먹어라.”라는 말을 남겼다. 난 아빠가 죽는 마당에 진실 사건 따위는 없는 게 아닐까, 처음으로 나의 의식을 의심했다. ‘현실’이 보이자 ‘진실’은 저만치 물러갔다.


아빠는 병동 목사에게 세례를 받고 임종했다. 그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무척 나약해져 있었다. 한평생 예수쟁이들을 욕하던 그가 “아멘.”이라고 외친 건 희극이자 비극이었다.


아빠의 장례식 날에는 추적추적 봄비가 내렸다. 장례식을 치른 후 우리 가족은 살던 빌라에서 엄마가 사둔 단독주택으로 거처를 옮겼다. 난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살고자 결심했다. 내 마음 한구석은 뻥 뚫린 듯 너무 공허했다. 그토록 증오했던 아빠가 죽었는데 왜 이렇게 공허한지는 모를 일이었다.


5년간 학원을 운영했다. 난 여전히 베드로의원의 약을 먹고 있었는데 그 약은 나의 망상이나 기분장애를 그다지 효과적으로 조절해주지 않았다. 그래서 난 늘 기분이 불편했고, 어차피 나에게 아무 병도 없다는 생각은 여전했기에 난 마음대로 약을 단약 했다.


내 학원은 입소문을 타고 금세 성황을 이루었다. 개원한 지 7개월이 되자 내 월 순소득은 800만 원이 되었다. 약 20년 전이니까 난 상당한 고소득자였다. 그러면서도 난 늘 뭔가가 공허하고 결핍감에 시달렸으며 마음이 불편했다. 돈만 버는 인생에는 친구도, 애인도, 아무것도 없었다. 심지어 난 돈을 벌어서 뭘 해야 할지, 왜 많은 돈을 벌어야 하는지 자체를 몰랐다. “돈 벌어서 뭐 할 거예요?”라고 한 강사가 물었을 때 난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난 남들이 어떻게 사는 지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다들 어떻게든 많은 돈을 벌어 아파트, 외제차를 사는 게 목표라는 걸 몰랐다. 그랬음에도 난 일주일에 한 번씩 백화점을 다니며 돈을 써댔다. 재테크 용으로 붓고 있는 변액보험 200만 원과 매달 엄마에게 주는 150만 원을 빼고는 난 모으는 돈이 없었다.


변액보험은 주식과 펀드가 결합된 고위험, 고이자 투자 상품이었는데 교보생명 변액보험을 드는 날 난 vip 대우를 받아 지점장이 몸소 내가 있는 곳까지 달려왔다. 난 강남에서도 보기 드문 큰 고객이라 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너무 어린 나에게 부러움과 놀라움의 눈초리를 보냈다. 내가 가입한 상품은 5년간 매달 2백만 원씩 1억 2천만 원을 부으면 1억 5천을 타는, 그러나 중도 해지할 경우 원금 보장은 안 되는 상품이었다.


백화점에 가서는 40만 원 미만 짜리는 사지도 않았다. 난 차도 뽑았는데 국산 중형차였다. 난 돈지랄을 펑펑 해대고 다니는 인간이었다.


난 그랬음에도 내 직업인 학원업에 만족하지 않았다. 여전히 내 의식에 학원은 밑바닥 인생이라는 인식이 깔려 있었다. 난 너무 세상물정을 모르고 있었다.


밑에 강사들은 날 롤모델로 삼으며 무척 잘 따랐다. 학원 아이들도 날 존경하고, 마치 교주처럼 날 추앙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늘 불만족스러웠다. 난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늘 머릿속의 막연한 이상을 추구하고 있었다. 아무런 가치나 의미의 실현과는 상관이 없어 보이는 학원업에는 도무지 만족할 수 없었다.


학원일은 오후 3,4시부터 밤 10시까지였기에 난 오전 시간대에 비교적 한가했다. 그 시간을 난 요가와 걷기, 달리기 등의 운동으로 보냈다. 그때가 내가 본격적으로 운동을 한 첫 번째 시기이다. 걷기나 달리기를 하는 곳은 우이동의 솔밭공원이었다. 솔밭공원은 서울 시내에서도 규모나 조성으로 유명했다. 강북구의 명물이었다. 그곳에는 해마다 봄이 되면 형형색색의 꽃이 피었다. 어느 하루, 봄꽃을 보며 난 머릿속으로 시상을 떠올렸다.


현실에 단단히 뿌리박아


환상의 아름다운 꽃으로 피리


그러나 분열하여 나비 되는 나


뿌리와 꽃과 나비의 합일점은 열매인지라


신은 나무의 꽃이 시듦을 보시고


새로이 열매를 맺어주신다.....


난 어느 정도 자존감을 회복한 단계였다. 인생의 고난을 통해 내 한계, 모순, 불완전성, 나약함 등을 깨달은 차였다. 그러나 여전히 진실은 미궁 속에 빠져 있었다. 도대체 나에게 벌어졌던 그 일이 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가슴 한 구석에 남아 있었다.


다시 병이 재발한 건 2013년도, 박근혜 대통령 때였다. 뭔가가 이상하게 돌아가기 시작함을 느낀 건 내가 스마트폰으로 우연히 ‘미카엘대천사’를 검색한 직후였다. 우연한 영감에 이끌려 검색을 했을 때 불현듯 과거의 기억이 났다. 나지트에서 “쟤 뒤에 미카엘 대천사 있대.”라고 들었던 말. 난 차근차근 문서를 읽었다.


성서 이전과 이후를 불문하고 미카엘은 항상 천사들의 최고 자리에 군림해 왔다. 그는 원래 기원전 7세기경 오리엔트 세계에서 권세를 떨친 칼데아인들의 신이었다고 한다. 유대교, 기독교를 통해 그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여 신의 오른팔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사람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높고, ‘역천사 버추즈의 지도자’, ‘대천사 아크엔젤의 지도자’, ‘하느님 이전의 왕자’, ‘자비의 천사’, ‘정의의 천사’ 등등 대단히 많은 칭호를 가지고 있다. 이러한 칭호들은 그의 재능을 뒷받침하는 증거라 할 수 있다.


미카엘의 임무는 그가 가진 자비심과는 반대로 과격한 성격을 띤 것이 적지 않다. 선악의 나무에서 금단의 열매를 따먹은 인류의 조상, 아담과 이브를 낙원으로부터 추방하는 임무를 띠고 지상에 내려선 미카엘의 모습을 <실낙원>에서 인용해 보자.


<그는 많은 천사를 거느리고 지상을 방문해 아담이 있는 곳으로 갔다. 미묘한 색채로 빛나는 갑옷 위로 매우 선명한 자줏빛 군의를 입은 그의 모습은 마치 훗날의 로마군 황제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별처럼 빛나는 투구는 뒤로 젖혀져 있고, 그 아래로 드러난 얼굴에는 청춘을 보내고 난 장년의 기개가 충천해 있다. 사탄이 두려워하는 공포의 칼은 빛나는 황포대에 걸려 있듯 옆구리에 걸려 있다. 그리고 손에는 창을 잡고 있다.


아담이 공손히 인사했다. 대천사는 왕자처럼 위풍당당하고 엄숙하게 아담을 찾아온 이유를 말했다.


아담이여, 신의 엄숙한 명령에 서론은 필요 없을 것이다....... 신은 더 이상 네가 이 낙원에 사는 것을 허락지 않으신다. 내가 온 것도 그대를 이 낙원에서 추방하여 지금의 그대에게 어울리는 곳, 그대가 본래 나오게 되었던 그 땅을 경작케 하기 위함이다.


이 얼마나 천계의 왕자다운 장중한 모습인가! 신의 의향을 전하는 어조도 대단히 위엄이 서려 있어 감히 저항하기 어려운 박력을 느끼게 해 준다. 게다가 인간의 조상 아담을 낙원에서 추방한다는 신의 결정에 따라 연민의 정을 숨기며 추방령을 선언하는 엄정무비한 태도는 천사 중의 천사, 즉 천사장이라 불리는데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 그야말로 ‘정의’의 화신인 것이다.>


이슬람 세계에서도 미카엘은 강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그는 미카일이란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날개는 초록 에메랄드 빛으로 빛나고, 머리를 덮은 불타는 듯한 샤프란색 머리칼 한 올 한 올에는 백만 개나 되는 얼굴과 엄청난 수의 입이 달려 있다고 했다. 또한 입에서는 알라에게 면죄받기 위한 백만 가지 염원의 말들이 내뿜어지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이슬람교에서 미카엘을 매우 기이한 모습으로 표현하는데 반해 기독교 미술에서는 그를 한결같이 미모의 청년으로 그리고 있다. 또한 대개는 갑옷으로 몸을 감싸고 검을 오른손에 든 영웅적인 모습으로 묘사한다.


카발리스트의 천사관은 조금 특이하다. 그들은 천사들이 인간과 닮은 모습이라는 생각이 말도 안 된다는 주장을 편다. 천사라는 존재는 이른바 ‘작은 태양’이라는 것이다.


비밀 결사의 말에 의하면, 태양에는 어떤 종류의 생물이 존재하고 있으며 그 육체는 빛나는 영적 에테르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그 생물은 빛나는 태양의 구와 비슷하다...... 이들 생물은 태양을 축소한 것 같으며 디너용 접시보다 약간 크다......


인터넷 문서를 다 읽고 난 충격을 받았다. 과거에 내가 악마의 형상을 봤을 때가 떠올랐다. 그때 분명 저 쪽 멀리 빛나는 흰색 공이 있었다. 그 공은 인터넷 문서에 나온 미카엘 천사의 모습을 묘사한 것 - 빛나는 구, 디너용 접시 크기- 과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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