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이야기
새벽 2시를 넘긴 시각이었다. 난 여지없이 죽음의 유혹과 싸우며 나의 음침한 세계 속에서 헤매고 있던 중이었다. 난 날 구해줄, 구원해 줄 무언가를 간절히 원했다. 그러나 내가 몸 담고 있는 현실 세계에 그런 건 없었다. 어떤 것도 나에겐 위로나 위안이 되지 못했다. 아무리 감동적인 영화를 봐도 감동을 느낄 수 없었다. 아무리 웃긴 코미디를 봐도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난 지독하게 공허했다.
누구든 말을 나눌 사람이 절실히 필요했다. 멘토가 되어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더욱 좋았다. 내가 살던 동네에는 역사가 800년이 된 큰 절이 하나 있었는데 난 그 야심한 시각에 무서움도 없이 집을 나가 1킬로미터쯤 걸어서 그곳 절에 갔다.
학창 시절 수학여행 때 말고는 절에 와보는 게 처음이었다. 특히 어린 시절 기독교 신자였던 나에게 절은 익숙하지 않은 장소였다. 난 입구에서 도착해 무섭게 생긴 아차상과 일주문을 보고서야 내가 절에 왔다는 걸 실감했다.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속하지 않은 사람이어야 했다. 세상 일에 초연한 그런 사람.
난 내 행동이 정확히 어떤 건지를 자각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그저 직감에 이끌려 온 것이었다. 한참을 오르니 스님들이 묵는 요사채인 듯 보이는, 창호지 문들이 발라진 방들이 보였다. 대부분의 방들에 불이 밝혀져 있었다. 난 그 문들 중 아무거나 하나를 두드리며 말했다.
“스님, 좀 나와보세요. 제가 급해요.”
갑자기 창호지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대머리인 한 스님이 날 보자마자 아무것도 따져 묻지 않고 바로 “들어와. 들어와서 얘기혀.”라고 말했다.
난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갔다. 겨울이었고, 내부의 온돌이 무척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곳의 방은 훈훈했다. 그 스님은 작은 냉장고에서 이백 미리 우유 한 팩을 꺼내더니 냅다 내밀며 “먹어. 우선 먹고 얘기혀.”라고 말씀하셨다.
난 순식간에 마음에 평화를 느꼈다. 빈 속에 우유가 들어가자 정신이 한결 맑아졌다. 그는 무슨 일로 이 시간에 이곳까지 왔는 지를 물었다. 난 대꾸했다.
“제가 진실을 찾고 있거든요.......”
그러자 뒤이어 나오는 스님의 언어는 내 심장을 관통했다.
“넌 어려서부터 예쁘고 똑똑했어. 문제는 네가 아니야. 세상이 잘못된 거야......”
“......?”
그 말이 그토록 위안이 될 수가 없었다. 처음으로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었다. 위안이 되는 한마디였다.
“곧 있으면 새벽 예불이 시작될 거여. 위쪽 대웅전으로 올라가서 법당에서 백팔배 하고 가.”
난 스님이 일러준 대웅전 쪽으로 향했다. 법당에는 일반 신도들 몇 명이 모여서 예불을 준비하고 있었다. 곧 내가 만난 스님과 다른 몇 명의 스님들이 예복을 입은 차림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목탁을 두드리며 독경을 읊었다. 무슨 말인지는 하나도 알아들을 수 없었으나 마음만은 무척 평안해졌다.
“이 아이 절 처음이여. 보살님 절 하는 법 좀 가르쳐주쇼.”
그 스님은 한 아줌마 신도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그래서 난 어색하게 절을 따라 했다. 커다란 금불상 앞에서 절을 올리면서 난 “도대체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절이 거듭될수록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건 사실이었다.
그날 이후로 난 그 절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그도 그럴 것이 젊은 여자가 스님의 방을 뻔질나게 드나드니 그럴 법도 했다. 난 곧 그 절의 모든 스님들과도 안면을 텄다. 난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진실’을 찾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그들 중 한 스님은 나에게 지금으로 보자면 정답인 말을 했다. 그는 말했다.
“학생은 진실보다는 나는 누구인가를 먼저 찾아봐요.”
그러나 그때 내 의식은 온통 진실에 꽂혀있었기에 난 내 정체성마저 잃은 상태였다. 그래서 그 말은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놀랍게도 그 절의 모든 스님들은 다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웃기게도 난 스님들과 함께 한 방에 모여 대화를 나누며 맞담배를 피우는 여자였다.
“소가 물을 마시면 우유가 되지만 뱀이 물을 마시면 독이 돼.”
스님이 처음 던져준 화두였다. 난 이미 불교 철학에 대해 상당한 지식을 갖고 있었기에 그 말의 의미를 쉽게 이해했다. 그랬음에도 그 스님은 불교에 대해 여러 가지를 나에게 설명해 주고, 가르쳐주었다.
스님의 자가용을 타고 시장이나 교외의 절 같은 곳들을 다녔다. 스님은 장을 볼 때면 꼭 나에게 뭔가를 사줬다. 그렇게 골라주는 것들은 대개 엉뚱한 것들이었다. 벙어리장갑, 곰인형과 같은. 또한 그는 절에서 천도재를 지낸 후 쌓인 과일들을 내 손에 쥐어 집에 들러 보냈다. 덕분에 우리 부모도 그의 존재에 감사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우리 엄마와 스님이 대면을 했다. 나의 아빠는 스님에게 편지까지 썼다. 스님은 그 편지에 무척 감동을 느끼는 것 같았다. 엄마와 난 스님을 따라다니며 그의 신도인 사람들의 식당이나 아이스크림 가게 등에 가서 식사를 하고 디저트를 먹었다.
스님과의 추억은 아직도 내 기억 속에 따스하게 남아있다. 그는 다른 절로 떠나며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는 보석 같은 애다. 언젠가 네가 네 자아를 발견하고 빛나게 될 것이야.”
스님이 합천의 암자로 간 이후에도 한동안은 그와 메시지로 교류를 했다. 난 사월 초파일날 연등을 달 돈을 그에게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나에게 불교라는 종교 자체가 도움이 된 것은 아니었다. 스스로 깨달아 강해지고 부처가 되는 종교는 약하디 약한 나에겐 맞지 않았다. 난 너무 나약하고 의지력이나 자아정체성을 탐구할 에너지가 바닥난 상태였다.
스님이 사라지고 난 후 난 다시금 혼자가 되었다. 엄마는 공인중개사였다. 그때부터 난 엄마에게 매달리기 시작했다. 난 엄마의 사무실에서 하루종일을 엄마와 붙어 지냈다. 엄마는 날 정상으로 돌려놓기 위해 무던히 애를 썼다. 나에게 옷을 사주고, 액세서리등을 사주며 옛날처럼 다시 꾸미고 멋 부리고 다니라고 했다. 당시 난 365일을 내내 운동복만 입고 다니고 있었다. 그토록 아름답던 과거의 내 모습은 너무 멀어진 이야기였다.
엄마와 붙어 있으면서 난 사무실 한 켠에 엄마가 내어준 책상에 앉아 무섭도록 많은 책을 읽었다. 그리고 난 드디어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가 쓰는 글들은 소설의 형태를 띠고 있었다. 난 인생이 이대로 허무하고 무의미하게 흘러가도록 놔둘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이미 영화감독이 되기엔 불가능한 시점이었다. 그래서 난 더 좋아했던 소설로 방향을 튼 것이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글을 습작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쓰는 글들은 그저 끄적거림의 취미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나 그 당시에 얻은 영감들이 귀중한 일평생의 자산이자 밑천이 된 건 사실이다.
엄마의 사업은 잘 되지 않았다. 부동산 경기가 완전히 죽어있는 시국이었다. 엄마는 월세를 내기도 빠듯한 돈을 벌고 있었다. 아빠가 백수로 놀고 있는 집안에서 우리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건 오로지 엄마였는데 엄마의 사업이 잘 안 되는 건 우리 집의 경제 사정에 직격탄이었다.
그랬음에도 엄마는 날 데리고 다니며 늘 최고급의 것들을 사주었고, 먹여주었다. 난 그 당시에는 엄마의 삶의 무게를 가늠하지 못했다. 난 현실 감각이 조금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