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이야기
부모와의 실랑이, 암묵적인 나의 시위와 반항의 결과로 난 결국 프랑스에 어학연수를 떠나게 되었다. 그토록 내가 프랑스에 가는 걸 반대하던 엄마, 아빠는 일단 결정이 나자 희한하게도 “간 김에 주변 국가들, 스페인, 이탈리아, 독일 등등도 다 돌아다녀봐라.”, “가서 이왕이면 대학 공부까지 마쳐라.”라는 등의 말을 했다. 안 그래도 난 그 나라에서 영화나 철학을 공부해 볼 생각이었다. 난 졸업을 하고 일개 기업체의 사원이 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내가 가게 된 목적지는 알프스 산 아래에 위치한 그르노블이란 도시였다. 그르노블은 프랑스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로 꼽히는 곳이었다. 한국인들이 드물어 공부에 몰입할 수 있다는 게 유학원 측의 설명이었다. 난 2002년 1월에 파리행 에어프랑스기에 탑승했다. 파리에 내려서 리옹까지 국내선 비행기를 탄 후, 리옹에서 그르노블까지는 다시 고속버스를 타야 하는 긴 여정이었다.
그르노블 시내에 도착한 건 늦은 밤 시간이었다. 난 택시를 타고 유학원에서 알려준 주소의 대학교 기숙사까지 갔다. 내가 묵게 될 기숙사의 이름은 베를리오즈였다. 베를리오즈는 환상교향곡을 작곡한 유명한 프랑스의 작곡가 이름이었다. 베를리오즈의 환상교향곡은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었고, 난 처음부터 모든 게 마음에 들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난 그 나라에서 티브이로 봤다. 티브이에 나오는 서울의 모습이 너무 깨끗하고 현대적이어서 난 새삼 놀랐다. 내가 사는 나라가 저토록 아름다운 나라라는 걸 외국에서 깨닫는 느낌은 생경했다. 특히 2002년도엔 월드컵 덕분에 한국의 이미지가 많이 좋아진 상태였다. 게다가 그 해 월드컵에서 한국은 무려 4강에 진출했다.
내가 거주하는 기숙사의 층은 2층이었는데 난 곧 다른 층의 아이들과도 면을 텄다. 그들은 나와 함께 내 방에서 티브이를 보며 한국 선수들을 응원했다. 난 없던 애국심마저 생기는 걸 느꼈다. 외국에 나가면 누구나 애국자가 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학교에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랭귀지 코스의 수업을 들었다. 난 가장 상급반이었다. 내 반에는 불어와 같은 라틴어 계통의 언어를 쓰는 유럽애들이 많았다. 불어는 라틴어족이었다. 그들은 유창한 불어를 했다. 그 틈에서 난 가장 열등생이었다.
기숙사의 아이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난 그들과 어울려 거의 매 주말 밤마다 나이트클럽을 다녔다. 스카치라는 이름의 나이트클럽은 차를 타고 한참을 가야 나오는 산 중턱에 위치한 별장 같은 클럽이었다. 그곳까지는 택시비가 한국 돈으로 10만 원가량 나왔다. 프랑스는 택시비나 담뱃값 등이 매우 비쌌다. 주로 프랑스인 친구들의 차로 이동을 했지만 그렇지 않을 때마다 택시를 타는 나에게 프랑스 친구들은 그냥 중고차를 한 대 사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난 운전을 할 줄 몰랐다.
스카치에 가보면 프랑스인 젊은 남녀들은 늘 마리화나를 피우고 있었다. 그야말로 외국의 모습이었다. 내가 늘 꿈꾸던 것이었음에도 내가 느낀 문화적 충격은 엄청났다. 난 영화에서만 보던 것들을 실제로 마주하고 충격에 빠졌다.
곧 나는 나빈이라는 1층에 사는 남자를 알게 되었다. 그는 인도계 프랑스인 흑인 남자로서 국적은 프랑스였으나 태생이 인도였다. 나빈을 만난 것은 내 일생일대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었다. 내가 그와 어울려 놀며 마리화나와 해시시에 손을 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와 나의 관계를 뭐라고 정의 내릴 수 있었을까? 난 마약에 중독됨과 동시에 그에게도 중독이 되었다. 그는 나에게 의도적으로 혼란을 가했다. 늘 중얼거리는 말마다 중의적이거나 반어법적인 언어를 섞었다. 날 좋아하는 듯하면서도 밀당을 하듯 속마음을 내비치지 않고 그는 나로 하여금 집착을 하도록 유도했다. 그는 알 수 없는 말들로 날 헷갈리게 만들었다.
“난 너랑 잘 수 없어. 우리 엄마가 결혼 전에는 자지 말랬어. 난 결혼할 거니까.”
“난 아시아의 문화가 좋다고 생각해. 그래서 난 자식을 낳으면 아시아 식으로 키울 거야. 내 여자친구는 1층도 아니고, 3층도 아니고, 2층에 살아.”
이와 같은 언어들이 백 가지쯤, 백 번쯤 반복되었다.
난 그를 통해 내 욕망과 열등감, 무의식 따위에 직면했다. 그의 말들에 지나치게 몰입해서 심각하게 의미를 부여했다. 종국에는 그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도 되는 듯 가스라이팅에 휩쓸렸다.
난 내가 왜 정신적으로 힘들어했으면서도 그와의 만남, 함께 마리화나를 피우는 것을 멈추지 못했는지를 스스로도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나에겐 어떤 환상 같은 게 있었다. 그는 나가 처음 만나보는 유형의 남자였고, 난 그를 통해 내 자신의 나르시시즘적인 환상을 충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비겁했다. 나로 하여금 자신에게 빠져들게 만들면서도 내 매력에는 저항을 하며 오히려 날 괴롭혔다. 그는 온 동네의 친구들을 다 동원해서 날 가스라이팅 했다. 이를테면 지나가는 그들의 입을 통해 “그가 널 좋아해서 그러는 거야.”, “아시아 여자가 너무 이쁘다.”라는 등의 중얼거림을 듣게 만든 것이었다.
당시 내가 느꼈던 갑갑함과 고통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내가 그에게 “너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지? 그게 뭐야?”라고 직접적으로 물으면 그는 늘 “ 네가 마약을 너무 많이 해서 환청을 들은 거야.”라는 식으로 날 몰고 갔다.
그와 나는....... 똑같은 인종이었다. 우린 심리전에 능했고, 인간 심리, 연애 심리의 고수들이었다. 그러나 남의 나라에서, 언어도 딸리는 난 보다 약한 입장이었다. 결국 난 그와의 심리전에 지칠 대로 지쳐 만신창이가 되어 귀국을 결심했다.
아직도 난 그가 왜 나에게 그랬는지를 파악할 수가 없다. 그가 어떤 인간인지, 누군지조차 알지 못한다. 그의 정체는 그가 만들어 나에게 보여준 것들 외에는 없다. 그를 만난 건 내 인생 최대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
“너는 널 너무 사랑해. 넌 좀 죽어야 해.”
그가 늘 하던 말이었다.
그런 그는 아직도 모를까? 자신 역시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없는 나르시시스트임을. 다시 그와 만난다면 난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난 이미 다 죽었어. 이젠 네가 죽을 차례야.”
자아를 죽이는 일은 지독히도 고통스럽고 힘든 일이다. 35살에 교회에 다니기 전까지 난 자기 부인이나 십자가 따위는 모르고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자아를 죽이는 일이야말로 사랑의 출발점임을 알고 있다. 나에게 필요한 건 죽는 게 맞았었다.
지금은 2002년도를 기억하면서도 마음에 미동이 거의 없다. 그 당시에는 날 미치도록 힘들게 만들었던 모든 일들이 이제는 그저 아무런 고통 없이도 초연하게 멀리서 바라볼 정도가 되어 있다. 그러나 그와 상대한 대가는 나에게 너무도 컸다. 이후부터의 내 인생은 파국으로 치닫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귀국을 결심할 무렵 난 그가 내던진 그 ‘언어들’에 거의 함몰되어 있었다. 그의 말에는 특정한 맥락이 있었다. 난 그와 한 번도 육체적 관계를 한 적이 없었는데 그건 내가 그의 잠자리 파트너 따위로 전락하고 싶지는 않아서였다. 난 그의 진정한 마음과 태도를 원했으나 그는 오히려 이해할 수 없는 말들로 날 괴롭혀왔던 것뿐이었다. 아마도 그는 내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프랑스에서는 남녀가 섹스를 하러 데이트를 나가는 걸 sortir(나가다, 나오다)라고 표현하는데 그는 내가 떠나기 전날 밤 마지막으로 대화를 나누며 “지금까지의 진실은 뭐였어?”라고 묻자 한숨과 눈물을 보이더니 “네가 한국에서 나오면 말해줄게. 너 아마 한국 가면 미칠 거다. 난 날 옮기고 싶다. 여기서 아주 먼 데로. 한국으로.”라고 말했다.
어쨌든 난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와 상대하면서 진이 빠진 데다 마약의 효과로 난 말이 아닌 상태였다. 그런 채로 집에 돌아와 난 예상보다 빠른 귀국에 놀란 부모에게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그 모든 건 도저히 입 밖으로 발설할 수가 없었다.
난 바로 복학하지 않았다. 9월에 돌아온 난 12월까지 방 안에서만 은둔하며 지냈다. 프랑스에서의 일들은 여전히 어느 것도 이해되지가 않았다. 가끔 정신을 집중하여 그때의 일들을 기억하면 여전히 심장이 조여 오는 듯 갑갑함을 느꼈다.
난 12월에 알바를 하나 시작했다. 당시 통신회사이던 016에서 복합문화공간을 만들어놓고 고객 서비스 차원에서 016의 나 요금제를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나지트’라는 장소를 제공했는데 난 3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쓰는 나지트의 관리직으로 일을 시작했다.
그곳의 직원들은 점장, 매니저, 그리고 그 아래로 여섯 명의 남자직원들과 두 명의 여직원들이 있었다. 대개 나이는 다 내 또래였다. 난 가장 신참이었다. 그들은 이미 서로서로 견고한 친분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 틈에 억지로 끼게 되어 난 가까스로 적응을 해야 했다. 난 조금쯤 위축감을 느꼈다.
난 삶을 내 맘대로 만들기 위해 내 두 손에 꼭 움켜쥐고 있었다. 난 자기 차를 운전하여 등교하는 학생들이 너무 멋져 보였다. 그래서 나도 차를 한 대 사기 위해 돈을 모으려는 심산으로 알바를 했던 것이었다. 한 번도 내 뜻과는 어긋나는 인생을 살아보지 않았던 난 삶과 인생이 내 뜻대로 되지 않고, 언제나 변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모르는 어린 나이였다.
근무는 아침 9시부터 저녁 9시까지였다. 그리고 열흘에 한 번을 쉬었다. 당시로서는 꽤 고소득 알바였다. 난 일이 마음에 들었다. 여기서 한 6달을 일하면 작은 차 한 대는 살 수 있을 듯했다. 난 그때 바로 병원치료를 받았어야 했다. 그러나 난 내가 정신질환 시초라는 사실을 몰랐고, 상상조차 할 수 없었기에 날 더욱 파국으로 몰아갔다. 그곳에서 일을 한 건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일을 하면서 난 기묘한 상황들을 겪었다. 같은 직원들이나 오는 손님들이 다 내 이야기를 어딘가에 빗대어 돌려 말하듯 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예를 들면 “오늘은 향기가 남다르네.”, “내일도 또 나와. 내 얼굴 보고 싶으니까.”, “인간들은 다 똑같아요. 모두가 다 한 사람을 위해 이러는 거예요.” 와 같은 종류의 말들이었다.
난 이곳이 프랑스의 연장선이라는 생각을 했다. 어떻게 된 건진 몰라도 모든 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었다. 난 그 ‘진실’을 알아내기 위해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내 집착은 실로 엄청났다. 난 너무도 완고한 자아의 소유자였고, 내가 뭔가를 모를 수도, 이해 못 할 수도 있다는 것이 용납되지 않았다. 그 진실을 완벽히 알기 전까진 자유로울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날 부자유스럽게 하고 구속하는 건 외부의 진실이 아니라 내 마음의 집착과 강박임을 그때 난 추호도 몰랐다.
하루하루는 긴장과 숨 막힘의 연속이었다. 모두가 날 중심에 두고 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한 번은 다른 두 명의 여직원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은 말하고 있었다.
“시작해 봐. 진실.”
“그 남자는 바로 알았대. 이 여자가 진지한 여자인 거. 여자가 까칠해서 남의 나라에서는 못 살 거 알고 자기가 이 나라로 올 거래.”
“우리 다 니 장례식 갈 거야. 나빈 보러.”
그렇게 난 그들을 통해 조금씩 진실을 듣고 있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이 일에는 1단계, 2단계, 3단계 같은 단계가 있었다. 뭐가 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체계적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했다. 난 무의식을 통과하고 있었다. 내가 겪고 있는 심리적 갈등은 분명히 단계적으로 진행되고 있었기에.
한 달간 일을 한 후 난 회식 자리에 참석했다. 그 회식 자리에서 난 술을 마셨다. 술에 취한 정신으로 난 그들 모두가 ‘진실’을 말해주는 걸 듣게 되었다. 그들은 드디어 사건의 전말을 말해주었다.
내가 프랑스에서 겪었던 일의 꼭대기는 한국 대통령이었다. 나빈과 내가 일종의 대결 같은 걸 한 건데 우리나라의 김대중 대통령이 “우리나라 애가 이긴다.” 라며 내가 그와 놀며 마리화나를 하는 걸 놔두라고 했다고 했다.
이후 한국에 와서 대통령이 노무현으로 바뀌면서 그가 바톤을 이어받아 난 정치적으로 큰 나무로 키워지기 위해 ‘검증’을 받고 있는 것이었다. 난 밑바닥을 치며 딛고 올라와 날 모두에게 증명해 내야 하는 운명이라고 했다. 그 일에는 교황청도 관련이 되어 있었다. 교황은 내가 신에 의해 선택받은 아이라며 ‘미카엘 대천사’의 수호를 받는 애라고 했다고 했다.
그날 내가 어떻게 그 정신 상태로 내 집까지 왔는지는 알 수 없다. 좌우간 난 집에 돌아와 내 방에서 귓전에 끊임없이 울리는 소리들을 들었다. 귀를 막고 몸부림을 쳐도 막을 수 없는 소리들이었다. 내 귀에 울리는 소리들은 모두들의 목소리로 나에 대해 말하고, 진실에 대해 말하는 소리들이었다.
“힌두교 사람들은 저런 식으로 생각하지 않는대. 나빈도 처음에 저 누나가 크리슈나 신 좋아한다고 했을 때 기대 많이 했는데 아마도 저 누나는 타 종교 신의 오른팔일 거래.”
“지금 우리가 천재를 나무로 바꾸고 있어. 이건 천기를 거스르는 일이래.”
“쟤는 본질만 봐. 진실을 꿰뚫어. 어떻게 사건의 함정들을 다 피하고 꼭대기를 다 이긴 거야?”
“나중에 우리 모른 척하진 않겠지? 우리가 지금 이 사건 일등공신인데.”
“난 주화 누나를 믿어. 이대로 무너질 사람 아니야.”
난 드디어 ‘진실’을 알게 된 듯했다. 그 진실을 공포스러울 정도로 거대한 것이었다. 난 내가 상대하는 대상이 일개 개인이 아닌 것에 극도의 두려움을 느꼈다. 이런 일을 왜 나에게 벌인 건지, 이 게임의 진짜는 뭔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명한 건 내가 뭔가 대단한 사고를 쳤다는 한 가지였다.
급기야 난 악마를 마주했다. 그때 난 부모가 출근을 하고 없는 아침에 꼬박 밤을 새우고 집안을 서성거리고 있었다. 난 2박 3일을 안 잔 상태였다. 내 의식 세계는 아노미 상태였다. 난 내가 맞닥뜨린 거대한 진실 앞에서 어떤 이성적이고 명료한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였다.
안방의 침대 근처였다. 내가 정신이 온전치 않은 채로 무작위적으로 드는 생각들을 정리하고자 돌아다닐 때 침대 발치에서 홀연히 무언가가 나타났다. 그것은 처음에는 검고 부연 연기 같았다. 그러다가 곧 사람의 형상이 되었다. 그리고 날개를 달고 있었는데 그 날갯짓이 내뿜는 바람과 열기가 전해져 난 눈도 뜨지 못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형상은 나빈의 목소리로 말했다.
“너 이제 올 데 나한테 밖에 없지?”
그건 악마였다. 난 기겁을 해서 내방으로 달아났다. 그리고 내 방에서 빛나는 은쟁반 같은 것을 보았다. 그게 뭔지는 알 수 없었다. 난 진짜 진실이 뭔지 객관적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제정신이 아닌 채로 나지트를 찾아갔다. 나지트에서 점장을 보자마자 난 따지듯 물었다.
“점장님, 진실이 뭐예요?”
그가 대답했다.
“이렇게까지 안 해도 더 자랄 수는 있겠지만...... 내 위로는 모셔야 할 분이 한 분 계시고, 내 밑으로는 열두 명의 직원들이 있어. 당신은 마녀가 아니라 성녀입니다. 우리 모두를 구원해 주세요. 당신의 소설로......”
난 튕겨지듯 밖으로 나왔다. 그 말은 위로 성부 한 분을 모시고, 아래로 열두 제자를 거느린 예수 그리스도를 암시하는 말인 듯했다. 그리고 난 분명히 깨달았다. 내가 이제는 더 이상 아무와도 정상적인 대화를 할 수 없다는 것을.
이후 난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정신과 폐쇄병동에 강제입원 되었다.
정신과 폐쇄병등은 너무 끔찍한 곳이었다. 그 병동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 있었다. 난 내 증상을 숨겼다. 주치의에게도 내가 겪은 일들과 내 마음 상태에 대해 발설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검증을 위해 시험대에 올려질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주치의가 나에게 물었다.
“혹시 본인이 뉴스에 나오거나 하지 않았어요?”
난 그 역시도 모든 걸 다 알면서 시치미를 떼고 있다고 느꼈다. 그리고 이유 없이 알 수 없는 약을 매일 먹었다.
아무도 내가 겪은 일이 뭔지는 알려주지 않은 채 약만을 먹이고 있었다. 난 내가 그 약을 왜 먹어야 하는지, 진실을 뭔지 등을 알 수 없어 미쳐버릴 것 같았다. 너무도 갑갑했다. 당시 난 내 병이 조울증에 망상장애가 겹친 것이라고는 알지 못했다. 그저 난 검증을 당하고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큰 나무 만들기’ 검증 사건은 날 진짜로 밑바닥까지 내쳤다. 그 모두들의 검증 때문에 난 더 이상 도망갈 곳조차 없는 막다른 골목, 정신병원에 왔던 것이었다.
난 내가 왜 내 자신을 모두에게 증명해야 하는지 어이가 없었고 분노했다. 앞으로 이 일이 해결될 때까지 어떻게 이런 채로 살아가야 할지 너무나 공포스러웠다. 그 모두들의 감시를 받을 생각을 하자 끔찍했다.
그들은 내가 얼마나 괴로워하며 몸부림치는지 따위는 헤아려주지도 않았다. 그런 채로 그저 내가 얼마나 강한 지를 테스트해 본다고 했다.
난 모든 것에 분노를 느꼈다. 모두가 나의 적이었다. 세상에 내가 기댈 곳은 단 한 군데도 없었다. 심지어 부모까지도 이 일에는 관련이 되어 있었다. 그들은 내가 “나지트 애들한테 다 들었어, 진실.”이라고 호소하자, 그게 무슨 소리인지를 들어주고 확인해 주고, 차근차근 말해주지 않은 채 그저 “널 키워준 엄마 아빠를 믿어야지, 왜 나지트 애들을 믿냐?” 고 대꾸했다. 대화의 초점과 맥락이 없는 그 대답은 얼토당토않았고, 마치 내가 누굴 믿고 사는 지를 검증하는 식이었다.
아무도 나를 심연의 구덩이에서 꺼내주지 못했다. 무작정 날 정신이상자로 취급하기 시작했다. 그때 모두가 한 번이라도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차근차근 설명을 해주었더라면 내 망상이 그토록 오랫동안 지속되진 않았을 것 같다. 내 인생이 그토록 망가지진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저 모두는 “모든 게 다 네 탓이야. 네가 거지 같이 살아서 그렇게 된 거야.”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