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두 번째 이야기

by 홍주화



난 중앙대학교 불어불문학과에 입학했다. 대학교는 내가 처음 맞는 큰 세계였다. 넓은 학교 교정과 학자라는 말이 어울리는 교수들, 나이가 많은 선배들까지 그곳은 내가 모르던 세계였다.

대학은 처음부터 마음에 들었다. 우리 과는 특히 나랑 닮은 인종들이 많았다. 선배들은 대개 나처럼 영화와 음악, 소설광이었고, 프랑스에서 오랜 기간을 산 교수님들도 내가 알고 있던 어른들과는 많이 달랐다. 게다가 과 내에는 밴드가 있었고, 난 곧 ‘불문제’라는 학과 축제의 밴드 보컬이 되었다.

선배 언니들은 무척 예뻤다. 오빠들도 매력이 넘쳤다. 처음에는 조금쯤 위축감을 느끼던 난, 곧 그 모두들과 친해졌다. 그 당시 우리 과의 키워드는 밀란쿤데라, 하루키, 너바나, 오아시스, 왕가위, 그리고 빠뜨리샤까스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하루키의 열풍이 대단했다. 난 대학에 가서야 처음 하루키의 소설들을 접했는데 <노르웨이의 숲>, <1973년의 핀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등의 소설들은 매혹적이고 아름다웠다.

내 장래희망은 영화감독이 되는 것이었다. 그 무렵엔 모르는 감독, 안 본 영화가 거의 없었다. 난 할리우드키드라기 보단 유럽의 심장을 갖고 있었다. 특히 프랑스 영화들을 좋아했다. 난 틈틈이 시나리오를 습작했다. 물론 형편없는 수준들이었다.

우리 과는 학업의 양이나 부담이 거의 없는, 말하자면 놀면서 다닐 수 있는 공부를 하는 전공이었다. 불어불문학과라는 게 그랬다. 이미 외고 불어과에서 불어를 다 배웠고, 소설도 다 읽은 난 딱히 공부를 하지 않아도 늘 장학생이었다. 난 소쉬르, 데리다, 들뢰즈, 사르트르, 까뮈, 프루스트 등의 철학에도 눈을 떴다. 철학은 순식간에 내 흥미를 끌었다. 소설과는 또 다른 매력이 철학에 있었다. 그래서 난 철학적인 영화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학과 과목 중에 ‘프랑스희곡’ 과목이 있었는데 난 연극 무대에도 올랐다. 내가 맡은 역할은 라신의 <페드르>의 아리시 공주 역이었다. 불문제에서는 노래를 하고, 연극 무대에 서고, 날마다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엘피바를 찾아다니며 록음악과 재즈를 듣고, 책을 읽는 삶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세계는 모험과 신비로 가득했다. 고등학교 때 막연하게 꿈꾸고 그리던 삶이 실제가 된 듯 느껴졌다. 난 나의 전공, 나의 과를 진심으로 좋아했다. 나의 예술적 소양은 다 대학 때의 산물이다.

내 남자친구는 같은 과의 한 학번 선배로, 학과 밴드의 기타리스트였다. 그는 내가 좋아하는 외모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키도 작고, 평범하게 생겼고, 안경을 낀 그는 그러나 열정과 취향이 나와 비슷했다. 난 그가 “커트코베인의 노래를 처음 들었을 때 전율이 턱 끝까지 올라왔다.”라고 말할 때 단박에 그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그는 순수함과 야성을 간직한, 키스도 한 번 못해본 남자였다. 그에게 키스를 가르친 게 나였다.

그는 밤마다 나와 통화를 하며 통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러주었다. 특히 그는 영국 밴드 블러의 “디스 이즈 어 로우”를 좋아했다. 나도 그 노래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기타를 매우 잘 치는 남자였다.

그는 날 너무 좋아했다. 그래서 나에게 모든 것을 다 맞춰주었다. 심지어 내가 다른 남자들, 세컨드라고 부르는 남자들을 거느리는 것에도 트집을 잡지 않았다. 난 당시에 그런 그의 사랑을 거의 당연하게 여겼고, 감사하는 마음은 조금도 갖지 않았다. 내 오만함과 자만심은 하늘을 찌를 태세였다. 난 세상에 무서울 것도, 부족할 것도 없었다.

그는 늘 ‘비틀스’ 같은 뮤지션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그의 꿈이 원 맨밴드가 되어 음악을 하는 것이었다. 난 그의 꿈을 지지하고 응원해 주었다. 아무도 어떤 꿈도 갖지 않는 세계에서 그는 나와 닮은 인종이었다. 우린 서로 미래의 꿈과 포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난 그가 음악 이야기를 할 때 눈을 빛내는 모습이 좋았다. 그의 열정은 순수하고 독보적이었다.

우린 정해진 데이트코스가 있었다. 대학로의 예술영화 전용관 동숭시네마떼끄에서 어려운 영화들을 보고, 아기자기한 카페에서 비엔나커피를 마시고, 바에 가서 하이네켄을 마시는 것이었다. 우린 마치 하루키 소설 속의 인물들 같았다. 다른 외고의 불어과를 나온 그에게도 불어는 더 이상 배울 게 없었다. 우리 과는 이를테면 부르주아지의 집합소였다. 과에는 외교관이나 병원장의 자제들도 있었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나 평창동 롯데빌라에 사는 애들도 있었다. 난 비록 그들만큼 부유하진 않았으나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어울렸다.

그리고 난 다른 과의 수업들도 열심히 들었다. 철학과, 정치외교학과, 경제학과가 그것들이었다. 그 무렵 난 모든 걸 알아야 한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있었다. 난 세상의 모든 지식, 모든 비밀, 모든 신비를 다 알게 되어 내 것으로 만들고 싶었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철학자는 독일의 하이데거였다. 그의 <존재와 시간>을 처음 읽고, 난 충격에 강타당했다. 그 철학서에는 늘 내 관념 속에 희미하게만 맴돌던 것들이 너무도 명료한 언어로 심오하게 전개되어 있었다. 아마도 그 이후부터 나의 문학 취향은 ‘오헨리’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서부터 사르트르, 지드, 까뮈, 도스토예프스키, 프루스트로 바뀌었던 것 같다. 프루스트의 말처럼 나에게 철학이 부재한 문학은 죽은 것이었다. 난 문학 작품의 문학성보다는 철학성을 더 높이 평가했다.

과의 동기들은 다들 날 부러워하고 선망했다. 난 거의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퀸카였다. 게다가 불어를 너무 잘했기에 더욱 그러했다. 난 모두의 관심의 대상이 되는 느낌에 깊이 중독되어 갔다. 세상살이가 녹록지 않다는 것은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난 마약, 조울증, 광기, 천재성, 싸이키델릭 한 것들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었다. 피가 끓는 청춘이었다. 너무나 젊고 예쁜데도 늘 알 수 없는 열등감이나 자괴감에 시달렸다. 뭔가 더 완벽해지고, 더 특별해지고, 더 아름다워지고, 더 돋보이고 주목받고 싶었다.

인디밴드의 기타리스트나 보컬 등과 친분을 맺어 그들과 어울려 놀게 된 것도 다 그런 심리의 발로였다. 홍대 앞 클럽에서 공연을 하는 그들은 나보다 멋지고 특별해 보였다. 그들 중에는 심각할 정도로 막사는 애들도 있었다. 그랬음에도 난 그들의 자유로운 영혼을 동경했다. 랭보의 시 같은 독특함을 선망했다.

스물한 살 때까지 나의 머릿속을 채우고 있던 것은 랭보와 영화 매트릭스, 그리고 도어즈였다. 세 개의 공통점은 다들 미쳤고, 미치지 않고는 나올 수 없는 경지라는 것이었다. 남과는 전혀 다른 오리지널인 자기만의 세계를 이루었다는 점이었다.

랭보의 시는 광기와 천재성의 결정체였다. 랭보의 인생 자체도 그러했다. 그의 시집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을 읽자마자 곧 내 의식은 빨려 들었다. 자신이 속한 사회의 거짓과 위선, 그리고 내면의 위기를 정면으로 대응하는, “시인은 감추어진 세계의 비밀을 발견하는 자.”라는 견자시론을 주장한 랭보는 외모까지 내 마음에 쏙 들었다.

도어즈도 비슷했다. 맨 정신, 제정신으로는 나올 수 없는 곡들을 쓴 짐모리슨은 역시 잘생기고, 멋있고, 천재였다. 도어즈의 음악들은 몽환적이었다. 싸이키델릭 그 자체였다. 그리고 끓어오르는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매트릭스>라는,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 까라는 영화를 본 후 난 엄청난 지적 충격에 휘말렸다. 난 내가 느끼고 깨달았지만 한 번도 손에 잡지 못했던 관념들을 드디어 발견해 낸 듯했다. 당시 난 그 영화를 보고 데카르트의 코기토 철학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영화라고 느꼈으나 당시에는 그걸 설명할 능력이 부족했다.

<매트릭스>라는 영화를 온전히 내 것으로 흡수하여 비평을 써낸 건 44세 때, 무려 20년도 더 지나서였다. 기독교 신자로 거듭난 난 “매트릭스로 신학 하기”라는 비평글을 썼다. 글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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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로 신학 하기>

말씀이 육신이 되신 하나님 – 지각과 감각에서의 신존재 증명

데카르트는 회의적 방법론을 통해 제1명제 – 코기토, 에르고, 숨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발견해 낸다. 데카르트는 존재 증명에서 감각을 배제하고 오로지 지각(이성)에 치중하여 17세기의 과학문명, 이성주의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뒤이어 등장한 칸트는 ‘정언명령’을 들고 나온다. 그는 선험적 판단이라는 게 신의 존재 증거라는 식이었다. 데카르트의 신존재 증명이 이성과 지각을 통해서였다면 칸트는 보다 신비적, 계시적이다. 그리고 21세기인 오늘날에는 다원주의, 해체주의 등의 영향 하에 다시금 1차원적인 ‘감각’이 대두되고, 그러다 보니 감각할 수 없는 신의 자리가 점점 더 줄어들고 있다. 난 <매트릭스>라는 영화의 비평을 통해 존재의 증명, 더 나아가 신존재 증명의 방법론까지 도출해 보겠다.

1) 영화 매트릭스의 줄거리와 내용

<매트릭스>는 인류가 매트릭스라는 거대한 컴퓨터 기계의 에너지 공급원으로 존재하며 애벌레 고치 같은 곳에 잠자듯 죽은 듯 살고 있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한다. 모든 인간들이 매트릭스에 연결되어 죽은 상태로 잠만 자며, 매트릭스가 조작, 제공해 주는 거짓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다. 이때 ‘네오’라는 남자가 그 세계의 진실을 알게 되어 싸우고 인류를 구한다는 스토리이다. 그 매트릭스를 빠져나와 네오가 처음 목도한 것은 거대한 기계에 연결된 애벌레 같은 인간들의 모습이었다. 그는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그는 매트릭스 바깥 세계인 진실의 세계에 가서 진실을 위해 투쟁하는 대원들과 만난다. 매트릭스 바깥 세계는 매트릭스 안의 화려하고 아름다운 가짜 세상과는 달리 황량하고 거칠다. 그런 곳에서 진실을 위해 투쟁하다가 지친 한 남자 (싸이퍼)는 다시 매트릭스 안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매트릭스를 지키는 보안요원인 스미스와 계약을 한다. 싸이퍼는 진실 세계의 리더인 모피어스의 근거지를 알려주는 대가로 스미스 요원에게 매트릭스 안에서 자신의 삶의 조건들을 원하는 대로 설정해 달라는 요구를 한다. 즉, 그는 매트릭스가 보내주는 거짓된 신호의 세계에서 그저 행복을 느끼며 살겠다는 것이다.

싸이퍼의 배신으로 모피어스가 붙잡히고, 네오와 유일한 여자대원 트리니티는 매트릭스에서 요원들을 사살하며 모피어스를 구출한다. 탈출 직전 스미스의 방해로 네오만 남아 최후의 결전을 벌이고, 가상현실의 자아를 지배하는 법을 깨달아 스미스를 무너뜨린다. 그리고 네오는 죽임을 당하지만 트리니티의 사랑과 믿음 (키스)로 되살아나 각성자로 거듭나며,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선언한다.

2) 데카르트의 철학에 대한 매트릭스적 문제제기

데카르트의 철학대로라면 존재의 근거는 이성, 즉 생각과 지각에서 나오는 것일지언대, 매트릭스 안에 갇힌 사람들은 누구나 뇌의 신호와 조작만으로 ‘생각’을 하고 감각은 거짓이다. 생각이 감각을 조종하고 창조하고, 그럼에도 그들은 생각하므로 존재한다는 코기토와 충돌한다. 매트릭스 안에서는 누구나 뇌의 신호로 생각을 하고 있으므로. (생각=뇌의 활동) 생각하지만 존재하는 게 아닌 셈이다. 여기서 데카르트의 존재증명은 정면으로 반박된다. 과학이 덜 발달된 시대의 데카르트는 극도의 과학문명의 발전이 가져올지도 모르는 <매트릭스>를 상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3) 칸트로 넘어가서

칸트 역시도 선험적 판단에서 ‘감각’을 배제한 것은 똑같다. 그의 철학은 인간이 감각해보지 않은 것들도 –예를 들어 황금비율 같은 절대미_ 직관적으로 아는 것과 같은 인간에게는 감각 이상의, 감각을 뛰어넘는, 존재론적 근거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여기서 떠오르는 철학자가 한 명 있다. 바로 플라톤이다. 플라톤은 동굴의 알레고리에서 이데아론을 전개한다.

(인간존재는 모두 동굴 속에 갇힌 것에 불과하며 동굴 밖의 진짜 세계의 여러 사물들의 그림자만을 보고 진짜를 유추하는 존재이며, 그 진짜란 이데아 (=신)이다. )

그러나 매트릭스에서는 경험 없이 가짜 생각, 가짜 감각을 하지만, 애초에 매트릭스에서 이데아란 없고 (컴퓨터 기계에 연결된 게 진짜 세계일 뿐이므로) 그건 존재하는 방식을 증명할 수 있는 게 아니게 된다. 즉 이데아론 자체가 오류가 되는 것이다. 네오는 매트릭스를 탈출한 후 진짜 감각을 ‘경험’ 한 후에서야 비로소 자기 존재와 세계를 인식하는 걸로 나온다.

4) 감각의 중요성

난 칸트와 데카르트, 기타의 모든 학자들이 신존재 증명이든 인간 존재 증명이든 간에 ‘감각’을 배제하는 게 타당하지 않다고 본다. 매트릭스 안의 누군가가 이성과 감각 중 어느 것 하나만이라도 가짜임을 증명할 수 있었다면 나머지도 자동으로 증명이 되며 (매트릭스의 뇌로 전달하는 신호 조작이 생각을 조종하고 감각을 지어내므로 생각이든 감각이든 뭐 하나가 가짜라면 나머지도 자동으로 가짜임이 증명됨 ) 이성과 감각은 절대로 별개가 아니기 때문이다. 프랑스의 철학자 멘드비 랑은 유심론적 철학으로 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감각이야말로 주관적 인식이며 직접적으로 존재를 인식하고 증명할 수 있는 것이라 했다. 매트릭스 영화에서 마지막쯤 네오가 죽음을 맞다가 트리니티의 키스 (감각)로 인해 생명을 되찾는 것은 존재 증명에서 감각이 차지하는 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5) 그렇다면 매트릭스 영화에서 매트릭스 바깥의 진실의 세계에는 신이 있을까?

우리가 사는 세계는 매트릭스를 벗어나면 또 다른 매트릭스가 존재하는 무한 루틴인 게 아닐까? 내가 나비의 꿈을 꾸는 건지, 나비가 나의 꿈을 꾸는 건지........ 알 수 없는......

이런 세계, 이런 시대에서 대체 어떻게 하나님을 증명할 수가 있을까?

6) 성육신 – 말씀이 육신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

말씀 (이성)이 육신 (감각) 이 되신 것이므로 존재증명도 똑같아야 한다. 네오와 트리니티의 키스도 그것을 보여준다. (트리니티는 삼위일체를 암시하는 용어이다)

하나님 (성부) 이 인간의 몸(성자 그리스도)으로 이 인간 세상에 내려와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질 수 있었다. 즉 감각할 수 있는 대상이 된 것이다. 또한 현재 우리 눈앞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바로 하나님의 작품이자, 하나님 자신이다. 누구든 보고 듣는다.

7) 그런데도 신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문제

그것은 이성의 문제가 아니라 감각의 문제인 것이다. 즉 시각장애와 청각장애의 문제이다. 예수가 눈먼 자를 보게 했다는 성경 속 구절이 그 뜻이다. 4차원의 감각은 영적 능력의 감각이기 때문이다.

8)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무엇인가?

장애는 고침 받아야 한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힐러-치유자.라고 불리는 것이다. 세상의 빛과 소금인 것이다.

9) 결론

매트릭스 바깥 세계의 신....... 혹시 이곳도 또 다른 매트릭스의 안인 게 아닐까,라는 질문을 앞서했다. 맞다. 이곳은 하나님이 창조하고 설계한 또 다른 매트릭스이다. 즉 인간은 어떻게 해도 매트릭스, 하나님의 손바닥 안을 벗어날 수 없으며, 애초에 피조물이 신이 될 수가 없다. 무한히 매트릭스가 반복될 거라는 막연한 두려움과 지각이 바로 하나님의 존재 증명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세계ㅡ 지금 발을 딛고 있는 이곳은 영원히 진짜가 아닌 것이다. 늘 매트릭스다. 진짜 (=이데아)는 하늘나라, 하나님의 나라일 뿐이다.

어차피 어디에 있든 매트릭스이거늘....... 그냥 보내주는 가짜 신호 속에서 행복하면 그만 아닐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모두가 진실과 진리를 위해 살 필요는 없으니까.

그러나 적어도 장애를 가진 것임은 인지해야 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장애를 고쳐주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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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보석 같은 여배우 이자벨아자니는 나의 뮤즈였다. 그녀는 같은 여자인 내가 봐도 완벽하게 아름다웠다. 난 그녀가 나온 모든 영화들을 다 찾아보았다. 그중에서도 내가 가장 빠져든 영화는 <까미유끌로델>과 <여왕 마고>였다. 그녀는 아름다운 미모만큼 연기력과 작품을 고르는 안목도 환상적이었다.

까미유끌로델은 전설적인 조각가 로댕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다. 그러나 로댕의 변심과 시기심으로 결국 작품을 다 빼앗기고 정신병원에서 죽은 비운의 천재였다. 영화를 찍은 당시 이자벨아자니는 30대 중반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마치 고등학생처럼 보였다. 검은 망토를 두르고 있는 하얀 피부와 푸른 눈의 그녀는 이 세상의 여자 같지 않았다.

여왕 마고는 프랑스 역사의 격동의 시대에 왕실의 정략결혼에 희생된 공주를 연기한 영화였다. 당시 나이가 40대였던 그녀는 20대로 밖에 보이지 않는 방부제 미모가 빛이 났다. 난 그녀를 너무 좋아한 나머지 내가 직접 제작한 내 홈페이지의 모든 갤러리를 그녀의 사진으로 채웠다.

같은 불어과의 다른 애들 중에서 나처럼 이자벨아자니를 좋아하는 애는 드물었다. 있다면 그런 애들은 다 나처럼 이미 영화나 예술 분야에서 일가견을 이룬, 특이하고 드문 애들이었다. 우리 과 역시도 평범한 대개의 아이들은 핑클이나 에스이에스 같은 여자 아이돌을 좋아했다. 그래서 그들의 눈에 난 또 한 번 독특하고 멋져 보였다. 확실히 내 세계는 남들과는 여전히 달랐다.

급기야 난 프랑스라는 나라에 대해 환상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과에는 이미 프랑스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거나, 프랑스에서 아예 유학을 하고 있는 선배들이 많았다. 난 그들이 심하게 부러웠다. 나도 기회만 된다면 꼭 프랑스에 가서 그 나라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보고 싶었다.

2학년이 끝날 무렵, 과의 동기들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어학연수로 프랑스를 택하는 애들과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영미권으로 가는 애들. 난 두 말할 것도 없이 프랑스 파였다.

내 남자친구는 내가 2학년을 마쳤을 때 입대를 했다. 그래서 난 졸지에 반쪽을 잃었다. 그가 주었던 안정감이 너무 컸었기에 난 약간의 우울증을 겪었다. 그를 그리워하는 마음, 그의 부재가 주는 상실감, 그리고 프랑스에 가고 싶지만 보내주지 않는 부모와의 갈등 등으로 난 꽤나도 우울했다.

난 휴학을 결심하기에 이르렀다. 이상하게도 학교가 불편했다. 그때부터가 나의 평생의 천형인 정신질환인 조울증의 시작이 아니었나 싶다. 난 학교에 가면 다른 아이들이 날 두고 조금 수군대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결국 난 휴학을 신청했다. 행정실에서 휴학계를 내고 나오는 길에는 해방감이 느껴졌다. 앞으로 뭘 해야겠다는 생각 따윈 없었지만 억지로 타인들의 이상한 시선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난 학교를 쉬게 된 것에 감사했다.

그때 내 증상은 조울증의 전 단계라는 우울증이 맞았던 것 같다. 보통 조울증은 초기에는 우울증으로 온다. 대인관계에서 사람들의 시선에 부자연스러움과 불편함을 느꼈고, 남들이 날 욕하는 듯 느꼈던 건 분명히 조울증의 시초였다. 과 동기들과 아주 사소한 대화를 나누다가도 난 그들이 날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는 착각을 일으켰다. 난 휴학을 하고 나서 완전히 혼자만의 세계에 침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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