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이 되기로 결심했다

네 번째 이야기

by 홍주화


난 너무 우울하고 죽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한시라도 빨리 이 사건을 해결해야만 맘 편히 자유롭게 숨을 쉬며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진실은 나올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난 하루하루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댔다. 이 사건이 해결되지 않으면 난 항상 검증과 감시를 받으며 구속받으며 살아야 할 팔자였다. 그 점이 너무나도 분노스러웠다.


나지트에서 들은 바로는 내가 “나오기만” 하면 내가 하고 싶은 모든 걸 다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날 회식 자리에서 내 바로 옆에 앉았던 한 여자가 분명히 내 눈을 마주 보고 미소 지으며 말했었다.


“주화야, 빨리 나와. 우리 사회가 널 필요로 해. 너 나오기만 하면 뭐든지 다 할 수 있어. 살고 싶으면 끌지 말고 나와.”


‘나온다’라는 건 여러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는 말인 듯했다. 첫째로, 내가 누구인지 검증을 받아 정체가 나온다는 것. 둘째로 이 사건 자체가 해결되어 나온다는 것. 셋째로 내가 세상의 전면에 등판한다는 것.


“그 사람이 네가 너무 예뻐서 네 칼자루 한 번 빼앗아보는 거래. 너 다 나오면 너한테 돌려줄 거래.”


그 여자가 또 했던 말이었다. 그 사람이란 건 대통령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통령이든 나발이든 난 누군가가 내 인생을 마음대로 주무르는 게 용납되지 않았다. 그들은 이 일을 두고 ‘권력에 대항하는 민주투사’라고도 말했다. 무엇이든 간에 모든 게 다 내 자의와는 상관없이 돌아가고 있었다. 난 억지로 민주투사가 되어 있는 꼴이었다.


내가 두려워한 건 유일하게 신이었다. 대통령 따위는 내 관심 밖이었다. 그들 주제에 날 이토록 마음대로 조종하고 망가뜨리다니 어처구니가 없었다. 민주투사? 코웃음이 나오는 말이었다.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쌍팔년대 식 민주투사를 운운하는 것 자체가 웃겼다.


그들이 나에게 거는 기대는 매우 컸다. 난 그들 모두를, 불특정 다수 모두를 갈가리 찢어 죽여버리고 싶었다. 나로 하여금 모두에게 무시와 멸시, 기피를 받는 정신병자가 되도록 음모를 짠 그들을 향한 분노심은 무척 컸다. 급기야 그 분노심은 나 자신을 향했고 날 갉아먹었다.


난 정신병원에서 타온 약 백 봉지를 한꺼번에 삼켰다. 이른바 자살시도였다. 그 약을 먹고 5분쯤 지나자 상태가 이상해지는 게 느껴졌다. 난 갑자기 공포에 휩싸여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약을 한꺼번에 다 먹었으니 난 곧 죽을 거라고 말했다.


이후 난 고대병원 응급실에 실려가 위세척을 받았다. 뭐, 하나마나한 것이었다. 이미 먹은 약들은 체내에 다 흡수되었을 시간이 지나있는 때였다. 위세척의 느낌은 몽롱한 정신 가운데서도 지독하게 역겨웠다. 입 안에 호스를 꽂아 물을 펌프질 해서 식도로, 위로 물이 밀려들어가는 느낌이 아직도 생생하다.


이후 한 며칠간은 제정신이 아닌 채로 보냈다. 약의 영향이었다. 한동안은 얌전히 지내던 난 다시 또 발작을 일으켜 집안 물건들을 다 두드려 부순 후 다시 정신병동에 강제입원 되었다. 가만 보면 부모는 자신들이 감당이 안될 때마다 날 가두는 것 같았다. 아무도 어떤 설명도 없이 무턱대고 날 가두었고, 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난 부모가 이 사건에서 내 덕에 부와 권력을 누리게 된 것을 알았기에 부모가 너무 혐오스러웠다. 그들은 내가 진짜로 미쳐버릴 까봐 일부러 미친년 취급을 해서 약을 먹이는 것이었다.


내가 고려대학교 정신과 폐쇄병동에서 말썽을 자꾸 일으키고 적응을 못하자 부모는 날 <국립서울정신병원> 이란 곳으로 바꿔 입원시켰다. 그곳은 담배를 피우는 게 허락되기에 보다 잘 견딜 수 있을 거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모두가 나의 적인 그런 정신 상태로는 어디에 간들 내가 제대로 적응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국립서울병원에서는 하루에 딱 4대의 담배만이 허용되었다. 단체로 담배를 피우는 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그 시간 외의 흡연은 엄격히 금지되었다. 그래도 고대병원처럼 한 달 내내 억지로 힘들게 금연을 하는 건 아니었기에 처음에는 사정이 좀 나았다.


국립서울병원에는 역시 별의별 인간들이 다 존재했다. 한 스무 살의 여자애가 가장 특이했다. 그녀는 재수생이었는데 카이스트에 입학하겠다며 병원에 와서도 수학 공부를 했다. 그리고 자신이 작사, 작곡했다는 노래를 불러주기도 했다. 또한 남자친구의 이야기도 했는데 그와 동거를 했었다고 했다. 그러던 게 그 남자가 잠수를 타서 헤어지고 난 후 발병을 한 것이었다. 그녀의 병명도 조울증이었다. 딱 봐도 그녀는 늘 기분이 고양되어 붕붕 떠 있었다. 영어를 아주 잘했는데 미국에서 1년을 살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애는 아주 성격이 못된 애였다. 내가 몰래 담배를 피운 것을 알아차리고 의료진에게 일러바친 게 그 애였다. 그 애는 자기가 처음에 여기 와서 담배를 못 피우게 해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다른 사람이 담배 피우는 꼴을 두고 볼 수가 없다고 말하며 분통을 터뜨렸다.


그간 꽤 친하게 지냈던 애였기에 그녀의 배신은 충격적이었고, 난 강박이라는 조치에 취해졌다. 강박이란 것은 손발이 침대에 묶인 채 4시간 또는 8시간을 감금되는 일종의 처벌이었다. 정신병원에서는 비교적 흔한 벌이었다.


난 8시간 강박에 처해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나의 분노심은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난 손발을 묶인 채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간호사가 와서 내 입을 틀어막았다. 그랬음에도 난 소리를 질렀고, 결국 의료진이 감당이 안되어 부모에게 연락을 취했다. 부모가 한달음에 달려와 묶여있던 날 구출해 주었다.


이후 난 아빠가 수소문해서 알아낸 명의라는 의사가 있다는 삼선교의 <베드로의원>이란 개인병원으로 옮겼다. 아빠는 개인병원은 입원을 안 시키니까 앞으로는 말 잘 듣고 약을 잘 먹으란 조건을 내걸었다. 난 억지로 끌려가 입원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만으로도 기뻤기에 아빠와 협상을 했다.


베드로의원의 의사는 60대의 남자였는데 아버지 때부터 2대째 걸쳐 정신과 의사를 가업으로 잇고 있는 남자였다. 난 그에게 내 병이 뭐냐고 물었다. 그는 “그건 더 지켜봐야 안다.”라고 대꾸했다. 그게 내가 그 병원을 다닌 지 2년이 넘었을 때의 일이었다. 난 속으로 비웃었다. 2년을 봐왔으면서도 병명이 뭔지를 못 밝혀낸 건 병이 없는데 내가 큰 나무 작전에 시달리기 때문인 게 분명했다. 난 그를, 이 큰 나무 만들기 사건을 만든 모두를 비웃었다.


좌우간 난 군말 없이 매일 저녁 약을 꼬박꼬박 먹었다. 더 이상 부모와는 충돌하지 않았다. 그러나 심리는 이미 파탄 나고,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학교는 다니다, 휴학하다를 거듭했다. 학교에 가면 모든 아이들이 날 보고 수군대고 멀리하는 게 느껴졌다. 아무도 정신병자가 된 나를 상대하지 않았다. 내 동기들은 이미 다 졸업을 하고, 난 생면부지의 후배들과 같이 수업을 들었는데 그들은 나와 가깝게 지내려 하지 않았다.


난 외로움과 쓸쓸함, 공허감에 눈을 떴다. 난 지독하게 외로웠다. 그 무렵 셸리라는 영국 시인이 쓴 <달에게>란 시를 읽게 되었다. 그 시는 꼭 나를 타깃으로 쓰인 시 같았고, 난 읽자마자 눈물을 쏟았다.


달에게


그대가 그토록 창백함은


하늘을 오르고 땅을 굽어보며


친구도 없이 헤맴에


지쳤기 때문인가.


말을 나눌 사람이 한 명도 없었고, 주변에는 아예 대인관계 자체가 전무했다. 난 늘 혼자서 방구석에 틀어박혀 은둔형 외톨이가 되어갔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사소한 말을 나눌 누군가였다. 그러나 이미 남들과는 너무 달라진 삶에, 고립된 삶에, 친구가 생길 리가 만무했다. 난 늘 내 신세를 한탄하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토록 우울하고 공허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난 모든 곳에서 절대 악인 공허를 발견했다. 모든 곳에는 악이 있었다. 아무리 밝고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의 삶이라도 심연에는 공허가 자리 잡고 있었다. 공허는 사방에 있었다. 광활한 하늘과 심해, 공중에, 우주에, 심지어 어린아이의 웃음소리와 임산부의 배에까지. 한때 모든 세계가 의미로 충만했던 나에게 이제는 의미의 정반대인 공허가 보였다.


신이 지으셨다는 이 세계는 의미로 충만해야 했다. 그러나 내가 목도한 것은 사방에 널려있는 공허였다. 내 내면이 공허해짐에 따라 나의 외부 세계도 따라서 공허로 가득 찼다. 공허는 신의 정반대축인 절대 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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