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트워크의 체계 속에 입이 붙어버린 나, 횡령으로 얼룩진 신뢰의 붕괴
내과 병원을 그만두고 한 달간 뉴질랜드 여행을 다녀왔다. 나와 어렸을 적 함께 잠도 자고 이야기도 많이 나눈 막내 이모가 뉴질랜드로 이민을 가셔서 살고 계신다. 한국에 다니러 온 이모가 뉴질랜드로 들어갈 때 나도 함께 들어갔다. 한 달 동안 뉴질랜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넓은 초원을 걷고 맛있는 음식도 먹고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보냈다. 너무도 평화로운 시간들로 방전된 나는 조금씩 충전되기 시작했다.
돌아와서 다시 취업을 준비했다.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경험 하는 것을 즐기는 나는 외과 의원에서 정형외과로 재활의학과로 내과 병동으로 그리고 내과 개인병원으로 이어진 직장 생활이었다.
이번에는 치과 병원에 도전을 하게 되었고 , 코디네이터의 일도 배우고 싶어 전국적인 네트워크 망이 되어 체계적인 서비스 체계가 잡혀있는 예치과 병원으로 입사를 했다.
서비스도 배우고 싶었지만, 치과의 진료를 보조하는 업무를 배우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왼쪽, 오른쪽 이 자주 헷갈리고, 석션을 하는 것도 , 순서에 맞추어 원장님의 손을 맞춰주는 보조도 하나도 쉬운 것이 없다. 매일이 멘붕이고 매일이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으로 살았다.
보철과에서 헤매니 원장님들께서는 교정과로 옮기라 하셨고, 다시 새로 배우는 시간이 되었다.
교정과로 옮기며 실장님은 자신의 퇴사를 앞두고 하나라도 더 알려주시려고 하시는데 난 머리가 매일매일 백지가 되어 새롭고 낯설기만 했다. 버벅거리는 나를 다그치고 화를 내시기도 하니, 더 소극적인 자세가 되고 정말 하루하루가 긴장되고 떨리는 불편한 시간이었다.
직원 복지 중 자기 계발비라는 것이 있었다. 헬스, 영어학원, 독서, 등등 무엇이든 결재 후 영수증 제출하면 보조해 주셨다. 그리고 그것들을 발표하는 시간들도 있었다. 자기 계발에 대한 성과 발표이다.
또 주제를 주고 팀을 만들어 발표하는 시간들도 있었다.
근데 좀 힘든 일을 지켜봐야 했다. 교정과 원무팀 선생님의 공금횡령이라는 사건이다. 의심이 되는 결재 건수가 있어 모든 대장을 비교해 본 원무팀장님이 단서를 잡고 감사를 실시하다 모두 발각된 것이다.
경찰이 와서 현행범으로 체포해 가는 일이 있고, 교정과 원장님은 매일 한탄하시고 한숨을 내쉬시며 화를 내기도 후회를 하기도 뭣한 다 본인의 불찰이라고 죄송하다는 말만 하셨다.
그런 일들을 겪어내는 원장님께 힘든 나는 사직을 말씀드리기 어려워 꾸역꾸역 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그러던 중 전 직원 합숙 캠프에서 원장님의 깜짝 댄스와 술 취해 풀어지신 모습은 직원들의 걱정을 단숨에 줄여주고 다시 함께 하는 시간들이 탄탄대로 일 것 같았다.
직원들의 관계는 거리 두기로 그다지 친하지는 않았다. 원무팀 대리님의 폭죽 제조 취미로 간간히 폭죽을 터뜨려주시는 이벤트를 보여주셔서 즐거웠다. 교정과 직원들과 에버랜드 케리비어베이에 다녀온 것도 즐거운 추억이었다.
그리고 젠틀하시고 실력 좋으신 교정과 원장님께서 부르셨다
"지인 씨, 환자들하고 좀 대화도 하고 말도 좀 하고 그렇게 좀 적극적으로 해주세요.
너무 답답해요. 좀 바꿔주시면 좋겠어요."
"네 원장님 , 노력해 보겠습니다."
일에 대해 자신감이 떨어지니 입도 달라붙어버렸다. 원장님께 한 소리 들은 후라 더 긴장되는 시간들이 계속되었다. 횡령 사건도 정리되고 교정과도 안정이 되어 나는 천천히 말씀을 드렸다.
"제게 베풀어주신 친절과 기다림에 감사합니다. 제가 너무 실력이 모자라서 원장님께 폐가 될 것 같아요.
환자분들께 죄송하기도 하고, 이번 달까지만 하고 사직하겠습니다."
"혹시 연봉 협상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그래요?"
"아닙니다. 간호조무사로 치과에서 받는 월급이 최고로 많았습니다. 그건 아닙니다."
"알겠어요. 본인이 결정을 한 것 같으니 마무리 잘해주세요."
송별회로 횟집에서 거하게 사주신 원장님, 마지막까지 고맙고 감사한 마음 한가득 남았다.
이번 경험은 무엇이었을까? 좋은 기억과 안 좋은 기억이 공존한다. 공금 횡력 사건으로 혼란스러운 경영 분위기를 경험하고, 실력 없어 입이 붙어버린 나의 회피적 성향도 보았고, 퇴사에 급한 실장님의 다그침에 얼어버린 나도 보았다. 여러 가지의 그림자가 된 이 경험이 나의 하얀 건물의 검은 이야기 여섯 번째이다.
이제 이십 대의 후반으로 가는 인생의 여정에서 나는 어느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걸까? 내가 원하는 방향인지 떠밀려 서가는 행로인지 알 수 없이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