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진료실, 차가운 병동의 기억

치유의 공간에서 마주한 가장 검은 진실

by 지인



재활의학과를 퇴사하며 원장님은 부모님을 만나 정신과 치료를 받기를 권유하셨다. 나의 조증과 울증, 심한 불면증으로 인한 체력 저하, 사람과의 관계를 불편하고 힘들어하는 모습들이 어른의 눈에는 마음이 아픈 아이로 보였나 보다.

​몇 군데를 찾고 상담도 약물도 복용했다. 관계 맺기, 사람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없으니 그냥 괜찮은 것 같았다.

​교차로를 뒤지며 취업을 알아보고 3교대를 하는 내과 병동으로 출근하게 되었다. Day근무는 회진, 오전 정맥주사, 병실 정리, 점심 약, Evening근무는 병동 환자 약을 조제한다. 내과 약이라 엄청 많다. 저녁약 챙기고 주사 연결, 다른 주사 챙기고 병실정리. Night근무는 환자 들 자는 중간중간 주사 챙기고 콜 오면 불편 사항 해결하고 오전 수액준비 약 챙겨놓고 오전 5시 반부터 혈압, 맥박, 호흡, 체온, 혈당체크를 하고 간호기록에 기록한다.

​쉼 쉴 틈도 없는 바쁜 날들이었다. 갑자기 무릎 통증으로
근무 중 진료를 보는데, 원장님이 불을 끈다. 진료실의 어둠은 공포로 다가왔다. 당황스러운데, 곁에 진료 보조해 주는 간호사 선생님이 계셨다.

​"바지를 무릎까지 내려. 상태를 보게."

​굳이 불 끄고 바지를 내려서 봐야 할까? 당황스러운 순간
난 상급자의 언행이 불쾌했지만 그대로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 순간 나를 보호해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진료를 받고 나와 무섭고 긴장했던 시간이 지나서일까?
눈물이 쏟아지고 온몸이 떨렸다. 진정되지 않아, 부모님께 무릎 통증이 심해 근무가 힘들다고 전화를 했다. 개인택시를 하시는 아빠는 일을 하시다 바로 달려오셨다.

​몇십 분이 지나고 안정을 찾았지만, 나는 상급자에게 보고하고 조퇴를 했다. 계속 귓가에

​'바지 내려'

​라고 말하는 원장님이 음성이 환청이 되어 들린다.


며칠 후 밤 근무 후 아침 혈압 체크 하러 병실을 도는데
80이 넘은 치매와 암을 가지신 할아버지를 혈압을 재는데 갑자기 내 가슴을 손으로 꽉 움켜쥐신다.
순간 깜짝 놀라, 뒷걸음치며

​"할아버지, 왜 그러세요? "

​놀란 토끼 눈이 된 나를 히죽히죽 웃으며 쳐다보신다.
나머지 환자분들 체크를 하고 퇴근 전 간호부장님과 수간호사님께 보고를 했다. 환자분께 주의를 주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 후 한 번 더 그 사건이 터졌다. 같은 환자분이셨다. 간호부장님께 보고 드리니

​"아고, 남자는 밥 숟가락 들 힘만 있으면 그 짓거리한다더니, 그 할아버지 왜 자꾸 그런데."

​화를 내시며 환자분께 가셨다. 퇴근 전 수간호사님께서 부르셔서 가니

"네가 행실을 똑바로 하고 다녀야지."

환자분 혈압을 재는 행동에 무슨 행실이 바르지 못한 걸까?
여자의 적은 여자인 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수간호사님의 말, 원장님의 이상한 진료, 성추행 환자.
20대의 나에게는 감당하기 버거웠다

​이것이 내가 겪은 하얀 병원의 네 번째 검은 이야기이다.

나는 그렇게 다시 숨어버렸다. 그리고 나에게 병원은 더 이상 치유의 공간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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