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세상은 독한 청양고추다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깊어지는 향기로 봄의 꽃향기가 흩날린다

by 지인





전 병원은 월급마저 계속 늦어졌고 경영이 불안했다. 교대 근무도 몸에 부담이 되었다.

겪지 못할 일들을 겪으며 조금 회복을 취하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작은 개인병원 내과에 들어갔다. 원장님 한분, 간호조무사 1분 내가 들어가 2명이 근무다.

평일 9시 출근하고 7시 퇴근이다. 공휴일도 토요일도 근무다. 일주일에 일요일만 하루 쉬는 근무이다.

평상적인 출퇴근을 하며 일상적인 생활에 나는 편안함이 느껴졌다.

집에서 20분 정도 걸어서 가면 되는 거리라서 교통비도 들지 않았다. 월급은 75만 원 정도였던 것 같다.


원장님의 성격은 차분하시고 조용조용하셨다. 같이 일하게 된 선임은 나보다 어린 20대 초반이다.

근대 성격이 불같다. 화도 많고 자신의 방법을 고집하는 본인의 말을 따라야 한다는 것은 강박처럼 내게

주입하고 어느 정도 가스라이팅이 되어 무기력한 시간들이었다.


선임이 2달 정도하고 그만두게 되고 새로운 후임은 나랑 나이가 같았다. 나는 존댓말을 쓰고, 선생님이라는 호칭을 쓰자고 먼저 제안했고 후임도 괜찮다고 하여 , 그렇게 지냈다.

크게 모나지는 않았지만 , 존댓말을 하는 것에 거부를 가끔 나타내고 불편함을 표현했다.

원장님도 회식 자리에서 물으셨다.


"왜 존댓말을 써요?"


"그게 서로에게 선을 넘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서요."


"별나네, "


하며 헛웃음을 지으셨다. 원장님조차 그런 상황이 불편하셨던 것 같아.

그리고 어느 날 ,, 진료실에서 나오셔서


"저기, 혹시 속이 안 좋은가? "


"네?"


"치아가 안 좋은가? 입냄새가 엄청 나서 내가 좀 힘드네.

좀 검사를 해보던가 , 뭔가 해결을 좀 하게."


"네."


순간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불편을 드려 죄송하여 거의

이제 입을 거의 들썩거리지 않았다. 충치도 없고, 위도 괜찮았다.

그리고 한두 달이 지나고 다시 진료실을 박차고 나오신 원장님.


"내가 하는 말에 대답 좀 해주겠나. 답답하네."


"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입냄새 나신다 해서 조그맣게 대답한 것이 원장님의 답답함을

화가 나게까지 만들어버린 거다.


'아, 도대체 어쩌라는 거야.'


난 애매하게 중간 발음으로, 아니면 고개 끄덕이며 진료실은 나왔다.

그렇게 주사, 약 처방을 이야기해 주시는 원장님께 그렇게 대했다.


내과의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는 정맥주사를 얼마나 잘하느냐다. 거의 일주일에 3번은 영양주사를 사가지고 오시는 할아버지 한 분이 계신다. 손등 밖에는 없는 혈관에 짧고 울퉁불퉁 그리고 피부는 얇고 밀리고 어려웠다. 그분 주사를 놓으며 계속 실력이 향상되었다.


일 년을 일하며 동갑인 후임과는 적당한 거리 유지로 그냥 직장 동료로만 지냈으나, 가끔은 서도 부딪히고 상대의 모습이 이해되지 않은 순간도 많았다. 그러나 둘 뿐인 공간에서 불편하면 너무 힘든 하루를 예상해야 해서 마음을 비우고 화해를 청하는 일들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일 년 남짓 머물르고 퇴사를 결심했다. 뒤로 들어오는 직원은 나와 두 달을 일했던 선임이 다시 재입사하기로 했다. 다시 봐도 강한 인상의 그녀, 이제는 그냥 덤덤하다.


마지막 날 반나절 일하고 경력증명서를 신청했는데 일수를 어제로 해주셔서 오늘 일한 것까지 해달라는

요구에 원장님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한다며 당황하며 화를 내셨다.

끝까지 찝찝하게 끝나게 되었다.


내과의 특성을 이해하는 경험이었고 , 다양한 인성의 캐릭터들과 어울리는 세상살이가 내게는 조금 푸닥거리는 나날 들었다. 내게 세상은 부드러운 바닐라 아이스크림이 아닌 독하고 알싸한 청양고추 맛이다.

이것이 나의 인생에 다가온 다섯 번째 하얀 건물의 검은 기억이었다.


인생의 여정 이제 어떻게 흘러갈까?

나에게 이십 대는 좌충우톨 위아래 왔다 갔다 휘청되는 회오리다. 그리고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이 깊어지는 향기로 봄의 꽃향기가 흩날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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