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구증이라는 감옥, 10살의 내가 웅크리고 있었다

하얀 건물의 차가운 시선, 22살의 무력함

by 지인

함구증이라는 감옥, 10살의 내가 웅크리고 있었다



아빠랑 같이 간 그곳에서 난 무언가를 꺼내놓으려고 애썼지만 잘 꺼내지 못했다.

"아빠는 방관자였어요. 내가 힘든데도 모르는 척했어요."

뒤에 있는 아빠 마음이 어떠셨을까?

그리고 약을 받고 약을 삼키기가 힘들었다. 22살 처음 먹게 된 우울증 약, 약이 무서웠다. 머리를 조정하는 것 같았고 뇌세포를 파괴시키는 것 같았다. 삼키지 못하고 먹지를 못했다.

다시 찾은 의사는 말을 할 때 집중해서 듣는 다기 보다 시계를 계속 쳐다보면 끊는다.

" 상담 치료하실 건가요? 전 1시간에 7만 원인데 하실 수 있겠어요?

순간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시는 눈길이 기분이 나빴다.

"전 한 시간 십만 원 하는 의사에게 갈게요. 안 하겠습니다."

하고 뛰어나왔다, 날 무시하는 눈길과 말투에 기분이 너무 상했다. 그 상처가 깊게 남아 아직도 정신과가 싫다.


그리고 대학을 가겠다고 입시 학원에 들어갔다.
정신이 복잡한데 공부가 될 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이해속도가 빠르고 암기도 잘되고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었던가 싶게 집중도도 높았다. 의대를 목표로 정진하는데, 마음이 가만두지 않는다.
6개월을 못하고 나와 간호학원으로 등록을 했다.



응급구조사로 개인병원에 취업의 제약이 많았다. 1년 과정을 공부하고 실습도 하고 재활의학과에 들어갔다.
비만관리치료와 주사실, 처치실, 데스크 업무였다. 여기도 쉽지는 않았다.

토요일마다 코디네이터 강사 교육을 받으러 서울 본원으로 가서 교육을 받았다. 간호조무사와 코디네이터를 같이 따고 강사까지 해보는 거다.

일은 수월치 않았다. 물리치료사 선생님과 다툼이 있었고, 간호조무사 언니와 잘 못 지냈다. 점점 힘들었다,
물리치료사와의 대우 차별도 심해서 갈등이 많았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는 물리치료사는 조의금에 휴가를 일주일이나 보내주고
한 달 차이로 친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치르는 나에게는 조의금은커녕 휴가조차 꺼려하셨다. 다행히 주말에 돌아가셔서 월요일 하루만 쉬면 되는 거였다.

그렇게 쉬고 참 어이없었다.

사직을 하고 나오면서도, 실업급여를 해주신다고 하시더니 깜깜무소식에 전화를 여러 번 했다.

원장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고 물리치료사가 연락이 왔다.

"샘 조문 와야 하는 거 아니야, 저번에 할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조의금 받지 않았어?"

"선생님 저 조의금 받은 거 없고, 휴가도 겨우 하루 주셨어요. 제가 갈 이유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냥 단칼에 거절하고 전화를 끊었다.

왜 이리 인복이 없는 건가?
이것이 나의 하얀 건물의 검은 기억 세 번째였다.




그 무렵 단월드라는 곳에서 수련을 받았다. 자아수련이란 것인데 뭔지는 모르지만 가서 날 탐구해보고 싶었다. 수련이 무르익어가며 시간이 흐르고 난 명상을 하다 내 모습을 발견했다.
작은 어깨를 들썩이며 웅크리고 앉아있는 아이, 깜깜한 방에 혼자 있는 아이, 나다. 뒤로 가 안아주었다. 가슴속 뜨거운 용암이 들끓었다.

'뭘까? 무엇일까?'

며칠을 앓고 나서 난 서서히 기억이 났다.
4학년 10살인 나에게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우주소년단 하계캠프에서 선배언니에게 5천 원을 빌려주고 며칠이 지나고 갚지 않아 달라고 하자.

"야, 이게 어린 게 선배한테 돈을 달래, 야 너네 얘랑 놀면 죽여버린다."

다음날 버스에 올랐다. 맨 뒷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언니들과 친구들은 날 째려보며 차가운 시선을 보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와서도 난 누구에게도 그날의 일을 말할 수 없었다. 죽음이라는 공포와 두려움, 내가 무슨 행동을 하면 주변에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다.

입을 닫았다. 그렇게 난 내 안으로 파고들었다.

그때 기억에 죽음이란 단어가 주는 상처가 컸다.
줄을 따라 서있으면 앞에 가는 사람의 머리를 총으로 쏴서 해부해보고 싶었다.
빵빵한 배를 보면 총으로 쏴서 팡 터트려보고 싶었다.
충동적인 생각들이 불쑥불쑥 내 머리를 지배했다.

학업에 집중하기 힘들었다. 시험 성적이 나오지 않아 엄마에게 회초리도 많이 맞았던 것 같다.
그래도 마음의 힘듦을 이야기할 수 없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갔다.

학교에서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시간을 매어둔 채 한 곳을 응시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 후 중학교, 고등학교 친한 몇 명의 친구를 제하고는 대화를 나누지 않았다.

함묵증을 앓았다는 걸 나는 나중에 알았다.
말이 없어지니 생각이 많아졌다.

대화를 하면 편할걸 계속 혼자 생각한다. 혼자 판단하고 결정하고 , 두려워 뒷걸음친다. 학교는 내게 공상을 하는 공장이었다. 생각꼬리물기는 매일 이어졌다.

일기라는 친구에게만 말을 해줬다. 공상으로 하는 생각을 난 일기에 빼곡히 적었었다. 친정에 가면 지금도 박스에 넣어져 있다. 웃음만 나오는 어이없는 이야기들이지만 그때는 심각했다.


그리고 난 어느 순간부터 어른들이 싫었다.
그때의 나는 어른이 된 지금의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을까?
















이전 02화상품권의 온기와 안테나의 냉소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