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유니폼 속에 감춰둔 내 영혼의 멍자국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난 두 번째 병원에 들어갔다. 사무장이란 분이 넉넉하신 분이었다. 전에 일했던 곳을 아신다며 얘기하셔서 마음을 졸였다, 계장의 마지막 말이 생각났다.
"거기 폐업했어."
이 말만 하신다. 그리고 출근하며 항상 친근한 아버지처럼 너그러우셨다. 주간일하다 나이트는 오전 아홉 시부터 담날 9시까지 이고 퇴근 후 쉬는 날이다. 선임자가 근무표를 짜주면 그대로 한다.
한두 달 업무파악, 환자가 물밀듯이 밀려들어온다.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날들이었다.
원장님의 품성이 너무 좋으셨다. 천주교 신자셨고, 아버님께서 공무원이셨고, 어머님께서 여사님들을 도와주시며 주방과 청소를 관리해 주셨다,
부모님의 인상도 편안하시고 좋으셨다. 같이 지내는 구성원들도 괜찮았다. 몇 달 지나 구성원이 나가고 들어오고 바뀌고, 선임자도 바뀌었다.
분위기가 술도 담배도 즐기는 상황으로 몰아가졌다. 술도 못하고 담배는 근처도 못 가고 노는 것을 즐기지 않는 난 어울리기 힘들었다.
나를 빼고 서로들 술자리를 하며 친해지고 고의는 아니지만 혼자라는 생각이 느껴졌다. 그래도 묵묵히 내일만 하며 지냈다. 그러다 그들이 싸웠는지 한 명 두 명 내 곁으로 온다. 그냥 그럭저럭 지냈다. 기분이 들뜨기도 했다. 언니도 친구도 내게 붙어 이야기를 한다.
원장님의 센스도 기억난다. 직원들의 다툼과 여사님들의 다툼이 계속되고 사람관리가 힘들어 한탄을 하셨다.
하루는 야간 근무를 하는 날 부르셨다. 롯데백화점 상품권을 내미시며
"일 열심히 해줘서 고맙다. 이거 너만 살짝 주는 거니까 얼른 넣어."
"네 , 원장님 감사합니다."
그러고 몇 주 후 다른 언니 야간 근무에 남아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너도 원장님이 상품권 주셨어?"
"아니. 왜?"
"진짜 나만 주신건가? 미안해 , 원장님이 상품권을 주시더라고."
"언니 좋겠다. 밥 사 언니가."
나도 받았지만 얘기하지 못했다. 자신만 받았다고 생각하는 언니, 각자 주시며 너만 주는 거라고 하신 원장님의
두 마음이 다 느껴졌기 때문이다.
마음 쓰시는 세심함에 원장님께 감동했다.
근데 내 마음에 병이 왔다. 불면증이 심해졌고 말실수도 잦아지고 기분이 롤러코스터를 탄 듯 조증과 울증을
반복했다.
넉넉하신 사무장님이 나가시고 방사선사였던 분이 사무장이 되시고 다른 방사선사가 들어오고, 새로 사무장이 되신 분의 성추행 행동이 있었다. 야간 근무 중 술 마시고 잠깐 점검하러 왔다고 들르시고 휴대폰 안테나를 빼서 손등에 튕기고, 귓불을 만지고 어깨에 손을 올리고 , 진짜 가관이다.
그것은 명백한 폭력이자 더러운 침범이었다.
상품권의 온기가 채 가시기도 전에 찾아온 성추행의 냉소.
여러 일들이 겹치고 난 휘청거렸다. 밤은 불면의 늪이 되었다. 결국 나는 도망치듯 나가고 싶었다. 사직서를 던져야 하는 건지 고민을 하는 사이 원장님이 부르셨다.
그렇게 사직을 고려하고 원장님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마지막 일을 마치고 나왔다. 원장님께서는 마음 잘 추스르고 몸 잘 챙기라고 하셨다.
그 후 실업급여 신청이 반려되고 , 성추행을 당한 속상한 마음에 사무장을 상대로 노동청에 신고를 하였다.
근데 직장의 모든 책임은 원장님에게 있으니, 원장님에게 소송을 한 게 되었다. 상황을 파악하시고 전 사무장님과 연락이 닿아 사정을 말씀드렸고,
"고소 취하해라."
직접 가서 고소를 취하하고 합의를 했다고 전했다. 실업급여 신청도 해주시고, 따로 불러 식사를 사주셨다. 원장님과 전사무장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과도 드렸다.
나중에 부모님께서 말씀해 주셔서 알았다. 성추행을 했던 사무장이 와서 무릎 꿇고 사죄하고 갔다고 그리고 그때 정중히 원장님의 말을 전달했다고 한다. 정신과 치료를 받게 하시는 게 어떻겠냐고 부모님께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난 처음 정신과란 곳에 갔다. 하얀 유니폼 속에 감춰둔 내 영혼의 멍자국을 비로소 마주하게 된 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