꺾인 존경과 남겨진 불꽃

보호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던 그늘에 대하여

by 지인

"존경했던 의사는 사라지고, 그 자리엔 '돈만 아는 사장님'과 '나'를 짓밟는 상사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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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부인과를 퇴사하며 내게 남은 건 이름 모를 통증과 떨림뿐이었다. 전정신경염, 공황장애, 그리고 밤마다 귓가에 쩌렁쩌렁 울리는 상사의 목소리. 숨을 쉬는 것조차 버거워 심장 소리가 귓가를 때리던 밤들. 하지만 삶은 쉼을 허락하지 않았고, 경제적인 조급함은 다시 나를 세상 밖으로 떠밀었다.


그렇게 다시 발을 들인 곳은 소아과였다. 아이들을 데리고 자주 찾던, 신뢰하던 원장님이 계신 곳. 하지만 환자로 볼 때와 직원이 되어 본 병원은 전혀 딴판이었다. 하루 수백 명의 아이와 그보다 더 많은 보호자. 8시간을 내리 서서 진료 보조와 수납을 오가는 육체적 고단함보다 나를 더 짓누른 건, '존경'이 '실망'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방역의 공포 앞에서도 경영의 논리를 앞세우던 원장님의 건조한 목소리. 직원을 편애하며 사소한 오해로 모욕을 주던 실장의 날 선 눈빛. 8,000원짜리 초밥 한 그릇에 담긴 치졸한 의심 앞에서, 나는 대기실이 떠나가라 소리 지르고 싶은 분노를 삼켰다.


"지인 씨, 괜찮아요?"


걱정 어린 동료의 물음에 울음을 삼키며 고개를 끄덕였지만, 내 안의 불꽃은 이미 나를 집어삼키고 있었다. 결국 나는 다시 글을 써서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돌아온 대답은 차가웠다.


"글 잘 쓰시네요."


자신의 허물은 보지 못한 채 타인의 고통을 문장력으로 치부해 버리는 그 비겁함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무너졌다. 사람들은 말한다. 세상과 적당히 타협하며 사는 게 순리라고. 하지만 나는 그게 잘 안 된다. 도덕적이지 못한 것, 합법의 탈을 쓴 모순들, 그리고 그 안에서 희생되는 누군가. 그 누군가가 내가 될 때 나는 견딜 수 없다.


대면하지 못하고 글로 마음을 전한 뒤 도망치듯 떠나온 내가 비겁한 걸까? 아니면 내가 너무 예민한 걸까?

60년대생부터 80년대생까지, 시대가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의사들의 권위주의와 폐쇄적인 병원 구조. 간호조무사를 비서처럼 부리며 사적인 심부름까지 당연하게 여기는 이 견고한 바위 앞에서, 나는 고작 계란 하나였다.


...

내 탓일까, 세상 탓일까.

아무리 발버둥 쳐도 바뀌지 않는 세상을 등지고, 오늘도 나는 꽉 막힌 고구마를 삼킨 듯한 가슴을 부여잡는다. 하얀 건물의 검은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차갑고 거대한 바위 같은 세상 속에서도, 아이들의 웃음 하나에 피로가 녹아내리던 나의 그 따뜻했던 진심만큼은 결코 가짜가 아니었음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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