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대라는 섬을 떠나 마주한 폭풍

나를 죽이며 보낸 2년, 그리고 서툰 세상 밖 구경

by 지인

강남세브란스에서의 부갑상선 절제술. 수술은 끝났지만, 무거워진 몸과 건강에 대한 불안은 나를 '침대'라는 작은 섬에 가두었습니다. 2년이라는 긴 시간, 나는 그 섬에서 나를 죽이며 살았습니다. 하루 한 끼로 연명하며 우울과 무기력의 늪에 깊이 가라앉던 날들. 엉망이 된 집안 꼴보다 더 짓눌린 것은 '나는 아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자책의 무게였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다는 모진 말로 나를 채근하던 밤, 그 어둠 속에서도 내 안의 아주 작은 생명력은 쉼 없이 고개를 들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지독한 삶을 향한 욕망이었습니다. 나는 나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요양보호사, 사회복지사... 침대 위에서 공부하고 자격증을 따며, 나는 매일 나에게 작은 빛의 계단을 놓아주었습니다. 집 앞 슈퍼에서 매장 진열을 하는 오전 알바를 시작하던 날, 어색하게 집 문을 열고 내디딘 그 첫걸음은, 단순히 일터로 향하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침대라는 섬에서 벗어나 비로소 '나'라는 존재를 다시 찾아가겠다는, 눈물겨운 부활의 의지였습니다. 그렇게 나는 내 몸이 무너져 내리는 공포 속에서도, 나를 바꾸려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었습니다.


이력서를 수십 군데를 넣어도 연락이 오지 않는다.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아도 사직한 이유들, 여러 병원을 옮긴 것들, 많은 자격증, 오랜 경력들이 불합격의 요인이 되었다.

자격증을 따지 말걸,, 일을 자주 옮기지 말걸,, 많은 나의 경험과 경력은 내게 마이너스가 되어 돌아왔다.


그러던 중 한의원에서 연락이 왔다. 오픈한 지 서너 달 된 곳이었다. 합격을 확답 짓고 이틀 후 출근하기로 하고 나는 마음을 새로이 다잡았다. 면접을 보며 원장의 불안한 눈빛과 급하게 사람을 고용해야 하는 상황이 이곳이 쉽지 않은 곳이라는 게 느껴졌다.


출근하자마자 들은 이야기는 개원 후 사람이 계속 바뀐다는 것이었다. 원장의 불같은 화에 ,, 환자 없는 상황을 직원 탓으로 돌리고 그에 대한 대책을 세우라고 계속 다그치는 상황이 보였다.

나는 물러설 곳 없는 막다름에 다다라 선택한 곳이어서 두 눈 감고 두 귀 막고 하나의 입을 닫고 그렇게 지냈다.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않고 , 그냥 수동적인 사람처럼 살았다.


50대의 두 달 먼저 들어온 선임은 매번 납득되지 않는 화를 내게 쏟아냈다. 그냥 죄송하다고만 말할 뿐 대들지도 항변하지도 않았다. 직원을 믿지 못하는 원장의 두려움은 날로 거세졌고 날마다 같은 상황에 다른 말을 하는 일들이 다반사였다. 입사 일주일 만에 혼자 일하게 되고, 두 달 만에 기존 직원들이 모두 나가서 내가 선임자가 되었다. 후임으로 들어온 선생님께 상황을 거의 이야기하지 않고 열심히 도와드렸다. 나가면 내가 힘드니까. 어떡해서든 잡고 싶고 함께 재미있게 일하고 싶었다.


그리고 원장의 습관 중 월급을 제시간에 넣어주지 않는데 3일이나 늦게 지급되기도 했고 , 주말이 끼면 전이 아니라 후에 준다. 월급 날짜를 까먹었다는 원장의 말이 믿기지 않는데. 돈이 없어서 힘든 것 같기도 하고 경영이 흔들이는 것 같은데. 나도 다른 곳으로 가야 하나 ,, 계속 검색만 할 뿐.


그리고 원장은 내게 쩔쩔매었다. 혼자 남아 버틴 며칠의 시간. 그리고 나마저 나가면 힘드니. 돈도 그 달은 더 주었다. 고생했다고. 그리나 몸이 너무 힘들어 그 돈도 싫을 만큼 버티기가 힘들었다.


그리고 가장 힘든 것 원장의 불같은 화였다. 치료실에서 직원에게 화를 내는 상황들.

원내 카톡에 장문의 불평들. 무시적인 말들. 난 원장의 하녀인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정싱 똑바로 안 차려요?"


"잘 좀 해줄 수 없어요?"


"아 진짜~~"


쌍욕만 안 붙었을 뿐 험악한 상황은 계속되었다.

근데 3초도 안 가서 미안하다 한다. 이해되지 않는 원장의 모습에 숨이 막혔다.


버티다 버티다, 난 폭발했다.

직원을 자신의 침 연습의 상대로 하는 행위는 너무도 참옥스러웠다


"좀 대줘요. 나 감이 떨어졌나 봐요."


난 절대 그 원장에게 침을 맞지 않았다. 근데 다른 직원들은 수없이 침대에 끌려가 엎드려야 했다.

그건 아니지,, 제발 그만해라..


순간 월급이 주말에 끼여있었는데 전날 들어오지 않았다. 주말 지나고 주려나 싶어.

화가 치밀었다. 돈 그거 받자고 다 참고 버티는데 기분 좋게 날짜 맞추어 딱딱 넣어주면 안 되는 건가?


카톡으로 바로 입금해 달라 말했다.

그리고 왜 월급이 깍겨서 들어오는지에 대해 몇 달 해명해주지 않아서 알아봐 달라 했다.

2달을 모르쇠로 넘어가더니 강경한 나의 말에 5분 후 장문의 원내 카톡이 왔다.

세무사에게 물어서 보낸듯한데 말이 두서가 없다.


더 이상 그곳에 모든 정이 다 떨어졌다.

더이상 내 노동의 대가를 구걸하듯이 받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퇴사를 말했고, 일주일 후임 구할 시간을 주었다.

그런데 출근하니 그는


"선생님도 나도 불편하니 그냥 오늘까지 근무한 걸로 해줄 테니 집에 가세요."


"네"


"저기, 이거 사인하고 가요."


사직서를 본인이 다 작성해 놓고 나보고 싸인만 하라고 한다.

어처구니가 없다. 공문서 위조다.

기가 막히고 숨이 막혀 더 있기가 힘들었다,

그냥 사인해 주고 박차고 나왔다.


그리고 난 너무 억울했다. 노동청, 인권위원회, 등에 민원들 넣었다.

실업급여를 신청했는데 본인이 나가라고 해놓고 , 개인사정으로 해놓아 반려되었다.

그래서 고소를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게 다 싫었다. 원장 생각만 해도 공황이 와서 모든 것이 너무 힘들었다.


그 원장은 직원들 등을 쓰다듬고 하는 성추행도 아무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이었다.

그 손이 몸에 닿는 순간 화들짝 놀란다. 온몸에 전기가 온다. 너무 싫은 감정에 힘이 들었다.


한 달이 지난 후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다. 나를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했다는 것이다.

당황스러웠다. 겁도 났지만 기가 막혀 숨이 멎는 것 같았다. 그리고,, 변호사에게 묻고 형사와 이야기하고 사건은 공연성이 입증되지 않아서 종결되었다고 하셨다. 그 결과를 듣기까지 계속 부정출혈이 쏟아지고 심장이 계속 널뛰듯 뛰고 숨이 잘 안 쉬어졌다. 무혐의로 종결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야 나는 닫기로 했다. 그 비이상적인 기억의 문을...


그곳은 지옥의 다른 이름이었습니다. 원장의 불같은 화풀이, 제 날짜에 들어오지 않는 월급, 직원을 하녀 취급하는 무시 섞인 말들. 심지어 직원의 몸을 침 연습의 대상으로 삼는 참혹한 광경 앞에서 나는 숨이 막혔습니다. 내 몸에 닿는 원장의 부적절한 손길은 온몸에 전기가 오는 듯 쩌릿한 혐오감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이것이 나의 하얀 건물 검은 이야기 열한 번째이다.


세상에 보통으로, 평범하게 산다는 게 참으로 힘이 듭니다. 삶은 여전히 고(苦)의 바다라지만, 이제 나는 자책하지 않으려 합니다. 그 지옥 같은 곳에서도 끝까지 나를 지키려 했던 나의 용기를 믿어보려 합니다. 조금은 느려도 괜찮습니다. 이제야 비로소 나는 나를 소중히 여기는 법을 배우며 천천히 걸어가 봅니다.

이전 10화몸이 건넨 마지막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