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나는 사랑받는 직원이 되지 못했을까
새벽 수변공원의 공기는 차가웠습니다. 헛헛하고 공허한 마음을 안고, 나는 매일 새벽 그곳을 달리고 또 걸었습니다. 아무도 없는 높은 곳에 올라 목이 터져라 울고 나면, 가슴속의 응어리가 조금은 풀리는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울음 끝에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지독한 욕망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그것은 삶을 향한 마지막 발버둥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비인후과에서 답이 오고 면접을 보게 되었다.
입사를 확정 짓고 바로 출근을 했다. 원장님 두 분이 계신 곳, 팀장님의 세심한 관찰과 친절함이 믿음과 신뢰가 가는 곳이었다. 새로운 배움은 설레었지만, 그곳에도 어김없이 사람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손 좀 잘 씻어."
"오늘 좀 혼나야겠네."
예순이 넘은 선배의 잔소리는 날카로운 바늘이 되어 가슴을 쑤셨고, 쉰 살 선배의 윽박지름은 마른하늘의 날벼락같았습니다. 내 목소리가 너무 일정해서 답답하다는 말, 내 존재 자체가 거슬린다는 눈초리 앞에 나는 점점 작아졌습니다. '나는 왜 이쁨 받지 못할까, 무엇이 문제일까.' 자책의 늪에서 밤새 눈물을 찍어냈습니다.
마음이 병드니 몸이 먼저 비명을 질렀습니다. 잘못 삽입된 미레나가 장에 박혀 응급 수술을 받아야 했고, 5년 넘게 괴롭히던 요로결석은 부갑상선 종양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왔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은 진료실에서 찾아왔습니다.
대학병원 소견서를 받아서 예약을 하고 기다렸다. 그러던 중, 그날따라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습니다. 무심코 자동 혈압계에 팔을 넣었을 때, 기계가 감기는 압박감이 유난히 숨 막히게 느껴졌습니다. '삐-' 소리와 함께 나타난 수치는 220. 내 눈을 의심했습니다. 오류일 거라 생각하며 수동 혈압계를 가져왔습니다. 차가운 금속 혈압계가 팔에 닿는 순간, 소름이 돋았습니다.
서둘러 가압 커프를 감고, 밸브를 조였습니다. '슈욱, 수육' 공기가 차오를 때마다 내 심장 소리도 함께 커졌습니다. 청진기를 귀에 꽂고 혈관의 소리에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소리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오직 바늘만이 미친 듯이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200, 230, 그리고 250을 넘어... 바늘은 멈출 줄 몰랐습니다.
그 순간, 내 심장은 터질 듯이 뛰고 있었지만, 세상은 고요해졌습니다. 오직 청진기 너머로 들리는 내 거친 숨소리와 바늘의 움직임뿐이었습니다.
"원장님..."
내 목소리는 가늘게 떨렸습니다. 나를 바라보던 원장님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습니다. 항상 침착하시던 분이,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수동으로 다시 해봐요!"
라고 소리쳤습니다. 내가 다시 혈압계를 감으려 하자, 원장님은 내 손을 제지하고 직접 커프를 감으셨습니다. 그의 손길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이 내 공포를 더 부채질했습니다.
"250... 당장 응급실로 가세요! 지금 당장!"
원장님의 다급한 목소리가 진료실을 울렸습니다. 나는 그제야 내가 얼마나 위험한 상태인지 깨달았습니다. 내 몸이, 내 삶이, 벼랑 끝에 서 있었습니다. 그렇게 응급실에 갔고 계속 떨어지지 않아 주사로 혈압강하제를 투여하고서야 160까지 내려갔다. 그리고 다음 날 심장내과에 가서 심장초음파도 보고 검진을 해봤다. 결과는 정상이어서 다행이었다.
그러나 일을 지속하는 것은 너무 위험해 보여,, 사직을 결정했다.
사직을 결정하고 짐을 챙겨 나오던 길, 팀장님의 따뜻한 손길이 등에 닿았습니다. 그 토닥임 한 번에 모질었던 기억들이 조금은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습니다.
이제 나는 나에게 묻고 싶습니다. 잠들지 못하는 이 불안의 굴레에서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요.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타인의 날 선 비판에 나를 내던지기엔 내 몸이 너무도 간절하게 '살고 싶다'라고 외치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이제는 남의 비위가 아니라, 내 몸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시간입니다.
서로의 맞춤이 어렵고 나이대가 다양한 직장에서의 갈등을 겪고 몸의 이상이 온 이 기억이 하얀 건물의 검은 이야기 열 번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