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생아실의 실세는 목사님이었다

황당한 가족 경영: 그 병원에 의사는 없었다

by 지인
오픈형 신생아실


36년을 뿌리내렸던 도시를 떠나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연고도 없는 곳이었지만, 오롯이 우리 가족뿐인 그 시간이 설레고 달콤했다. 평온한 바다 위에 윤슬이 부서지듯, 하루하루가 눈부시게 평화로웠다.

하지만 찬란함이 너무 과했던 탓일까. 예고 없이 우울과 무기력이 찾아왔다.


누구 하고도 말을 나누기 힘든 시간들이 오고 나는 깊은 땅밑으로 계속 꺼져 들어갔다.

아이들은 이제 여섯 살, 다섯 살. 엄마의 손길이 계속 필요하고 내가 원하는 방향보다 자기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나이다. 어느 날은 전쟁을 치르고 어느 날은 시끄러운 시장 한 복판에 서있는 것 같은 날들이 지나고 있다. 살도 무럭무럭 여기저기 붙어 거울을 보기 싫었고, 옷이 맞지 않아 나가기도 두려운 날들.

깊은 늪으로 꺼져 들어가는 나를 건져 올린 건 역설적이게도 '치열한 몸부림'이었다. 수영과 요가로 몸을 깎아내며 18kg을 감량했다. 20대의 청바지가 다시 맞기 시작했을 때, 비로소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가 생겼다.


그 무렵, 남편이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지인아, 혹시 다시 일을 해볼 수 있을까? 내가 조금 힘에 부치네. 네가 도와주면 마음이 놓일 것 같아."


"그럼요, 같이 해요. 혼자 짊어지지 마요. 내가 오빠 먹여 살릴게."




그리고 한 달 동안을 이력서 여러 곳에 넣었지만 연락이 없다. 핸드폰이 꺼지거나 전화가 통신 두절이 된 것도 아닌데 연락이 없어 상심하던 차, 산부인과 신생아실 차트 정리와 물품 정리 자리에 이력서 넣었던 곳에서 연락이 오고 , 설 명절이 지나고 출근을 하게 되었다. 가슴이 벅차다. 다시 내 이름으로 불리고 내가 쓰임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벅찼다.


하지만 설렘도 잠시, 갓 태어난 생명을 안아 든 손은 경련하듯 떨렸다. 2주쯤 지나 떨림이 멎었을 때, 비로소 병원의 기괴한 구조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곳은 의료법의 사각지대이자, 거대한 '가족의 성채'였다. 병원 목사님이 신생아실을 안방처럼 드나들었고, 원장 부인인 본부장이 실권을 휘둘렀다. 초등 교사인 여동생이 차트를 검열하고, 의대생인 딸이 환자 기록을 작성했다. 면허 없는 이들이 생명의 기록에 손을 대는 불법의 현장. 의료인이 환아를 돌보는 게 맞는 일이다. 그러나 그 곳은 그렇지 않은 행위들이 계속 일어나고 있는 곳이었다. 총괄본부장의 무시적이 언행과 독선, 날선 화, 소리 지르는 행위들도 긴장감을 일으키는 일이었다.


"자기들은 돈이 궁해서 온 거잖아. 생계형 아니야?"


본부장의 날 선 언행은 비수처럼 꽂혔다. '생계형'이라는 단어가 목에 걸린 가시처럼 아팠다. 어설픈 권위로 타인의 삶을 비하하는 그곳에서 나는 점점 생기를 잃어갔다. 수도 없이 울리는 부장의 전화에 시시콜콜 보고해야 하는 상황들이 내게는 부담되고 긴장되는 상황이었다.

아이의 상태에 대해 정확히 말해도 돌아오는 답은,


"뭘 알고 그렇게 말해? 네가 뭘 알아서 그렇게 말하는데?"


라며 나를 무지한 인간으로 모욕감을 주었다. 신생아 중환자 관리에 관한 전공 서적을 사서 공부하고 그 공부한 내용을 단톡방에 올리고 그러고 나서야 그 무지함을 벗을 수 있었다.


이상한 일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유독 그곳엔 희귀한 사례의 신생아들이 많았다. 항문 폐쇄, 호흡 곤란, 고관절 이상... 응급 상황이 닥치면 당연히 소아과 전문의를 호출하고 전원을 논의해야 했지만, 본부장의 시각은 달랐다.


"왜 자꾸 의사를 불러서 전원을 시켜? 병원 이미지 안 좋아지게. 기다리면 좋아질 애들인데 당신이 너무 성급한 거 아냐?"


어느 날 소아과 선생님의 진료가 없는 날 출산이 있었고 들어온 신생아는 호흡이 불안정했다. 가슴이 움푹 움푹 들어갈 만큼 숨을 몰아서 쉬었다. 출산을 담당한 산부인과 의사에게 보고 했고, 산소 주고 조금 보자고 하셨다. 산부인과 의사에게 보고한 뒤, 본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돌아온 답은 경악스러웠다.


"아, 내가 지금 밖이라서. 얼른 목사님 불러서 기도해 달라고 하세요. 빨리 콜 하세요!"


귀를 의심했다. 의료 기술이 정점에 달한 세상에 산소호흡기 대신 '기도'라니. 만약 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저들은 뒤로 숨고 모든 법적 책임은 의료인인 내가 져야 할 판이었다. 그 비현실적인 공포가 나를 깨웠다. 이 불합리한 연극에서 탈출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다음 날, 나는 전자문서로 사직서를 올렸다. 그간 목격한 모든 불법과 부당함을 낱낱이 고발하며 짐을 쌌다.

아직도 그 '하얀 건물'이 운영되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들이 믿는 그 '기도발' 덕분이라기엔, 그곳에서 마주친 아이들의 가쁜 숨소리가 너무도 생생한 검은 기억으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낯선 공간과 불법행위, 부당한 병원의 기억이 나의 하얀 건물 검은 기억 여덟 번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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