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토끼의 함묵증, 그 고요한 비명에 대하여

이방인의 옹알이

by 지인

열 살 토끼의 함묵증, 그 고요한 비명에 대하여


​깊은 산속 골짜기, 새벽 동이 트면 작은 토끼 한 마리가 꼼지락거립니다. 누군가에게 잡아먹힐까 숨을 죽인 채, 살금살금 기어 나와 옹달샘 물 한 모금 마시고 풀 몇 잎 뜯고는 다시 집으로 총총히 사라집니다. 이 작은 토끼는 무엇이 그토록 무서운 걸까요?


​한때 이 토끼도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소꿉장난을 치며 산속 구석구석을 누비던 명랑한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무리의 큰 토끼 하나가 차가운 눈빛으로 선포했습니다.
​"너네, 쟤랑 놀면 죽여버린다."
​열 살의 어린 토끼는 그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습니다. '나랑 놀면 내 친구들이 죽는구나.' 속상하고 슬펐지만, 나 때문에 친구들이 다칠까 무서워 토끼는 스스로를 격리했습니다. 아무에게도 다가가지 않았고, 입을 굳게 닫았습니다.


​혼자 지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토끼는 스스로 말하고 판단하는 법을 배웠습니다. 하지만 그 침묵 속에서 오해는 싹을 틔웠고, 홀로 아파하는 시간은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내가 말을 안 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무감각해질 때쯤, 새로운 친구가 불쑥 물었습니다.


​"넌 왜 하루 종일 말을 안 하니?"


​뒷머리를 강타당한 듯 멍해졌습니다. 그때야 깨달았습니다. 아, 나는 말이 없는 존재구나. 그날 이후 토끼는 사람을 만나면 불안해졌습니다. "안녕"이라는 인사를 건넨 뒤, 어떤 말을 이어가야 할지 몰라 머릿속은 하얀 도화지가 되어버렸습니다.


​사회라는 정글에 나온 토끼는 똑 부러지는 큰 토끼들 틈에서 자꾸만 병이 들었습니다. 머리가 아프고, 배가 뒤틀리고, 허리가 끊어질 듯했습니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는 통증은 마음이 보내는 신호였습니다. 편안해지고 싶어 찾아간 명상 센터, 그 깊은 무의식의 캄캄한 방에서 나는 웅크리고 앉아 흐느끼는 열 살의 작은 토끼를 만났습니다.
​나는 그 아이의 뒤로 가서 꼭 안아주었습니다.


"괜찮아, 다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야."


​수천 번, 수만 번을 되뇌어 주었습니다. 그제야 아이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습니다.
​여전히 토끼는 사람이 무섭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자신을 탓하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다독이며 할 수 있는 만큼만, 조심히 천천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 토끼는 결심했습니다. 자신처럼 마음이 아픈 사람들에게 글로 위안을 주고, 따뜻한 문장으로 그들을 치유해 주기로 말입니다.


​매일 공부하고 습작하며 토끼는 조금씩 성장하고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너니까 할 수 있어"라고 응원하며 말입니다. 이제야 알았습니다. 조금 느려도, 조금 서툴러도 괜찮다는 것을요.


​오늘도 세상의 모든 작은 토끼들을 응원합니다.
토끼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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