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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동하라 Jan 23. 2024

나는 공짜를 좋아한다

좌절에서 빠져나오기

  최근 마음먹고 다짐한 것이 있다. 공짜를 좋아하지 말자. 공짜는 멀리하자. 공짜는 거부하자. 세상엔 공짜가 없다. 공짜로 인해 진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잊고 살게 될 수 있고 그렇게 살다 보면 나를 잃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세운 계획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


  나의 믿음과 신뢰를 쉽게 저버린 실망감이 큰 하루의 일이다.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처럼 너무 쉽게 공짜에 눈이 멀어 이성적인 선택을 하지 못했다. 깨달은 순간엔 묘해지는 나쁜 감정이 올라오며 자책감이 들었다.

아침 출근 준비 중 남편이

“차에 기름 안 넣었네. 90km는 갈 수 있으니 출근하는 덴 문제 없을 거야. 오늘은 오는 길에 꼭 넣어”


  퇴근하는 길에 주유해야지 다짐하며 출근하고 집에 빨리 가야지 기뻐하며 퇴근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났고 차에 주유 등이 들어왔다. 차가 길 위에서 멈추게 되는 일은 없어야 했기에 오늘 퇴근길엔 잊지 않고 주유소로 향했다. 셀프 주유는 몇 번 해보았지만, 갈 때마다 공포에 휩싸여 무섭다.


‘내가 주유하다가 불이 나면 어쩌지. 주유구 뚜껑을 열고 달리면 어떻게 될까. 뉴스에서 주유총을 꽂은 상태로 출발하여 불이 났었지. 나도 그런 실수를 할 수 있겠지. 정신 똑바로 차리고 하나씩 챙겨보자.’


  마음속 떠오르는 생각들이 주유하다 정신을 놓아버리는 모양 빠진 나로 만들며 긴장을 더욱 붙들어 맨다.

잘해야 하고 실수 없이 해야겠다는 생각에 행동을 순서대로 되짚느라 넋 나간 듯 시동 끄는 행동에 집중하지 못한다. 카드를 손에 들고 내려 정전기 발생이 크게 일어나는 몸을 갖은 두려움에 모범적으로 정전기 방지 손바닥에 양손을 댄다. 카드를 넣고 주유 가득 버튼을 눌러 주유를 시작했다.


  긴장된 손으로 주유총을 잡았다. 그것도 아주 꽉. 손으로 잡지 않아도 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가 담긴 주유총이라지만 벌벌 떨며 손을 떼지 못했다.


주유구를 뚫어지게 바라보며 집중하고 있는 나에게 낯선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 차 언제 출고하셨어요 “

이 긴장된 순간에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불만 가득했지만, 표정은 웃으며

“일 년 전에요”라고 대답했다.

“와이퍼가 누워있어요. 와이퍼 교체는 한 번도 안 하셨어요? 일 년을 사용하셨으면 많이 사용하신 거예요. 와이퍼 교체해 드릴까요 “

미소를 띠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흔들했다. 굳이 미소는 필요 없을 듯했으나 반응이 아주 자연스럽게 친절한 척이다.


  이날은 기온이 영하였고 눈이 내렸다. 차는 항상 외부에 세워져 있어 겨울엔 와이퍼와 유리창이 꽁꽁 얼어 있었다. 워셔액을 분사시켜 와이퍼로 유리창을 닦아내며 출근길에 오른다. 그러다 보니 와이퍼 상태가 안 좋아진 모양이다. 오른쪽 유리창에 그림이 그려지는 것을 보니 이상이 있구나 싶었지만, 운전석엔 문제가 없어 날이 풀리면 괜찮아지겠지, 남편에게 물어봐야겠다는 생각을 동시에 했다.


  그런 생각에 잠겨있을 찰나

“무료로 교환해 드려요. 교환해 드릴까요”라는 말에 나는

“네”


  오로지 무료라는 말에.


  와이퍼를 무료로 갈아준다니 오른쪽 그림을 그리는 와이퍼를 해결할 수 있다는 것에 행운이라 생각했다. 아저씨는 내 말이 떨어지자 아주 빠른 손놀림으로 기존 와이퍼를 제거하고 새 와이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진짜 빠르게. 완전 빠르게.


  대답을 주워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차에서 분리한 와이퍼의 실리콘까지 아저씨의 빠른 손놀림으로 따로 떨어져 나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뒤끝이 구린 이 기분은 촉일까. 무료로 와이퍼를 왜 교체해 주는지의 의문이 뒤늦게 찾아왔다. 저 아저씨 홍보 나왔나. 와이퍼 신제품 홍보하며 반응을 살펴 있는 걸까. 왜 주유소에서 무료 교체를 해주고 있을까?

주유총에서 딸각 소리가 났다. 재빠르게 와이퍼 교체를 완료한 아저씨는 주유기 화면 앞에 서서

“더 넣으셔도 되겠어요. 당겨서 더 넣으세요”

화면이 보이지 않아 소리에 의존해야 하는 것을 아는냥 코치해 주니 고마움을 느꼈고 말을 아주 집중해서 잘 듣고 있는 나를 보았다. 아저씨는 와이퍼 결제에 관심이 있을 뿐이었는데 착각 속에 빠진 나였다.

“다 들어갔어요. 빼세요. 카드 빼 드릴까요”

“네”

“결제는 이 카드로 해드릴까요. 4만 원 결제하겠습니다 “

“네? 무료라고 하셨는데 결제요”


  세상에 공짜는 없는데 나는 왜 무료라는 말에 유혹당한 것인지.  내가 무슨 일을 저지른 것인가. 긍정의 끄덕임을 원망하며 무료로 교체해 준다고 말한 와이퍼 맨 탓으로 돌리며 원래대로 해놓으라 소리치고 싶었다. 그러나 현실은 한 마디 못하고 썩은 표정으로 뒤에 줄줄이 주유를 위해 기다리는 차들을 보며 운전석으로 들어갔다. 한 없이 부끄러워졌고 화가 나는 상황을 삭혀야 하는 것은 내 몫.


  애써 쇼핑에 들어가야 할 시간을 절약했으니, 시간을 번 거다. 그러니 괜찮다며 마음을 달래 보지만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공짜는 보지도 받지도 말자. 세상엔 공짜가 없다며 굳게 다짐했건만 무료라는 말 한마디에 현혹되어 얼토당토않은 상황을 만들다니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무료를 좋아하는 내가 무료를 좋아하지 않는 것처럼 내 마음을 속이려 했던 대가라고도 생각해 본다. 4만 원의 대가. 참 좋은 교훈이지만은 정신없는 틈을 타 팔이를 한 그 아저씨의 전략이 너무 밉다. 바보 같은 내가 부끄러워 움츠러들 뿐 누구에게 이야기해도 바보 같을 뿐이다.

나를 좀 더 정확히 파악한 후 다짐을 세웠었다면 공짜에 이렇게 무너지진 않았을 텐데. 나는 결국 공짜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지만 가짜에 가려져 진짜 나를 파악하지 못했다. 공짜를 싫어하는 내가 진짜이길 바라는 마음에 나는 공짜를 거절할 수 있을 거라는 거짓을 믿었다. 그래서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에 관한 판단이 흐려졌고 속임수에 걸려들었다. 오로지 나에게 집중하여 거짓 선택이 아닌 진짜를 선택하리라 굳게 다짐했건만 ‘무료’에 무너진 내가 무지 싫어지며 다짐하게 된다. 공짜를 좋아하는 나를 붙잡자.


나는 공짜를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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