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동하라 Feb 27. 2024

무와 새우젓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능력

 초등학생 복이는 롤러스케이트 타는 것을 즐겼다. 그때 나이가 몇 살이었는지는 기억이 흐리다. 저학년이었을 거다. 롤러스케이트 타는 것이 재미있어 학교 끝나고 집에 돌아와 가방만 놓고 지은이 집으로 곧장 뛰어갔다. 롤러스케이트를 빌리기 위해서였다. 그때 그 롤러스케이트는 치수가 없는 늘어났다 줄어드는 것이었다. 내 발에도 언제든 맞는 편리한 스케이트였다. 

    

그 스케이트를 너무도 뻔뻔하게 매일 빌렸다.


내 것처럼.


  지금의 나라면 분명 싫은 티를 팍팍 냈을 텐데 무작정 빌리러 가는 나에게 항상 내어 주었다.(나중에 알고 보니 엄마에게 압력이 들어갔었다 한다) 그런 나의 행동을 눈치채신 엄마는 노란색 가죽으로 된 롤러스케이트를 사주셨다. 기쁜 마음에 나는 지은이 집에 롤러스케이트를 마지막으로 빌리러 갔다. 이번엔 친구랑 꼭 같이 타고 싶었다.     


  그때의 내 행동이 타인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냥 좋았고 타고 싶은 마음 하나였다. 나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그때로 돌아가 감사한 마음과 엄마에게 롤러스케이트 타는 것의 즐거움과 내 것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표현을 빌려 타기 전에 밝히고 싶다.    


  롤러스케이트도 생겼으니, 그것을 들고 수연이와 함께 롤러스케이트장에 가기로 약속했다. 집에서 롤러스케이트장까지 우리의 걸음으로 한 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그때는 학교도 한 시간 거리였고 등하교를 걸어서 다녔기에 그 정도의 거리를 걸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산과 논 사잇길이었고 보통 우리는 그 길을 농고 방죽길이라고 불렀다.     


  산길을 지나서 한 시간 정도 걷다 보면 시내 길이 나온다. 그곳에 롤러스케이트장이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신나게 즐기고 돌아오는 길에 바닥에 무와 새우젓이 떨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을 본 우리는 놀잇감이 생겼다 좋아했다. 무에 달린 초록 잎은 우리의 손잡이가 되었고 하얀 비닐봉지 속의 분홍 새우젓은 분무기가 되어 뱅글뱅글 뿌려졌다. 새우젓은 금방 사라져 버려 아쉬웠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무가 남아있었다. 줄기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무를 돌리기도 하고 던지기도 하며 깔깔거렸다.     


‘두둥’     


  뒤에서 큰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오토바이의 부릉부릉하는 소리와 함께 아저씨의 무서운 목소리가 들렸다. 거리가 있어 뭐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를 쫓아오고 있다는 것은 감각으로 알 수 있었다. 수연이와 나는 동물적인 감각으로 무는 던져버리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토바이와의 경주.   

  

  달리기라면 자신 있는 종목인데 무섭고 두렵고 숨이 찼다. 우리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흙무더기 옆에 숨기로 했다. 너무도 쉽게 들통났고 우리에겐 숨은 것이었지만 아저씨가 보기엔 숨었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었을 것이다.     


  오토바이를 탄 할아버지 같은 아저씨는 무섭게 소리를 지르며 두꺼비같이 큰 손으로 나의 뺨을 때리셨다. 어찌나 아프던지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맞은 뺨은 너무 아팠고 서러워 속으로 삼키며 울었다. 내 눈엔 아저씨의 모습은 새까만 거인 이었다. 어찌나 무섭던지 그냥 울고만 있었다. 롤러스케이트를 등에 메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아저씨가 물었다.     


“ 얘는 선수냐?“     


수연이가 대답했다.     


“아니요.”     


기억나는 아저씨의 한마디다.     


  그때 나는 뺨 맞은 일을 집에서 알게 될까 두려워 서러움을 숨기고 아무 일도 없는 듯 뺨을 숨기며 들어갔다. 초인종 소리를 듣고 아빠가 문을 열어주었다. 이런 나를 알아봐 주기를 바라면서도 끝내 말하지 못한 채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얼굴을 묻고 엉엉 울었다.   

  

  그날의 일은 나만 아는 일이 되었다. 태어나 처음 어른의 손으로 뺨을 맞아본 기억으로 생생히 남아버렸다. 


  나에게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있다면 두 번째로 그날로 되돌아가고 싶다. 떨어져 있던 무와 새우를 스쳐 지나갈 것이다. 그리고 그런 아픔을 또다시 겪는다면 부모님께 말하고 위로받고 싶다.   

  

“ 나도 엄마, 아빠가 있다. 도와주세요. 그 아저씨 혼내주세요. 내 것이 아닌 물건을 가지고 장난친 것은 잘 못했습니다. 하지만 어린 여자아이를 두꺼비 같은 손바닥으로 뺨을 때린 것은 너무해요.”     


  홀로 서러웠던 그날을 수연이는 기억할까? 내가 맞았던 그날, 두려웠던 그날. 나 혼자만 두려웠을까? 

    

  그날의 나를 위로해 주고 싶고 안아주고 싶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 생각만으로도 짜릿하고 위로가 된다. 오늘부로 나에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능력이 생겼다. 과거로 거슬러 내려가 아팠던 슬펐던 두려웠던 나에게 치료제가 되어준다.

작가의 이전글 I LOVE YOU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