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려움
사랑이 뭘까?
노트에 사랑이란 글자를 써 내려가고 있는 성희의 노트를 보며 내 노트에 따라 적어본다.
사랑이란?
중학교 2학년 시절 성희로 인해 사랑이라는 단어를 써보게 되었다. 사랑에 대해 특별한 관심도 생각도 없었다. 청소년기의 복이는 그 글자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싶었을까? 분명 사랑이라는 단어를 끄집어내기가 두려웠을 것이다. 마주하기엔 많은 말을 토해내야 하기에.
성인이 되어서도 사랑은 남달랐다. 온전한 사랑이 아닌 받는 사랑을 꿈꿨다. 누군가가 나를 좋아해 주는 모습을 보여주면 못 이기는 척 끌려가는 느낌의 것을 감사히 덥석 안았다. 상대가 사랑한다면 나도 오케이. (모두에게는 아니고 선택적 기준은 있었다. 개인적인 기준은 순함)
씁쓸하게도 사랑과 관심이 고팠다. 주면 줄수록 덥석 받으며 그 사랑이 떠날까 두려워 못되게 굴고 후회하기를 반복했다. 그런 모습이 싫으면서도 나에겐 그것들이 별거 아니라는 척하기 위한 하나의 연기였던 것 같다. 그래야 상대가 떠나가도 상처받지 않을 테니.
그렇게 성숙하지 못한 사랑을 늦은 나이에 끝내고 가정을 꾸렸다.
내 가정이 생겼음에도 두려움은 내 옆에 존재했다. 버려지지 않고 싶은 두려움, 아플 것 같은 두려움, 그런 것들에서 멀리 떨어져 있고자 못됨은 지속되었다. 불현듯 찾아오는 화의 그림자는 행복을 삼키고 눈물과 속상함을 가져왔다. 화를 통해 사랑받고 있음을 확인하려 했고 상대를 믿어 주지 못했다. 그것이 내 가정 모습이었다.
지켜야 하는 것이고 평생 함께해야 하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어두운 그림자보다는 밝은 빛을 만들어야 건강한 것임을 깨달으려 노력이 투입되기 시작했다. 존중과 배려는 기본이 되려 했고 사랑은 바탕이 되었다.
성숙의 빛이 작은 구멍사이로 들어오려 하던 찰나에 내 안의 꿈틀거림이 찾아왔다. 내가 아니면 살아남을 수 없는 생명체. 온전한 사랑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내게 꿈틀이가 찾아온 것이다. 남아 있던 두려움이 나를 잡아먹으려 했다. 존재함이 괴로움이고 이겨내야 할 두려움이 악몽이었다.
평화를 찾아내야만 했다. 할 수 있는 건 읽고 생각하는 것에 도움받는 것뿐이었다. 그것이 최선이었다. 지금까지의 두려움은 무지함의 두려움이었으므로.
이젠 지식과 지혜를 습득하고자 노력하며 사랑도 성숙되어 가고 진짜 사랑을 실천해 가는 중이다. 두려움을 뺀 사랑. 온전한 사랑의 실천. 아직도 내 안에 두려움이 반응할 때면 화를 버럭 내고 소리를 지르며 상대를 황당하게 나쁜 사람으로 몰고 간다. 온전히 내 관점으로 상황을 몰고 가며 쥐구멍도 막아버리는 막다른 길을 만들어 낸다. 횟수가 줄어가고 수위를 조절해 가며 가정 안에서 첫사랑과 온전한 사랑을 경험해 가고 있다.
너와 내가 안아주는 사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