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차선 #005.
교직에 몸 담고 있는 한 지인(이하 A)이 성추행 혐의로 신고를 받았다고 한다. 평소 행실로 볼 때 그럴 리가 없는 사람이었다. 어찌 된 일인지 자초지종을 물어봤더니 참 어이없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신고를 한 건 해당 학급에 있는 한 여학생. 교장선생님 건의함에 투서(?)를 넣었다고 한다. 교장 선생님도 놀라서 즉각 해당 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A의 성추행에 대한 블라인드 설문을 했고, 그 결과 성추행이 있었다는 설문은 단 한 장이었다고 한다. 그럼 그 추행 내용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니 이것 또한 가관이다. 과제를 수행하고, 잘 한 아이 몇몇의 머리를 쓰다듬었는데, 그 모습을 바라보니 성적 수치심이 들었다는 것이다. A에게 물어보니, 신고한 그 아이에겐 절대로 신체 접촉을 하지 않았었다고 했다. 평상시에도 남자에 대한 혐오감을 명백히 보이던 애였기에 그런 부분을 존중했다고.
혐의라고 할 사안이 경미(마음같아선 없다고 하고 싶지만)했기에 학교에서도 별 다른 처분 없이 A에게 주의만 주고 끝냈으나, 이미 신고 학생 어머니가 와서 학교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점, 교원 회의에서 한 여성 선생님이 “아무리 그래도 성추행인데 처벌해야죠.” 라며 처벌을 종용했다는 점 등이 A에게 상처로 다가왔다. A는 결국 학교를 옮기기로 했다.
- 넓어지는 성폭력의 개념(?)
서울대 담배녀 사건을 들어봤는가? 한 서울대 여학생이 이별통보를 하던 남자친구의 줄담배를 성폭력으로 규정하고 학생회에 신고한 사건이다. 그 여학생은 대화할 때 담배를 피우는 것이 남성성을 과시하는 행위였고, 이로 인해 여성인 자신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발언권을 침해했다고 사회대 학생회에 투서를 넣었다고 한다. 해당 투서에 대해 당시 사회대 학생회장은 남성의 줄담배가 성폭력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하였으나, 신고 여학생은 “관악 학생사회 여성주의 운동은 성폭력을 강간으로 협소화하지 않고 외연을 넓혀왔다”며 학생회장을 도리어 성폭력 2차 가해자라고 비난하였다.
해당 학생회장은 회장직을 사퇴하였다.
- 성적 피해, 그 판단 기준은?
언급한 두 사건 모두 극단적인 사고를 가진 인물의 비합리적 사고가 일으킨 일이다. 두 인물 모두 자신의 피해 범주를 ‘성적 피해’에 방점을 두고 있기에 문제가 생긴다. 게다가 일부 논리가 사실을 바탕에 두고 있다.
성적 수치심의 기준은 피해자에게 초점을 맞춰야 한다. 맞는 말이다. 가해자가 아무리 장난으로 했다고 해도 거기에 수치심이 들어있다면 그건 가해자가 주의해야지, 피해자가 조심할 게 아니다.
가정을 해보자. 만원 지하철에서 갑자기 음란한 신음 소리가 울려 퍼진다. 사람들이 놀라서 소리의 근원을 찾아보니 성인 나이의 한 사람이 스마트폰으로 야동을 보고 있다. 옆 사람이 얼굴을 찌푸리며 자리를 피한다. 한 어르신이 가서 얘기한다. “소리가 망측스럽네. 여기 아이들도 있고 하니 당장 그만 보시게.” 그 얘기를 듣고 당사자가 도리어 화를 낸다. “아니, 내가 내 폰으로 내가 보고 싶은 거 본다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여기 동영상 보는 사람이 한둘이야? 왜 나한테만 그래?” 상관있다. 공공장소에서 음란물을 원치 않는 이들에게까지 소리가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그럼 소리 없이 이어폰으로 본다면? 애매해진다. 그러나 이 역시 문제 삼을만하다. 공공장소라는 특성 상 원치 않는 이가 영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예를 들어보자. 한 커플이 있다. 지하철에서 갑자기 성관계를 시작한다. 공연음란죄다. 잡혀간다. 만약 그 모습을 보고 성적인 수치심을 느낀다면 이들에게 성희롱 혐의가 추가될 지는 잘 모르겠다... 그렇지만 망측하다고 여기기엔 충분하다. 그럼 이들이 성관계가 아니라 서로 키스를 하고 있다면? 서로를 끌어안고 있다면? 손을 꼬옥 잡고 있다면?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있다면?
어디부터를 문제 삼아야 할까? 애매해진다. 그렇다고 이게 법적으로 [정수리를 기준으로 5cm 이내를 쓰다듬는 건 성적 수치심을 인정함. 그 외에는 인정치 않음.] 이딴 식으로 수치화할 수도 없는 일이다. 하는 입장에선 상식 선에서 조절할 뿐.
결국 판단을 하는 건 행위자가 아닌 목격자다.
서울대 담배녀 사건도 보자. 맞는 말을 하고 있다.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심리적으로 위축시키고 발언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 모든 인간은 성별에 앞서, 인간이기에 동등한 권리를 가진다. 차이는 인정하되 차별을 하면 안 된다.
상대적으로 남성이 여성에 비해 힘이 강한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비교적 무거운 짐을 남자가 들고, 가벼운 짐을 여자가 들었다면 이건 차이를 인정한 거다. 그러나 힘을 사용하는 스포츠이기에 이 스포츠는 여성에게 금지하겠다는 법안을 만든다면 이는 차별이다. 무조건 남자보다 여자가 약하다고 생각하는 인식도 차별이다.
차이는 상대적이다, 차별은 절대적이기에 불합리한 척도이다.
- 엉뚱한 번짓수를 갖다 붙이는 사람들.
하지만 이렇게 열심히 떠들어 봐도, 상식적인 수준에서 상기 두 명의 사고와 행동은 비합리적이다. 아무리 사건을 받아들이는 당사자의 판단이 중요하다지만 문제 삼을 번지수를 잘못 찾았다.
그러니 복잡해진다. 판단하는 사람이 판단을 이상하게 하면 어떻게 할 건데? 의문이다. 현재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이들의 주장에 합당한 논리가 있는지. 옳은 명제를 지키기 위한 과정에서 무분별한 논리를 들이밀어 도리어 잡탕을 만들고 있는 건 아닌지. 여성주의를 표방하며 여러 과격한 논리를 펴고 있는 남성 혐오 집단. 그 논리에 반박하며 기존 남성우월주의에서 벗어나지 못 하는 여성 혐오 집단. 그냥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자멸하는 거라면 별 말 안 하겠지만, 그 싸움을 언론이 부각시키고, 인터넷에 노출되고, 일부 공감 내용이 전부인 것 마냥 담론을 형성하여 극단의 사상이 점점 세력을 넓혀가는 상황이 생기고 있기에.
신념이 자동차가 가고 있는 방향이라면, 논리는 도로의 노면과 같다. 아무리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이 명확하다 하더라도 그건 차선을 지킬 때의 이야기다. 중앙선을 침범하면서까지 “내가 가는 길이 맞으니까, 이 차선도 내꺼야!” 라고 한다면? 그런 운전만 봤던 사람은 당연히 노란 줄이 중앙선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 한다. 이미 남녀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시점이다. 감정 싸움이 빈번하다. 그런 도중에 인터넷에 나왔으니까, 내가 직접 봤으니까, 내가 경험했으니까! 라는 편협으로 전체를 판단한다면 이를 보고 받아들일 이들이 걱정된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아질 것이다. 세세히 잡아간다면.
젠더 인식이 점점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본다. 다만, 받아들이는 입장에게 판단을 맡기는 게 옳은 방향이라고 한다면 우리들, 나아가 사회는 그 판단이 병들지 않도록 부단한 노력을 해야 한다. 결국 잡아간다고 해도 잡아가는 과정에서 피해자가 최대한 덜 생기도록.
젠더 문제, 아직 갈 길이 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