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차선 #001
난 어릴 때 청소를 해본 적이 없었다. 청소는 엄마의 몫이었다. 신기했다. 내가 볼 때는 어제나 오늘이나 똑같은 방인데 엄마는 거기에서 차이를 찾아냈다. 그것도 극명하게.
"히이익! 이 머리카락 좀 봐!"
"히이이익!! 여기가 사람 사는 곳이여 돼지 사는 곳이여!"
...사람 사는 곳이에요. 그것도 엄마 아들 사는 곳...
엄마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더러움을 견디지 못 하는 분이었다. 그래서 나는 청소를 한 적이 없었고, 스스로 내가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놈이라고 생각했다. 스무살이 되기 전까진.
대학교 입학과 동시에 기숙사에 갔다. 첫 독립이었다. 3인실에 룸메가 두 명이었는데, 그렇게 지내기를 2주일.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내가 청소를 하고 있었다. 자발적으로! 심지어 청소용품을 내 사비로 사서! 게다가 그렇게 묵은 먼지와 머리카락, 책상 정리 등을 하고나서의 그 산뜻함이란! 내 나이 스무살.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놈은 내가 아니었다. 내 룸메 두 놈이었다. 아니, 이건 중요하지 않다. 이건 역치의 문제였다. 엄마의 지저분 역치가 하루라면, 나는 일주일 정도라는 것. 그것 뿐이었다.
얽히고 섥힌 우리들은 제각기 역치를 갖고 살아간다. 그 역치에 도달해야 움직인다. 이게 바로 ‘동기’다. 근데 역치 도달이 빠른 (조금 더 살아본, 조금 더 겪어본, 조금 더 빠른 등 그 어떤 이유에서든!) 이들에게 문제가 생긴다. 아직 역치에 도달하지 못 한 이들을 기다려야 한다. 근데 이게 답답하거든. 그래서 기다리지 못 하는 경우가 빈번히 생긴다. 이런 경우다.
“아~! 진짜! 비켜봐! 내가 할게!” (대신 하기)
“뭐하냐? 이것도 안 하고. 미쳤냐?” (호통 쳐서 하게 하기)
“에고고고... 에고고 죽겠네. 아이고고고...” (불편하게 만들어 하도록 하기)
“콜록! 쿠헤헭!! 누구는 뼈 빠지게 일 하는데 누구는...” (죄책감 만들어 하도록 하기)
적어도 나는 내가 청소해보기 전까지 엄마의 청소를 고맙게 여겨본 적이 없다. 도대체 왜 일을 사서 할까 하며 짜증을 내면 냈지. 지금은 아니다. 이런 방치가 일주일이 되면 어떻게 될 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감사한 일이지. 동기로써 움직이는 게 ‘자의’라면, 눈치나 명령으로 움직이는 게 ‘타의’다. 그리고 타의로써의 행동은 수많은 부정적 감정을 일으킨다. 시키는 사람은 ‘꼭 이렇게 말을 해야 움직이냐?’ 하고, 움직이는 사람은 ‘왜케 닦달이야.’ 한다.
해야 할 일, 알아야 할 일, 챙겨야 할 일 점점 많아지는 사회다. 사회의 흐름이 그렇게 굳어졌다는 걸 굳이 반박할 필요는 없다. 그 속에서 대응과 준비가 빠른 것은 상당한 장점이다. 그러나 개인이 있어야 사회가 있다. 그리고 그 개개인이 자신의 본성대로 만족하며 제 주어진 역할 충실히 임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이다. 빠른 사람이 있으면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심지어 의외로 많을 것이다.
살다보면 “어차피 해야 돼.” 라며 ‘이유’와 ‘납득’이 생략되는 경우가 있다. [이유를 알고 납득하고 그래서 준비하고 계획하고 행동에 옮기는 것]이 ‘동기’의 수순이라면, 급함 때문에, 답답함 때문에, 혹은 조바심 때문에 이 과정 자체를 축소하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 나에게 당연한 일이 남에겐 당연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했으면 한다. 때 되면 달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안 하는 경우도 있지 않냐고? 나는 내가 페이스북을 하기보다 책 한 권을 더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뒹굴뒹굴 누워서 이 글이나 보고 있나고? 그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냐고? 다음 주행 때 오른쪽 차선에서 만나도록 하자. 그건 조금 다른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