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케닉(정비사)없는 레이싱이 어딨냐.

오른쪽 차선 #002.

심리극전문가가 되는 과정에서 다양한 난관을 만나게 된다. 그 중 하나가 안전성에 대한 문제다.


상처받은 순간을 다시 체험하게 되는 과정에서 내담자가 2차 트라우마를 가지면 어떻게 할건데?
감정을 그렇게 미친 듯이 분출하면 내담자 스스로가 위험하지 않을까?


그럴듯한 문제 제기이다. 심리극의 겉면만 봤을 때 충분히 할 수 있는 우려다. 하지만 그에 대한 반론 거리는 자명하다. 전문적인 영역으로 숙고하면 마냥 그렇지 않아요. 라는 신념이 뚜렷했기에 난 그 인식을 크게 여기지 않았다.

이거 큰일이구나. 하고 느낀 건 엉뚱한 곳이었다. 문제 제기를 압살하는 일부 전문가들. 심리극을 본격적으로 배웠음에도 불구하고, 심리극의 최종 목적을 카타르시스 경험으로 일축하는 태도. 게다가 위와 같은 문제 제기에 “그렇게 보일 수도 있지만 깊이 살펴보면 좀 더 섬세해요.” 가 아니라 “당신이 뭘 몰라서 하는 소리에요. 카타르시스가 얼마나 중요한데요.” 라는 반응. 이건 소통이 아니라 관철이다. 그리고 이들이 필드에서 범하고 있는 행위들 역시 하나둘 귀에 들려온다.

누군가에게 “나는 심리극을 공부하고 있는 심리극전문가야.” 라고 이야기했을 때 바로 “나 심리극 받아봤는데 완전 별로였어서 그거 싫어하는데.” 라는 피드백을 받았었다. 한두번이 아니다. 그게 차곡차곡 쌓이고서야 알 수 있었다.
문제를 만들고 있는 건 이용자가 아닌 제공자 측이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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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감정을 표현해야만 건강하다.’ 라는 명제에 느낌표가 아닌 물음표를 붙인다. 맞지만 마냥 맞지만도 않은 말이기 때문이다. 인간 세상이 응당 그러하듯 더 깊게 파고 들어가야 한다. 그러던 중 이런 기사를 접하게 되었다.



기사가 기사인만큼 지금부턴 감정 중 분노 감정에 초점을 맞춰서 이야기 하도록 하겠다.

기사를 보고나서 눈살을 찌푸렸다. ‘이건 아닌데...’ 싶었다. 방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고에 대해서 주최 측은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문구를 통해 확신했다. 이 공간이 ‘치료’ 공간이 아닌 ‘상업’ 공간이라는 것을.
아마 이들이 본 셀링 포인트는 ‘분노를 표현하며 얻는 카타르시스.’ 일 거다. 그러니 말한다.


여기서 마음껏
부수고, 소리치르고, 욕하면서
감정을 분출하세요!
카타르시스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오로지 분노 표출에만 포커싱을 맞추고 장소를 제공해준다. 그 이상은 하지 않는다.

매우 위험하다. 이런 발상.
감정이라는 게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뛰노는 원초적인 놈임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우리의 감정이 곧 본능이라 생각하는 건 위험하다. 우리들은 오랜 진화를 해왔다. 자라는 과정에서 원초는 점점 가정, 관계, 사회, 문화 등을 학습한다. 이 학습을 통해 비로소 인간은 ‘고등’해진다. 뇌의 바깥쪽을 둘러싸고 있는 대뇌피질의 두터움엔 그런 의미가 있다. 즉, 영장류로써의 인간이 갖는 감정은 복잡하다. 더 적절한 설명은 없다.
그런데 “화 나? 그럼 때려. 죽여. 그럼 시원할 거야.” 이 과정이 알파이고 오메가라고? 그런 생각이 인간에게 적용될 리 없잖아.

인간의 뇌는 '느낀다 / 생각한다.' 이런 이분법으로 나눌 수 없다.
느끼는 바를 자각하고 이를 토대로 생각하여 다시금 종합적으로 느낀다. 그렇기에 인간이 고등 동물이다. 분노는 내 눈을 가리는 비누거품과도 같다. 눈 앞을 뿌옇게 가리고 있으니 그 존재가 전부인양 느껴진다. 그러나 이를 걷어내고 나면 그제서야 보이는 다른 감정들이 있다. 그래서 분노를 표현하는 일은 많은 경우에 ‘중간 과정’이다.
화장실에 가서 일을 보고 뒤를 닦지 않고 나온다. 급한 불은 껐기에 속이 편하겠지만 무언가 찝찝하다. 게다사 은연 중에 다른 사람에게도 악취가 풍긴다. 중간에 끝내는 건 그런 거다. 사람의 감정을 가지고 장사를 하려면, 그 책임감마저도 필수로 갖춰야 한다. 분노 표출 방을 만든 건 좋다. 그러나 그 후속 작업이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감정을 무절제하게 배출하는 것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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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오른쪽 차선만 달리는 차는 없다. 자신이 가진 최고 속도로 시원하게 뻥뻥 터뜨리고 싶은 마음, 당연하다. 강렬한 감정의 표출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무제한 레이싱 무대에 세워놓는 것과 같다. 늦게 달리면 오히려 더 밟으라고 독려해야지. 그러나 속도가 빨라지는 만큼 더욱 정교하게 코스를 꾸리고, 안전 장치를 갖춰야한다. 레이싱에서 미케닉(정비사)은 부수가 아닌 기본 구성이다. 이것만 봐도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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