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차선 #003
과거 센터를 다닐 때 내가 했던 업무는 잡다하게 챙겨야 할 것이 많았다. 사업의 핵심이 되는 메인부터 시작하여, 그 메인을 보조하기 위해 만든 부차적 규율까지. 그 속엔 ‘이건 도대체 무슨 이유로 해야 하는 거지?’, ‘이것이 있기 때문에 오히려 업무 효율성이 떨어지는 거 아닌가?’ 싶은 게 많았다. 물론 말단이라는 위치에 있었기에, 전체 규율과 상사의 명령을 가급적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이렇게 잡다하고 다양한 것을 챙기는 과정이 맞지 않았다. 참 억지로 일했다.
나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효과를 얻는 일에 아낌없이 에너지를 쓴다. 이유는 간단하다. 게으르기 때문이다. 게으르기 때문에 최소한으로 일하면서 최대 효율을 낼 수 있는 방법에 끊임없이 잔머리를 구사한다. 문제가 되는 것은 다른 이들과 공동으로 무언가를 할 때이다. 내 업무 처리 방식은 심하게 말하면 민폐다. 빠른 이와 느린 이가 있으면 답답한 건 빠른 쪽이니까. 그래서 공동의 업무에 있어서는 내 속도가 아닌, 다수의 속도에 맞추려고 무진장 애 쓰는 편인데 이 과정에서 오는 프레셔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혼자 하는 일을 선호한다. 그래도 마감 기한까지 어찌어찌 맞춘다. 느리면서 규정 속도는 어기지 않는다. 나만의 프리함이다.
그러나 개인적인 업무만으로도 숨이 가쁜 상황이 더러 있었다. 이런 경우 어딘가에서 “빨리”라는 단어만 나와도 뒷목 한 켠에 스트레스가 ‘부륵부륵’ 했다.
당시 월요일 아침 일어나며 가장 먼저 한 생각이 ‘아, 출근하기 싫다.’였다. 사실 그렇지 않은 때가 없다시피 하지만, 매우 심각했던 적이 있다. 어디 한 곳 다쳐도 좋으니 출근하기 싫다고 생각할 정도. 그런 마음 상태로 화요일이 되니 죽을 것만 같았다. 정말 ‘졸라’ 싫었다. 머리 한 가득 불만이 틈새를 비집더니 이내 댐이 터질 듯 넘쳤다.
‘왜 다들 빠르게 가지?’
‘멈춰서 숨 좀 돌리면 오히려 크게 볼 수 있잖아?’
‘왜 핵심은 볼 생각을 안 하고 기존의 틀과 형식에만 집중하지?’
‘뭐가 그리 바쁜 거야? 뭐가 그리 불안한 거야?’
머리가 아팠다. 헛구역질이 나고 매스꺼웠다. 버티라면 버티겠지만, 그 장소에 있는 자체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아프다고 양해를 구하고, 조퇴를 했다. 지칠 만큼 지쳤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장에 잘 생각이었다. 정신없이 자고 어떻게든 피로를 풀 생각이었다.
그러나 집에 도착하여 가만히 누워있으니 그냥, 참, 여유로웠다. ‘~해야 하는데’의 바깥에 존재하는 오로지 나만을 위해 만든 시간.
나는 몸을 일으켜 침대 이불을 정리했다. 널브러져 있던 책들을 정돈하고 바닥을 쓸고 먼지를 훔쳤다. 쌓인 빨래를 하고, 마른 빨래를 개켰다. 매우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알.쓸.신.잡’을 켜고 거기서 흘러나오는 지식인들의 잡담과 음악을 배경 삼았다. 빨리 해야 할 필요 없었다. 원래대로면 없었을 공짜 시간이 4시간이나 있었으니까. 중간에 잠깐 쉬기도 했다가, 잠깐 물도 마시러 갔다가 설거지도 했다가 하며 매우 여유롭게, 내 속도대로 나는 ‘일’을 했다. 딱 그 청소와 정리에만 몰입했다. 마음이 참 편해졌다.
3층 건물을 쌓으려면 일단 3층 높이만큼의 지하를 파야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지 않은 건물을 우리는 ‘사상누각’이라고 한다. 기초라는 지반 하에 응용이 쌓인다. 그러나 당장에 평가되는 것은 외관이다. 응용이고, 특별함이다. 우울 고개를 ‘해결’이 아닌 ‘공유’함으로써 넘어가는 이. ‘~해야 되는데’가 머릿속에 20시간 이상 박혀있는 이, 나 자신에게 아무리 특별한 선물을 해도 일상에서 무력감을 벗지 못 하는 이. 지금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자. 바쁘다고 끼니 거르지 말고, 요리하고 조리해서 맛있게 먹자. 동시에 여러 가지 일 하지 말고, 버겁지 않은 가벼움으로 하자.
당신이 자고 있을 때 누군가는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물론 그렇겠지. 그렇지만 그만큼 피곤할 것이다. 언젠가는 자겠지. 당신은 그냥 당신의 레이스를 하면 된다. 결국에 못 따라잡고 지면 어뜩하냐고? 그렇다고 한들 그게 무슨 걱정인가, 완주하지 못 하는 것보다 백배 만 배 낫지 않은가. 차분해진 마음으로 한 번 생각해보라. 내가 굳이 그와 같은 레인 아래에서 경쟁해야 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해야 하는 것, 특별한 것, 당장에 보여질만한 것에 투자하기 위해 기본을 해하지 말자. ‘~해야 하는데’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그득하다면, 그 어떤 일도 할 수 없는 상황에 나를 가끔 던져두라. 그제야 보인다. 과거의 잔재, 미래의 막연한 불안이 아닌 ‘딱 지금’, ‘현재’는. 아무리 노력해도 어차피 다 못 한다는 것이.
걱정할 시간에 빨래 하나를 더 개키자. 정신 건강은 거기서 출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