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리씨 사망 소식에 따른 단상 (오른쪽 차선 #014.)
19년 10월 14일 오후 가수 에프엑스 출신의 연기자 설리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당장 들어도 믿기지 않는 말들이 있다. 이 기사가 그랬다. 믿고 싶지 않았고, 실감이 나지 않았다. 설리씨의 팬이라거나 평소 큰 관심을 두거나 그런 건 아니다. 인스타그램에 올리는 글과 사진이 논란이 될 때마다 ‘아, 또 난리구나.’ 하고 스쳐갈 뿐이었다. 설리를 무척 좋아하는 지인이 있으며, 영화 리얼을 상당히 기대했으나 배반당했다. 이 정도인 사람이었다. 내게 그녀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설리씨의 사망 소식은 충격이었다. 충격 이후에 오는 건 어딘가에 대한 분노와 한심함이었다. SNS에서 많은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입장 표명도 안 하다가, 최근 조금씩 입을 열기도 하고 방송 활동도 하기에 어떤 심경의 변화가 있나보다 했었는데, 그 변화가 ‘절박함’이었을 줄이야. 괜히 미안해진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아직 사인도 밝혀지지 않았고, 유서 또한 발견되지 않았기에 고인의 마지막 순간이 어떤 생각으로 지나갔을지 알 수 없다. 넘겨짚는 수밖에. 하지만 사망 소식을 듣자마자 대부분이 자연스레 ‘자살’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럴 만 했던 징후와 환경을 누구나 알고 있기 때문이겠지.
그래서 분노와 한심함이 일어난다. 입에 담지 못 할 악플을 써내려갔던 악플러들에게,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논쟁 삼으려 했던 불편러들. 그리고 이들의 불편함에 편승하여 조회 수를 높이려 했던 언론 매체들에게.
‘그 년 잘 죽었네!’ 라고 생각하며 고소해 할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겨우 그 정도로 죽어?’ 하며 죽은 이의 절박함을 절하하는 사람, ‘나는 별 말 안 했는데..?’ 하며 자신의 책임을 어떻게든 줄이며 합리화하려는 사람 등등. 어쨌든 대부분 ‘죽는 것까진 생각 못 했는데...’ 라고 하겠지.
필자는 차라리 순수한 악 감정으로 그녀의 죽음을 기뻐하는 사람이 더 낫다고 본다. 이들은 의심할 여지없이 정신 문제니까. 그러나 별 마음 없이 욕하고 흉보고 공격했던 이들에게 설리는 그저 씹을 거리, 스트레스 풀이 대상, 분풀이 상대였다. 이유는 모두 설리를 알기 때문, 즉 공인이었으니까.
강의를 하다보면 꼴 보기 싫은 사람이 있다. 강의 중 옆 친구랑 떠들고 노는 사람이다. 떠드는 모두를 싫어한다는 건 아니다. 에너지가 넘쳐서 제어를 못 하는 사람일 수도 있으니 오히려 앞으로 불러서 그 에너지와 끼를 충분히 발산하게 하면 된다. 그의 활발함이 강의를 윤활하게 만들기도 한다.
허나, 모두 그런 건 아니다. 떠들기에 앞으로 불렀더니 자꾸만 구석으로 숨고 아무 말도 못 하는 경우가 더 많다. 이건 전자와 얘기가 다르다. 이들은 에너지가 넘치는 게 아니라 비겁한 거다. 앞에선 아무 말도 못 할 거면서 지금 강의에 집중하긴 싫으니 강사와 청중을 무시하고 자기 할 일만 채우고 있는 이기적인 부류다.
내겐 악플러 역시 그렇게 보인다. 앞에선 아무 말도 못 할 거면서 뒤에선 온갖 욕을 하는 비겁한 사람들. 더 비겁한 건 그의 욕의 대상이 되는 이유가 직접적인 분노가 아닌 ‘만만해서’이기 때문이다. 남들도 하니까. 알려진 사람이니까. 조금 더 조심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으니까. 나랑 다른 생각을 하고 있으니까.
진심으로 죽일 마음은 없으나 욕하고 저주하고 이용했던 이들. 그들에 의해 누군가가 죽음을 결심하고 실행에 옮겼다.
그들은 내게 그 정도 악의는 없었다며 찝찝함을 털어낼 것이다. 나는 욕만 했지 저주는 안 했다며 책임감을 깎아낼 것이다. 남들도 다 해서 나도 했을 뿐이라며 자신이 이용했던 것을 정당화할 것이다.
누군가는 곧 잊힌다. 언제나 그랬듯. 이후 또 다른 ‘누군가’가 생긴다.
떠난 자는 돌아오지 못 하나 남은 자는 같은 행동을 한다. 잊은 게 아니라 이미 과거 일에 자신의 책임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실이 끔찍하게 싫다. 그들은 아무렇지 않을 거라는 게.
누군가에게 바보라고 하는 사람과 시발이라고 하는 사람 중 누가 나쁜가? 쓸데없는 키 재기 하지 마라. 둘 다 나쁘다. 정도의 차이는 법의 세계에나 있는 거지 윤리의 세계엔 존재하지 않다.
손가락에 악플을 담았던 당신. 괜찮지 마라. 있는 힘껏 반성하고 죄스러워해라. 난 당신들이 한심하고 밉다. 꼴 보기 싫다. 당신은 비겁하고 치사하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알아주지 못 해 미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