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어난 아이는 모두 평발이래.

내 삶의 결정권은 안에 있는가 밖에 있는가

"야. 막 태어난 아이는 다 평발이래."


눈이 휘둥그레진 친구가말했다.

어, 정말이다. 쪼그맣고 귀엽다고 생각하고 넘겼었는데 오동통 뒤에 평발을 숨기고 있었네.

제 몸을 가눌 수 있게 되고 다리에 힘을 주어 걷게 되면서 걸음걸이에 따라 점차 발바닥에 아치가 생긴다고 한다. 하긴 사람마다 걷는 방법이 다르고, 걸음걸이에 따라 사용하는 근육, 발달하는 근육, 쉬는 근육이 다르니까. 하물며 발바닥 모양까지도 어린 시절 습관이 중요하구나.


근데 더 신기한 게 있다.

아이들은 부모의 걸음걸이를 보고 배우기 때문에 부모가 평발이면 아이도 평발이 될 확률이 높다고 한다. 실제로 뒤에서 보면 걸음걸이가 똑같은 엄마와 딸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친구가 신선한 충격에 눈을 빛낸다.


"야. 무섭지 않아?"

"뭐가?"

"난 단순히 유전 때문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잖아. 알고보니 전부 과학이었어!"


음...? 고개를 갸우뚱했다.


"과학인데 왜 무서워?"

"어...? 그러게. 과학인데 왜 무섭다고 했지?"


*


과학은 철저히 원인과 결과의 세상이다. 현상을 바라보는 태도가 신비보단 이해이다. 그렇기에 예측이 가능하다. 말미암아 대비할 수 있다.

이는 보는 관점에 따라 안심할 수도, 두려울 수도 있다.

'알 수 있기에 대비할 수 있구나.' 와 '어차피 뭘 어떻게 해도 정해져 있구나.'

전자는 미래를 염두하며 현재에 집중한다. 후자는 과거를 붙잡고 현재를 놓친다.

삶의 결정권이 내게 있다, 타인 혹은 상황에 있다. 로 나눌 수도 있겠다.


내가 무언가 할 수 있다고 믿으면 새로운 정보는 두려움이 아니라 흥미로움이다.

덕분에 새로운 깨달음을 얻었다. 감사한 마음을 가득 담아 친구를 쳐다보았다.

뭘 보냐고 했지만 이유는 삼켰다. 굳이 말해봤자 돌아올 말은 "재수없어." 일 거 아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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