듣기 싫은 좋은 말

강의 구성을 어떻게 할 지 스케치를 마쳤다. 주제가 성이고, 그 중에도 민감하고 오해 소지가 있을 내용을 다루려다보니 아무래도 부담이 컸다. 구성을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 고민하며 애써 나온 스케치. 이제 이 뼈대에 살을 붙이고 PPT 작업을 하여 강의하면 완성이다.


"후우~ 다 했다! 이런 구성 어떨까?"


뿌듯하고 후련한 마음을 담아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가 가만히 듣더니 한 대목에서 불쑥 "그건 아니지!" 를 시전했다. 근데 그게 아닌 게 아니었다. 내가 하려던 말과 같은 말을 모양만 다르게 하는 식이었다.

내 말이 그 말이라고 방어하길 여러 번. 이미 적극적인 열혈 강의 모드가 된 아내에게 이미 나는 안중에 없었다. 듣기 싫었다. 아내의 피드백을 하나씩 메모하다 슬슬 짜증이 났다.


갑자기 배가 아팠다. 어? 그러고보니 빨래 돌려야 하는데? 밀린 빨래감도 생각났다. 오늘 저녁 뭐 먹지? 메뉴 고민도 생겼다. 안 되겠다. 이건 급해. 어서 처리해야겠어.

여전히 얘기하는 아내를 두고 부엌으로 갔다. 아내가 나를 따라왔다. 옳커니. 아내에게 물었다.


"이거 빨래 삶을 때 뭐 넣어야 돼?"

"아, 너 내 얘기 듣기 싫구나?"


빈정 상한 아내가 입을 닫고 침대로 쏘옥 들어갔다. 아차차.

그러게. 듣기 싫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은 구성이 어떤지가 아니라, 들였던 나의 수고에 대한 칭찬이었다. 말을 달리 했어야 한다. '이런 구성 어떨까?' 가 아니라 '나 고생했다! 칭찬해줘!' 라고.

질문이 잘못 되었으니 돌아오는 답변도 내가 원치 않는 게 당연했다. 때문에 좋은 의도로 한 아내의 말이 내겐 듣기 싫은 잔소리로 들렸다.


침대에 쏘옥 들어간 아내는 이불 밖에 빼꼼 나온 발바닥으로 존재했다.

그 발바닥을 찰싹 때리며 말했다.


"고생고생해서 만들었는데 나쁜 말만 들으니 듣기 싫었네! 대처가 부족했구만! 내가 미안!"

"..."

"앞으로 칭찬 듣고 싶을 땐 그렇게 얘기할게. 좋은 말 들으니 짜증 나는 구만!"

"짜장면 먹고 싶다고?"


음, 오늘 저녁 짜장면은 내가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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