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의 보통 청년이 써보는 요즘 세상 살이. (오른쪽 차선 #013.)
최근에 큰 돈을 잃었다. 매달 들어오던 월급에서 어떻게든 생활 지출을 줄이고, 하고 싶은 거 참아가며 모았던 적금이었다. 그렇게 2년을 모았는데 만기가 되자마자 모종의 이유로 사라져버리니 기분이 묘했다. 화가 나지도, 슬프지도 않았다. 그냥 허무할 뿐이었다. 내게 그 돈은 돈을 모았다기보다 시간을 모은 거였다. 큰 돈을 벌지 못 하는 삶이래도 근면히 생활하는 하루하루가 차곡차곡 모였을 때 보다 더 나은 미래를 만들거야 라는 생각을 바탕으로 하루하루를 모아놓은 거였다.
비슷한 시기에 강남 지역 청소년을 상담하다가 이런 얘기를 들었다. 용돈으로 한 달에 150정도 받는데 너무 부족하다고. 다른 친구들하고 놀지를 못 하겠다고. 뭐, 그 정도야 그냥 그렇구나 하고 넘겼는데 그 이후 들은 얘기가 심장 깊숙이 박혀 있다.
친구 A와 친구 B가 어느 날 한 클럽에서 다른 테이블을 잡았다고 한다. 그런데 그 클럽은 당일 가장 높은 금액을 계산한 테이블을 전광판에 띄어주면서 빵빠레를 울리는 시스템이 있던 듯 하다. 자존심 싸움이 붙은 A와 B는 서로 양주를 시키고 비워가며 지출을 늘렸는데 그 가격이 각각 2,800만원 / 2,500만원이었다고 한다. 전광판에 뜨고, 빵빠레 1회 울리는 그 '약팍한 승리감'을 위해 하루에 그런 거금을 써버린 것이다. 게다가 그 승리감을 위해 쓴 그 금액은 내가 2년간 모은 시간을 훨씬 웃도는 금액이었다. 고작 갓 20살 된 아이들이 자신이 번 돈으로 그런 소비를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한다. 그 돈의 출처는 부모 또는 조부겠지.
난 요령 부리지 않고, 피해주지 않고, 불만도 하지 않고 내게 주어진 삶을 근면성실하게 살아내고 있다고 자부한다. 그래서 난 나의 하루하루가 자랑스럽다. 자부심이 있다. 그래서 하루에 2,000만원이 넘게 썼다는 그들이 전혀 부럽지 않았다. 오히려 상당히 한심하게 느껴졌다. 다만, 나의 근면하고 성실한 하루가 그들의 방탕하고 소비적인 하루와 비교했을 때 그 정도 값어치구나(환원주의적으로) 생각하니 상당한 허탈감이 일었다. 비교 대상이 생겼기에 시작한 의문이지만, 이내 그들이 어떻게 살건 그건 중요치 않았다. 남은 건 '나'를 대표로 한 '하루하루 나름의 뜻을 품고 성실하게 살아내는 청년들'에게 인정되는 하루의 값어치였다.
원펀맨에 나오는 도원단이라는 단체가 있다. 어째서 사람은 일을 해야 하는가? 일을 하지 않는 사람도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고, 일은 하고 싶어하는 사람만 하게 만들자는 주장을 하는 곳이다. 그들의 사고는 재벌에 대한 분노로 이어져 재벌 사냥이라는 불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기에 그들을 지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사상만큼은 열렬히 지지한다. 인류는 결국 저렇게 되어야 한다고.
성인 1명이 한 달을 사는데 200만원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 정도면 적당히 사회 관계와 미래에 대한 준비를 해갈 수 있는 여유 자금이다. 여기서 조금 더 풍족한 생활, 즐기는 생활을 하고 싶으면 자산을 추가할 수 있도록 일을 한다. 일이 생존의 필수불가결한 존재가 아닌 선택적 자아실현의 수단이 될 때 인류는 더 이상 불안해하지 않는 여유 상태에서 자기를 찾아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는 노동이 주는 사회적 발전과 경제 성장이 뒷받침이 되어야만 전 인류를 복지할 수 있었지만, 지금같은 과학 수준에서 노동의 대부분은 로봇과 A.I. 가 대신 해 줄 수 있지 않은가. 모두가 영위할 수 있을 정도의 풍족한 자원 아래에서 개개인이 자신의 삶의 의미와 역할을 해내는 사회. 내가 궁극적으로 꿈꾸는 사회는 그러한 사회이다.
왜 이런 사회를 꿈꾸게 되었는가 더 자세히 얘기해보자면, 내가 가진 여러 전제 때문이다. 첫 째, 인간은 불안함으로 인해 바쁘지다보면 생각하기를 멈춘다. 둘 째, 생각을 멈춘 인간은 시간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소비'한다. 셋 째, 여유로운 시간 아래에서 인간은 뭐라도 하고자 노력한다. 이유는? 심심해서. 넷 째, 인간은 근본적으로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 본성이 있다.
즉, 불안함에 쫓기지 않는 여유로움이 기반에 깔려있다면 인류는 '생각'을 할 것이고 그 생각이 인류를 더더욱 발전시킬 거라고 믿는다. 현 사회에서 일은 '자아 실현의 도구'가 되지 못 한다. '경제적 안정의 수단' 이 충족되어야 그 안에서 '자아 실현'을 하고자 하는 의지가 생기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금의 청년이 미래를 전망하는 핵심 키워드는 '불안감'이다. '뭐 먹고 살지?' 하는 불안감이라고 봐도 되겠다.
포퓰리즘의 느낌이 난다면 이런 미래 전망을 접고 생각하자. 현실적으로 생각하더라도 사회에 순응하며 근면과 성실을 갖추고 정의롭게 살아가는 이에게는 '하나하나 되어가는' 성취감이 있어야 한다. 보상이라면 보상이겠다만, 이 정도는 상식이지 않은가?
현실은 그렇지 않아보인다. 대한민국 평균 월급을 받으며(100만원대 후반) 그 중 절반 이상을 저축하고, 사사로운 소비를 최대한 줄이며 살았던 내게 다가온 미래는 '1,000만원 이상의 잔여 학자금 대출 ', '매매는 커녕 변변찮은 전세도 구할 수 없는 자금', '결혼하고 싶어도 시작 자체가 불가능한 불안정함', '하루라도 일이 안 잡히면 극심히 올라오는 불안감.', '한 끼 먹을 때도 지출 걱정에 늘어가는 편의점 이용 횟수와 그에 비례하게 약해지는 위장 건강' 등이다.
근면성실정직이 주는 피드백이 안 하면 불안하고 하면 허무해지는 삶이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태도를 붙들고 사는 방법은 정신 승리 뿐이다. 건강한 성정과 질 높은 가치관으로 남 부끄럽지 않게 살고 있다는 뿌듯함. 다행스럽게도 난 이런 정신 승리가 잘 되고, 이런 삶이 맘이 편한 쫄보이다. 그러나 지금 같은 상황 속에서 너무 이해가 된단 말이지.
인생 한 방을(일확천금) 노리며 목숨을 거는 한탕주의가, 아무 이유도 없이 재벌이라고 하면 달갑지 않게 보는 그 열등감이, 자존심과 양심 조금 깎고 더 쉽게 많이 버는 불법이, 불현듯 걱정에 젖어 불안해지지만 의욕은 나지 않는 그 허무함이. 이로운 대책도, 혜택도 없는 사회와 정책에 대한 혐오와 분노가, '무일푼'을 쥐어주고 세상에 내보낸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물론 이런 마음이 모두의 공감을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나보다 열심히 살았고, 고민했고, 노력해서 상당한 성취를 이룬 사람도 당연히 있다. 그러니 내가 더욱 열심히 했다면 지금보다 나은 삶을 살았을 수도 있다. 노력 부족을 원인으로 들면 억울하긴 할테지만 할 말은 없다.
근데 노력을 얼만큼 해야 그 댓가로 '불안함으로 일축된 삶'을 살지 않을 권리를 선물 받을 수 있을까? 노력하지 않으면 불안해야 하는 걸까? 양보하고 양보하더라도, 적어도 절반이 넘는 사람들은 근면성실정직의 혜택을 받아야 하지 않을까? 여유로움의 진입 장벽을 자꾸 바늘 구멍으로 좁히는 게 과연 우리를 더더욱 열심히 살게 하고 싶어질까? 도리어 포기하고 생각 안 하고 눈 감아버리고 불평불만만 하게 되지 않을까?
난 여전히 돈이 아닌 시간을 저축한다. 근면성실정직이 인생의 미덕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시간이 곧 금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내가 더욱 살았을 어딘가의 미래에도 부디 내가 이 믿음을 계속 가지고 있기를 희망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