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차선 #012.
내용이 어떻든 간에 베스트셀러는 물론이거니와 이 달의 문제작으로 기록될만한 책의 제목을 생각해냈다. 그 책의 제목은 [미투 심리학]이다.
인정하겠다. 이 농담에는 조롱이 담겨있다. 그 조롱은 요즘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해서다. 난 요즘의 남녀 이슈가 과거의 지역 갈등과 닮았다고 생각한다. 그에 앞서 좌파, 우파 진영 갈등과 닮았다고 본다.지금부터 얘기할 내용은 이 ‘대립각’에 대한 이야기다.
이전 포스팅에도 얘기했듯이 미투는 찬성하고 반대하고 할 만 한 거리가 아니다. 미투 운동은 권력에 의해 벌어진 성 관련 범죄 피해자들이 용기를 내어 자신의 피해 사실을 고백하고, 아울러 가해자들의 처벌을 호소하는 운동이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고백하며 가해자에게 그에 적합한 처벌을 호소하는 일에 찬성이 어딨고 반대가 어딨겠나.
그러나 작금의 흐름이 이 ‘권력’의 범위를 어디로 설정했는가 보면 실금이 나온다. ‘권력’을 가진 자를 ‘모든 남자’로, ‘권력’에 피해 받는 자를 ‘모든 여자’로 설정한다. 미투 운동을 세상 모든 남성들이 벌이고 있는 여성 인권 탄압에 대한 저항 운동처럼 진행한다면 이건 본질을 잃었다. 문제 범주를 너무 넓혀버린 탓이다.
이미 권력 구조 상 ‘기울어진 운동장’인 현재의 상황에서 남자는 알게 모르게 가지고 있는 이득이 있고, 그것을 공부하지 않은 상태에서 같은 선상으로 평등을 논하는 건 맞지 않다고 얘기가 나올까봐 미리 얘기한다. 이런 반박 자체가 미투 운동의 해석을 너무 넓게 했다고 자백하는 셈이다.
미투 운동에서 방점이 찍히는 곳은 ‘권력에 의한’이지, ‘남성의’가 아니다. 물론 성 관련 범죄에서 가해 빈도가 남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그러나 미투 운동의 가해자들이 ‘내가 상관이고 너는 부하니까.’ 라는 마음으로 성적인 침해를 했지, ‘내가 남자고 넌 여자니까’ 라는 마음으로 한 게 아니다. 그랬다면 부하가 아닌 아무 여자한테나 그런 침해를 했겠지.
남자들은 모든 여자에 대해 성적 대상화를 하지 않냐고?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면 앞으로의 얘기는 당신에겐 별로 설득력도 없고, 납득도 되지 않을 것이다. 글 읽기를 중단해주기 바란다.
필자는 성별이 대립적 구도를 가지고 갈등을 부추기는 게 문제를 낳을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현실적으로 이렇게 덜컹거리면서 차차 안정화에 접어들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더라도 그 과도기에 생길 부작용은 논해야겠다.
인간의 3대 욕구를 얘기할 때 수면욕, 식욕, 성욕을 이야기한다. 극한 상황이라고 함은 생존이 불분명한 상태를 얘기한다. 굶어 죽을 지도 모르는, 잠들면 다신 못 일어날 수도 있는, 어찌 되었든 생명이 왔다 갔다 하는 상황. 그런 상황에서 생존은 도덕이나 예절보다 앞선다.
난파선에서 조난을 당한 사람이 죽은 동료의 인육을 먹으며 연명했다고 해보자. 큰 이슈가 되겠지만, 그는 다소 공감대를 얻을 것이다. 물론 인간의 고귀함을 지키며 아사를 선택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렇지 않았다고 욕할 수 없다. 안 그랬으면 죽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생명과 직결되지 않는 다른 욕구도 있다. 많다. 권력욕, 관계욕구, 인정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등(물론 1차원적인 관점에서다.). 이런 욕구는 도덕과 예절에서 자유롭지 않다. 사회적으로 통용 가능해야만 행동의 정당성이 인정된다.
그런 면에서 성은 애매하다. 욕구를 해소하지 못 한다고 목숨을 잃지 않는다. 그러나 그 충동은 매우 강력하다. 오죽하면 3대 욕구의 자리를 꿰찼을까.
풀어 말하자면 이렇다. 성욕은 생존에 직결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행동의 선택은 도덕, 예절의 범주에서 해석해야 한다. 그러나 그 욕구의 정도는 3대 욕구라고 인정될 만큼 강력하다.
즉, 우리는 두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성은 자연스럽다, 성욕은 절제가 가능하다.
최근 불꽃페미액션이라는 페이스북 운영자 및 이용자 일부가 자신의 상반신 반라 사진을 음란물로 지정하고 삭제한 페이스북 코리아 본사 앞에서 상반신 탈의 퍼포먼스를 벌이며 항의 시위를 하였다고 한다. 남성의 상반신은 그대로 두면서 여성의 상반신은 음란물로 규정하는 것에는 문제가 있냐는 취지였고, 이는 충분히 할 수 있는 주장이다. 남자는 되고 여자는 왜 안 되는가? 이런 의문은 그간 자연스럽게 굳어진 사회 통념에 도전하는 좋은 저항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일부 극단적 입장은 이런 차별에 굳이 대립각을 세운다. 그 대립의 중심에 남성이 여성에게 벌이는 성범죄가 있다. 남성이 여성의 성을 착취하기 위해 이런 성 권력 구조를 만들었고, 그런 사회에서 남자는 모두 잠재적 가해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모든 여성들이 잠재적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이 주장의 결론이 뭔지는 필자도 잘 모르겠다. 여성들이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남자는 모두 없애야 한다? 남자가 그런 생각 자체를 못 하게 여성의 권력이 남성보다 높아야 한다? 흐음... 저런 주장을 바탕으로 하면서 남자와 여자가 동등해야 한다는 결론을 말할 수는 없는데 말이지.
돌아오자. 이런 현실에서 자칫 성이 가해/피해의 잣대로 인지될 수 있다. 남자의 성적 행동은 모두 권력에 의한 가해 행동이 된다. 여성은 그들을 경계해야 하고, 그들을 경멸해야 한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 성은 자연스럽다. 자연스러운 감정에 가치판단이 들어가는 순간 그건 정신 병리를 낳는다. 자연스런 감정과 그것이 옳지 못 하다는 가치적 판단이 인지 부조화를 만들기 때문이다.
성 관련 범죄가 다른 범죄에 비해 심각하게 다뤄지는 이유는 수치심과 죄책감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감정들은 수많은 부정적 감정 중에서도 최하위를 기록한다. 성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과정에서 성 범죄를 부각시키고, 남성을 가해자로, 여성을 피해자로 각인시키는 그들의 주장은 장기적으로 볼 때 오히려 성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낳는다. 남성에게든 여성에게든 성은 자유롭다. 수치스럽거나 죄스러운 것이 아니다. 물론 그것이 범죄로 번진다면 엄연한 문제다. 그러나 성범죄이기에 더욱 수치스럽고 문제가 큰 것처럼 부각되는 건 옳지 않다. 성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 자연스러움에 남녀의 구분은 있을 수 없다. ‘성’에 피해 의식과 수치심을 부여하지 않는 것. 우리의 발전은 이런 방향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