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태치먼트, Detachment>를 통해 보는, 다양한 역할 속의 나.
오늘 볼 영화는
<디태치먼트, Detachment, 2011>입니다.
페이스북에 돌아다니는 조각 영상을 통해 접하고 흥미를 가지기 시작한 영화인데요. 해외 영화보다는 국내 영화를 주로 보는 저였지만, 참 좋았습니다. 영화라기보다 다큐를 찍는 듯한 거친 카메라워크와 연출 덕에 정신 없이 몰입해서 보게 되었던 것 같아요.
본 리뷰에는 스토리에 대한 전반적인 네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분은 페이지를 뒤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 형아쌤의 반짝 평점
참신성 : ★★☆☆☆
(영화 자체가 참신함에 좌우되는 소재가 아닙니다.)
몰입도 : ★★★★☆
(영화는 흔들립니다. 화면도 흔들리고 인물도 흔들리고 보고 있는 나도 흔들립니다.)
메시지 : ★★★★★
(사는 영화입니다. 그만큼 메시지는 실제적입니다.)
심리 : ★★★★☆
(사실 영화는 불친절합니다. 그러나 인물의 눈동자는 친절합니다. 흔들림 속에 배어있는 심리를 보고 느끼는 영화입니다.)
전체 : ★★★★☆
(보고나면 “다 봤다!” 가 아니라 “허어...허억허억...” 하게 되는 영화.)
대략의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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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교에 배치된 교사 헨리는 학생들을 다루는 데 능숙하지만 과거 힘들었던 기억 때문에 정규직이 아닌 기간제 교사로서의 삶을 살아간다.
유난히 문제아들만 모여있는 학교는 교사도 학생도 서로를 포기한 암담한 상황.
그러나 때로는 엄하고 때로는 부드러운 헨리의 모습에 학생들은 조금씩 마음을 열게 된다.
더 이상 학생들에게 애정을 주지 않으려 했던 헨리 역시 왕따 메레디스와 거리에서 만난 10대 소녀 에리카로 인해 점차 변화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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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교육자로써 희망적인 메시지를 찾고자 보기 시작했지만
다 보고나니 무겁게 침전된 영화. 그렇지만 마냥 암울하진 않은 영화.
시작합니다!
1. 기간제 교사로써의 헨리 한 스푼.
이미 교권은 추락할 데로 추락해있고 학생도, 교사도 개선보다는 하루하루 버티는 것에 의의를 두고 있는, 아니 그런 마음도 없이 그냥 그렇게 살아지는 곳. 그런 학교에 헨리는 기간제 교사로 들어가게 됩니다. 어차피 학생들을 만날 시간은 겨우 한 달. 학생들은 헨리를 거들떠도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자신을 협박하고 무례하게 구는 학생 앞에서 헨리는 철저하게 사무적이고 이성적인 태도로 일관합니다. 도발에 넘어가지도 않고 도리어 차분하게 학생들 스스로 꼬리를 내리게 하는 원숙한 학생 다루기 실력을 보이죠.
기간제 교사로써의 헨리는 상당히 실력이 있습니다. 학생들이 하는 무수한 도발에도 감정적이 되지 않는 이상적이고 사무적인 선생님의 모습을 보이죠. 그렇지만 이 영화의 헨리는 비단 이 모습에 그쳐 있는 것이 아닙니다.
2. 자식으로써의 헨리 한 스푼
저는 개인적으로 처음 헨리가 병원에 가서 간호사에게 성질을 낼 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반전이었죠. 감정 컨트롤을 그렇게나 잘 했던 사람이 간호사에게는 온갖 악담을 퍼부으며 소리를 지르다니.
그러나 업무 시간에 학생들과 이성적인 교류를 나눴던 헨리도 헨리이고, 간호사에게 불같이 성을 내는 헨리도 헨리였습니다. 철저한 교수법으로 만나야 하는 학생들, 그들이 없는 상태에서도 이성적인 판단을 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죠. 헨리는 늦은 밤에도 딸(헨리에겐 엄마)을 찾는 할아버지에 대한 안타까움과 짜증이 가득한 상태였고, 그 분노 풀이의 대상을 간호사로 지정하였습니다.
교사로써 헨리는 학생에게 화를 낼 필요 없었으나, 한 사람의 자식으로써 헨리는 간병인에게 화를 낼 수 있는 갑의 위치에 있었습니다. 간병인에게 굳이 교과목을 과외해줄 필요는 없었으니까요.
우리는 이렇듯 다양한 역할을 입은 상태로 살아갑니다. 디태치먼트는 헨리라는 개인의 다양한 생활 영역을 통해 ‘역할 속의 인간’에 대해 적나라하게 드러냅니다.
3. 학교 밖에서의 헨리 한 스푼
길거리의 방황하는 소녀 에리카는 헨리에게 있어 엮이기 싫은 귀찮은 존재입니다. 강제적으로 매춘을 하고 벌게 되는 푼돈으로 살고 있는 에리카였기에 매춘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헨리는 에리카가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죠.
그러나 어떤 이유인지 헨리는 에리카를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씻게끔 하고 상처에 약을 발라주며 잠자리를 제공합니다. 처음에는 매춘을 위해 집에 데려왔겠거니 생각했던 에리카였지만 자신을 챙겨주는 헨리를 보며 점점 마음을 열게 됩니다. 그 보답으로 에리카는 헨리에게 식사를 차려주죠. 그 일상적인 시간에 에리카는 행복을 느낍니다. 헨리 역시 점점 그 일상에 몸을 맡기게 되죠.
4. 교육자의 이상으로써 헨리 한 스푼
영화는 헨리의 단독 인터뷰를 중간중간에 삽입합니다. 헨리가 거기에서 하는 이야기는 교육자로써 상당히 자리 잡혀 있는 생각이죠. 독서를 해야 하는 이유에 대한 진정성 있는 강의나, 학교와 학생에 대해 가지고 있는 깊은 생각 등 헨리의 인터뷰 영상은 교육자에게 있어 좋은 귀감을 줍니다.
디태치먼트는 교육자 헨리의 이야기일까요? 교권의 추락이라는 관점에서 영화를 볼 수도 있겠고, 헨리의 괴로웠던 생애사를 이해하는 관점으로도 영화를 볼 수 있겠으나, 저는 디태치먼트를 보면서 한 사람의 다양한 역할에 대한 영화구나 라는 관점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 답은 이렇습니다. 디태치먼트는 다양한 헨리 속에 있는 진정한 헨리를 발굴하는 영화입니다.
5. 다양한 헨리 한 스푼
여타의 학교 영화처럼, 구제불능처럼 보이는 학생들을 위해 헌신하는 선생님의 모습. 그런 것은 이 영화에서 보이지 않습니다. 굉장히 실제적입니다. 실제적인 학생들 앞에서 그것을 대하는 헨리의 반응도 매우 이상적이죠. 그러나 그 이상적인 교수법이, 전략이 훌륭해보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헨리는 차가워보여요. 감정이 없는 사람인가? 저 사람의 교육 철학은 대체 뭐지? 하는 의문점을 갖게 되죠.
그리고 그것은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역할 속에서 더욱 단서를 줍니다. 헨리 역시 분노했으니까요. 그러므로 교사로써의 헨리는 진정 어린 헨리와는 거리가 멉니다. 다만 그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것 뿐이죠.
우리는 관계를 하고 살아갑니다. 그 관계 속에서는 내가 나답게 있을 수 있는 환경이 있기도 하지만, 나만을 고집하는 것이 가능하지 않은 환경도 있습니다. 어떨 때는 철저하게 내 본성을 숨겨놔야 할 때도 있지요. 하지만 그런 상황이 유쾌하지 않다고 해서 마냥 거절하고 회피한다면 그것은 사회적 존재로써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요는 어떤 역할이든 그 때 그 때 잘 갈아입을 수 있는 것.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본성이라면 좋은 것이고, 본성이 아니라면 그렇게 해나갈 수 있는 스킬들을 무장해가는 것이지요.
헨리에게 있어서 교사란 스킬입니다. 마냥 가까운 사이로 지내야 하는 정규 교사가 아닌 기간제 교사로써 있는 것도 나름의 타협입니다. 학생들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여야 버틸 수 있는 과거의 트라우마, 하지만 교사라는 소임을 잘 해낼 수 있는 스킬, 교육에 대한 순수한 의지 등이 헨리 내부에서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낸 것이죠. 그렇기에 디태치먼트의 헨리는 어쩌면 나약한 존재로 보입니다. 여타의 교육 영화처럼 슈퍼맨 같은 선생님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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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면 주어진 역할대로 살아갈 수만 있다면 누구든 잘 살 수 있는 거냐고 반문을 하실 지도 모르겠네요. 제 생각은 No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이 영화의 가치가 높아지는 순간은 바로 이 것 때문입니다.
헨리는 언행은 상냥하지 않습니다. 부드럽다는 말과는 거리가 있죠. 학생에게도, 에리카에게도, 아버지에게도. 그러나 헨리와 관계되어지는 사람들은 헨리에게 매력을 느끼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헨리는 과거의 기억으로 마음을 닫고자 하지만, 본디 헨리는 인간적으로 너무나도 따스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그 에너지 자체를 느끼는 것이에요.
만약 같은 행동을 한다고 해도 헨리가 아닌 사람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속으로는 학생들을 무시하고, 에리카를 멸시하는 사람이 겉보기에만 나이스하게 행동했다면, 그럼에도 과연 사람들은 그를 좋아했을까요?
생각해볼 이야기입니다.
영화에는 다양한 경우가 나옵니다.
친절해야만 한다는 틀에 갇혀 자신의 속내를 꾹꾹 참으며 상담을 하다가 마침내 학생에게 온갖 폭언을 퍼붓는 상담 선생님이 나옵니다. 그 폭언을 듣고 학생 역시 욕하며 상담실을 뛰쳐나가지만, 글쎄요. 어떨까요? 오히려 그 학생에 감정을 움직인 것은 상담 선생님의 그 폭언부터 아니었을까요?
자기에게 향하는 온갖 모욕적 언사에도 흔들리지 않기 위해 정신과 약물을 섭취하는 선생님도 나옵니다. 그의 언행은 매우 밝고 낙관적입니다. 그러나 부자연스럽습니다. 학생들이 과연 그 선생님에게 애정을 줄까요?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사람의 진심이라는 것이 참 복잡하고 위험한 것입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사람을 사랑한다고 해도 방법이 옳지 않아 그 에너지가 닿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반대로 방법이 매우 훌륭해도 마음의 에너지가 없으면 받는 사람 역시 동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사람을 대하면 방법이 좋든, 좋지 않든 상대에게 그 마음이 닿을 확률이 있습니다. 이 마음이 없이 방법만으로 대하면 결과는 뻔하죠. 나쁜 쪽으로요.
디태치먼트는 만능을 추앙하는 영화가 아닙니다. 오히려 부족한 사람들의 고군분투를 따스하게 그려내는 영화입니다. 헨리 역시 마냥 긍정적인 일만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 사는 세상에서 메레디스와 같은 일도 생기기도 하지요. 그렇지만, 그럼에도 살아갑니다.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무엇인가요?
그 다양한 역할 속에서 혹시 잊고 있는 나의 모습은 없는지.
그것을 생각하면서 오늘 <디태치먼트> 한 편 어떠신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