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을 통해 보는, 상처에 대처하는 법.
오늘 볼 영화는
<어느 날, 2016>입니다.
본 리뷰에는 스토리에 대한 전반적인 네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분은 페이지를 뒤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 형아쌤의 반짝 평점
참신성 : ★★★☆☆
(나에게만 보이는 누군가. 라는 소재는 흔하지만, 그 대상이 시각장애인이었다는 점은 참신하다고 판단했습니다.)
몰입도 : ★★★☆☆
(미소(천우희)가 식물인간이 된 이유를 잔잔히 쫓아가는 전개는 자연스럽습니다..)
메시지 : ★★★☆☆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확고해보입니다만...오히려 확고해서 아쉽습니다.)
심리 : ★★☆☆☆
(영화는 아무리 현실을 담고 있다고 해도 픽션입니다. 그만큼 현실에선 볼 수 없는 강인한 인간의 면모를 담고 있었으면 해요.)
전체 : ★★★☆☆
(생각해볼만한 좋은 대사들이 많습니다. 별 기대 안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보시는 게 좋아요.)
대략의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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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세요?” 어느날, 나에게만 그녀가 보이기 시작했다
아내가 죽은 후 삶의 희망을 잃고 살아가던 보험회사 과장 ‘강수’.
회사로 복귀한 그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 빠진 ‘미소’의 사건을 맡게 된다.
‘강수’는 사고 조사를 위해 병원을 찾아가고, 그 곳에서 스스로 ‘미소’라고 주장하는 한 여자를 만나게 된다.
자꾸만 자신에게만 보이는 ‘미소’를 수상하게 여긴 ‘강수’는 그녀가 다른 사람들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제가 보여요?” 어느날, 새로운 세상이 보이기 시작했다
교통사고 후 의식을 잃었다가 병원에서 깨어난 ‘미소’는
병실에 누워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가 영혼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생전 처음 새로운 세상을 보기 시작한 ‘미소’는 유일하게 자신을 볼 수 있는 ‘강수’를 만나게 되고 그동안 간절히 이루고 싶었던 소원을 들어달라고 부탁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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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라고 적혀있습니다.
김남길은 잘 생기고 천우희는 예쁜 영화!
부모의 사랑, 죽음 앞에서 인간의 마음 등 다양한 주제를 담고 있으나 어쩐지 모르게 짬뽕이 되어버린 아쉬운 영화, 어느 날!
시작합니다!
1. 감각의 양면 한 스푼
극 중 미소는 시각 장애인입니다만, 가사 상태에 빠졌을 때는 시각이 살아납니다. 그렇지만 강수의 눈에만 보인다는 설정이기에 물체를 관통하는 (흔히 말하는) 영혼 상태가 되고 말죠.
즉, 시각이 살아난 대신 사물을 만질 수 없게 됩니다. 지금껏 의지했었던 촉각을 이용할 수 없게 된 것이죠. 이런 상황 하에 미소는 복합적인 마음을 가집니다. 일단 눈이 보이게 되니 지금까지 상상으로만 했던 것들을 보고, 신기해합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사물 하나하나를 만지며 그 속에 배어있었던 깊은 촉감을 그리워 하기도 하죠.
저는 지금까지 ‘만질 수 없다.’ 는 것과 ‘촉감을 느낄 수 없다.’ 는 개념을 동일선상에서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촉감이란 오감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중요치 않은 감각이니까요. 그래서 영혼에겐 촉감이 없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놀랐습니다. 시각 장애인이라는 설정은 전개 상 개연성을 높이기 위한 도구로써의 의미가 큰 듯 하지만, 어찌되었든 시각, 그리고 촉각이라는 감각의 대비를 보여줬다는 면에서 <어느 날>은 매우 신선했습니다.
2. 상처에 대처하는 법 한 스푼
이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각기의 상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에 대처하는 방법은 다르죠. 각 인물이 어떻게 상처를 다루는 지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2-1. 강수(담담할 리 없는 담담함)
강수는 아내의 죽음 앞에 죄책감과 후회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 때문에 아내 장례식에도 가지 못 할 정도죠. 그러나 강수는 주변의 걱정과는 다르게 비교적 멀쩡하게 행동합니다. 미소를 띄운 얼굴로 처남을 대하기도 하고, 회사 복직도 근면성실하게 하죠.
그러나 강수의 이런 담담함을 지켜보는 관객들은 묘한 답답함을 느낍니다. 힘들 것이 분명한데 힘들어하지 않으니까요. 분명 괜찮은 척 하는 걸테니까요.
그래서 마지막 강수가 눈물을 흘릴 때 관객들도 진정 슬퍼합니다. 함께 울 수 있습니다. 감정이란 이런 것입니다. 상황에 맞는 적절한 정도의 반영과 공감이 중요한 것이죠.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괴물<2006> 영화에서 딸 현서(고아성)을 괴물에게 잃고 합동 장례식을 하는 장면 기억 나시나요? 거기에서 할아버지, 아버지, 삼촌, 고모 모두가 대성통곡을 하며 현서의 죽음을 슬퍼하지만 관객들은 울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엉성하게 처절한 모습에 실소를 터뜨리죠. 딸을 잃었다는 슬픔을 짐작 못 하는 것도 아니고, 상황이 코믹스럽지도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이 감정이입을 못 하는 이유는 이미 극 안의 인물들이 감정을 오히려 과잉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넘치면 넘친다고, 부족하면 부족하다고 뭐라 하게 되는 게 사람 심리죠. 어느 정도가 적정 수준인지를 느끼고 반영 할 수 있어야 진정 그 사람의 마음과 함께 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2. 미소(희망으로 눌러버린 불안함)
미소는 부모님께 버림 받은 아이입니다. 생활고 때문이었는지 시각 장애인이라는 장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린 나이에 버림 받게 된 미소가 느꼈을 절망적인 마음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나를 버린 부모에 대해 저주하며 미워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미소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부모 역시 무언가 사정이 있어서 나를 버렸을 거야. 그러니 내가 무탈하게 잘 자라서 건강한 모습으로 나타나면 굉장히 기뻐해주실 거야.’ 하는 믿음으로 살아가죠. 이 희망을 동력 삼아 미소는 자라납니다.
그러나 미소의 이런 희망과는 다르게 어머니의 반응은 당황과 그로 인한 문전박대로 이어집니다. 미소는 절망하고, 그대로 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인생에 있어 희망을 가지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희망은 현재를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좋은 동력이 되곤 하죠. 그렇지만 미래의 희망을 위해 현재를 불행하게 여기고 있다면 이것은 자칫 위험할 수 있습니다. 희망이 끊기는 순간, 남는 건 절망 뿐이니까요. 그래서일까요?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아두는 일에는 항상 불안함이 따릅니다. 불안은 조급을 만들고, 조급은 실수를 만들죠.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희망을 가지지 말아야 할까요?
당연히 그렇지 않습니다. 희망을 갖는 것은 좋은 일이에요. 그러나 현재의 내가 갖고 있는 것, 놓여진 환경에도 만족한 상태로 희망 역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말이 쉽다고요? 네... 그러게요(...)
3. 안락사 한 스푼
영화의 마무리가 아쉬웠던 이유는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이 귀결되는 곳이 결국 안락사였기 때문입니다. 형아쌤이 안락사를 극렬히 반대하는 입장인 것은 아닙니다. 개선 여부, 남겨진 가족의 경제적 부담, 환자 본인의 의지 등을 복합적으로 따져 개개인이 선택해야 하는 문제라고 생각하죠. 그렇지만 이 영화의 안락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은 등장인물들이 안락사를 결정하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기왕 죽을 거라면 조금이라도 건강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이 마음이라니... 병마와 싸우는 그 과정과 모습이 흉하고, 사람들이 떠나갈 것이라고 확정하는 듯한 마인드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물론, 목숨만 연명하면서 주변 소중한 사람에게 피해가 되고 싶지 않다는 이유도 있다는 것은 알아요. 그렇지만... 피해가 되는지 되지 않는지도 나눠보지 않은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선택한 것은 남겨진 이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이 아닐까요?
볼빨간사춘기의 <심술>이라는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더운 여름날 다 녹아버린 아이스크림을 들고 오는 남자친구를 보며 화보단 오히려 고마움을 느낄 수도 있는 거죠. 녹아버릴바엔 떨어져버리겠다는 마인드는... 으음...
어느 날은 상처 입은 사람들끼리 만나
서로에게 치유를 주는 영화입니다.
이렇다 할 위로도, 공감도 하지 않지만
서로를 생각해주기에 그 마음은 서로에게 연고가 됩니다.
상처 받은 오늘, 어느 날 한 편 어떠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