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심리학 #123.]
공격성을 담은 성욕, 달라지는 성 관념에 대한 고찰을 소개합니다.
최근 텔레그램 'n번방' 핵심 운영자인 '박사' 용의자를 검거했다는 보도와 함께 n번방의 실체가 드러나 많은 이에게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거액의 돈을 주고 모인 모인 회원들이 합의 없이 유명인, 일반인, 미성년자에게 협박 등을 하여 성적인 영상을 촬영 후 공개하는 형식이었던 듯 합니다. 그 영상의 수위가 이루 말할 수 없이 끔찍하고 반인권적인 행위였기에 공분을 사고 있습니다. 처벌 국민청원이 등장하는 등 다시 한 번 성적인 문제로 한국이 떠들썩할 것 같습니다.
https://www.ytn.co.kr/_ln/0103_202003181710070328
The risk of sexual violence one assumes just by living while female is high.
Posted Feb 20, 2019 Noam Shpancer Ph.D.
(제목이 다소 공격적입니다. 내용의 분량 또한 상당합니다. 내용을 곡해하지 않도록 세심한 리딩 권장드립니다. + 앞으로 오늘의 심리학은 네모 박스에선 저널의 내용을 소개하고 이후 저의 생각을 첨부하는 형식으로 변경하도록 하겠습니다..)
- CDC에 따르면 미국 여성 3명 중 1명은 삶의 어느 때에 원치않는 신체적 접촉과 관련된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한다.
- 성폭력의 가해자는 압도적으로 남성이다. 남성들은 왜 성폭력하는가?
저는 잠재적 가해자라는 말이 무척 잘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성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마찬가지입니다. 범죄는 행위입니다. 행위가 아니라 정서, 생각,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사생활 수준에 있는 것까지 범죄로 규정짓는다면 그건 절제가 아닌 억제입니다.
그러니 당연한 말입니다만 모든 남성이 성범죄자인 건 아닙니다. 즉, 남성을 모두 잠재적 가해자로 규정짓는 건 굉장한 폭력입니다. 허나 객관적인 통계로 볼 때 여성보다 남성 성범죄자가 압도적인 수준으로 높습니다. 왜 남성이 더 성폭력과 가까운 곳에 존재하는 걸까요?
* 생물학적 이유
- 평균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크고 강하며 여성을 물리적으로 제압할 수 있다.
- 섹스와 폭력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심리학적으로도 욕과 성(ex: Fuck You)은 연결지어지는 경우가 많다.
- 성욕과 폭력 둘 다 테스토스테론, 세로토닌과 연결되어 자율신경계를 흥분시킨다.
- 캘리포니아 공과대학의 David Anderson과 NYU의 신경과학 연구소 Dayu Lin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수컷 설치류는 공격성과 교미를 위한 뇌 회로가 상당히 중복되었다고 한다.
- 지배와 폭력 행위가 수컷이 자신의 짝을 유혹하고 보호하는 방법이었던 진화적 맥락도 무시할 수 없다.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다릅니다. 차별이 아니라 '차이'의 영역이죠. 그 중에서도 엄연히 나뉘는 부분이 남성호르몬, 여성호르몬이라 불리는 성호르몬입니다. 테스토스테론은 남성을 육체적으로 더욱 남성처럼 만듭니다. 분비량이 여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습니다. 그리고 성적인 욕구와 그 빈도가 테스토스테론과 연결 되어 있기에 남성은 상대적으로 더욱 공격적입니다. 본 저널에 따르면 남성의 성욕과 폭력성의 기재가 상당수 중복되었다고 말합니다.
고도화된 지식 산업 사회가 되기 이전, 약육강식의 역사 속에 '힘'은 생존에 있어 필수적인 요소였습니다. 즉, 물리적인 '힘'을 선천적으로 지니고 있는 남성들의 기준에 따라 사회의 규범과 권력이 흘렀습니다. 공격성을 완곡하게 표현하기 위해 스포츠를 만든 것처럼, 남성의 성욕에 관대해졌던 게 아닐까요? 권력자의 본능은 유희가 되어 세상 앞에 나타나 법이니까요.
텔레그램 'n번방' 같은 현상이 계속 일어나는 이유는 공격적이고 가학적인 요소가 성적인 흥분으로 이어지는 생물학적 맥락에 성적인 맥락에서 여성을 같은 인간이 아닌 도구로써 취급하면서 나타나는 저열한 사건이라고 볼 수 있겠네요.
* 사회학적 이유
- 생물학은 우리가 먹을 수 있는 것을 지시하나, 그것을 먹을지 결정하는 건 사회학이 맡는다.
- 남성의 지배력과 폭력 행위가 사회 질서를 이끌도록 허용하는 국가일수록 여성에 대한 불평등, 성폭력의 수준이 높다.
- 캐나다의 Karl Hanson 과 Kelly Morton-Bourgon 의 연구에 따르면 재범을 일으키는 성범죄자들은 공통적으로 강한 반사회적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 그러나 병적 기준을 채우지 않는 (이른바 평범한) 많은 남성들이 성문제를 일으킨다.
- 이런 가해자들은 사회 문맥상의 규범에 폭력이 깃들었기 때문일 수 있다.
- 사회는 개인에게 힘과 정체성을 부여한다. 이는 삶의 도구와 규칙을 제공하기도 한다.
그러나 무작정 생물학적 남성들의 본능이다! 라고 일축할 수 없습니다. 그 시작은 생물학일지라도 우린 사회망을 만들고 그 안에 살아가는 '사회적 존재'입니다. 지성을 바탕으로 지혜로운 선택을 해나가는 것! 고지능 생물로써의 혜택입니다. 실제로 사회적 제도나 질서가 성욕, 폭력에 대해 관대할 때 여성 차별이 등장합니다.
성에 대한 차이는 본능이 만듭니다. 그렇지만 이 성을 어떻게 바라보는 지는 사회적 규범이 만듭니다.
우리나라는 어떤가요? "자고로 남자는~", "자고로 여자는~" 식의 고정적 성역할이 은연 중에 즐비합니다. 남자는 여자를 지켜야 돼. 남자는 울면 안 돼. 꼬집고 깨무는 건 여자들 싸움이야. 이런 생각 모두 사회가 만든 남녀고정관념의 일환입니다.
강력 성범죄를 저지르고, 이후 재범까지 하는 이들은 잘못된 인식과 더불어 성격장애를 지니고 있는,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대상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 질환이 있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이 성에 대한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 우리의 행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사회적 각본과 집단의 압력이다.
- 사회적 각본이란 특정 환경에서 예상 가능한, 문화적으로 습득한 지식이다. 오랜 기간 여성의 역할은 동의, 남성의 역할은 쟁취였다.
- 이런 각본은 여성을 성행위에 수동적인, 남성을 행위해야 하는(나아가 잠재적인 가해자)로 규정한다.
- 사회적 각본을 내면화한 사람들은 그것을 위반하는 것을 싫어하며 위반자를 탓한다.
- 섹스의 시작이 전희, 끝이 성교라는 것도 각본이 될 수 있다. 이 경우 도중에 멈추는 건 거부, 죄책감, 무능력함을 느끼게 한다.
미국의 정신의학자 에릭 번(Eric berne)은 교류분석이라는 상담 기법을 내놓았습니다. 그 개념 중 '각본'이라는 게 있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신의 인생을 '각본'으로 써놓고 무의식적으로 그 각본대로 흘러가도록 살아갑니다. 사회적 각본은 남자와 여자의 고정적 성역할을 은연 중에 공고히 함으로써 남자가 남자답게, 여자가 여자답게 살도록 종용합니다.
만약 사회적 각본이 남자와 여자를 반대로 놓았다고 여자가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거라 반박하시는 분이 계실 겁니다. 극단적인 페미니스트들은 현 사회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규칙이 '권력자인 남성을 위해' 만들어졌고, 그에 세뇌당하고 있는 거라 얘기합니다만,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사회적 각본이 생물학적 차이를 뛰어넘을 순 없습니다. 그러나 대개 생물학적 차이를 관통하는 내용으로 만들어집니다.
사회적 편견을 만들어서 남자가 권력을 잡은 게 아닙니다. 남성의 권력이 자연스레 사회적 편견을 만들었을 뿐이에요.
섹스의 시작이 남성의 사정인 것도 하나의 프레임이 될 수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시간의 순서는 이럴 것입니다.
생물학적 성의 차이 -> 남성의 기능이 당시 생존에 더 유리
-> 남성이 권력을 갖게 됨 -> 권력에 따라 남성의 특성들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회적 문화가 생김
-> 사회적 문화가 집단의 규범이 됨 -> 집단의 규범이 사회적 각본이 되어 개개인의 가치관에 영향을 줌.
-> 현재 사회와 그 구성원
- 집단의 압력도 무시할 수 없다. 남성들에게 성을 허용하고 몰아붙이는 문화적 압력이 있다.
- 남성의 성역할, 여성의 성역할이 고정될수록 그러하다.
- 남성을 노동과 생산의 도구로 보는 시선은 남성의 인간성을 박탈한다.
- 여성 역시 성적 해소를 위한 물건이 아니다. 여성이 성적 매력을 어필하는 건 자신의 매력 발산이지,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 아닐 수 있다.
즉, 지금의 사회가 과거에 비해 큰 혼란을 빚는 건 그 땐 맞았던 게 지금은 틀리기 때문입니다. '힘'은 현대 사회에 필수적인 생존 요소가 아닙니다. 오히려 지성, 사회성, 표현력, 전달력, 수완, 창의성 등 고차원적인 게 더 중요합니다. 혹은 '돈'이라는 물질적인 게 더 중요하게 작용합니다. 이런 사회 속에서 우린 현 사회에 부응하는 새로운 가치관을 적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성의 생물학적 우월성 중 생존에 능력들이 그 비중을 넓혀가며 비로소 우린 사회적으로나 생물적으로나 어느 한 성별의 손을 들어줄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바꿔가는 겁니다. 지금까지의 사회적 각본을, 규범을, 나아가서 가치관을
- 성폭력 문제를 "남성 VS 여성" 문제로 모함하는 것도 문제 해결을 방해한다.
- 성폭력이 성욕의 문제라고 보는 관점, 성폭력이 권력의 문제라고 보는 관점 모두 불완전하고 정치화된 견해이다.
- 성폭력이 단순 권력의 문제라면 유독 젊은 여성 강간률이 높은 것을 설명할 수 없다.
- 성폭력은 단순한 "어느 쪽"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이것과 저것"의 문제이다.
- 단순한 해석으로 어느 한 쪽을 매도, 억압시키는 건 도리어 갈등을 빚는다.
이렇게 성은 복합적입니다. 성 자체로써 욕구도 있지만, 권력과 능력의 입증이라는 사회적으로 자란 통념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젠더 갈등'의 사회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남성과 여성의 생물학적 차이를 인정하고 통계적인 경향성을 받아들임과 동시에 하나의 인간으로써 기회와 권리의 평등을 보장하자는 관점이 중간 지점이라고 볼 때, 남성의 생물학적 특성을 배재하고 사회적인 관점만을 강조하는 극단이 있습니다. 사회적 각본의 어두운 면에 있었던 여성들의 차별, 성폭력을 배재한 채, 남성의 생물학적 본능만 내세우는 극단도 존재합니다.
서로 같은 주제 같지만 실상을 뜯어보면 정 반대의 가정이기에 논의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어느 하나가 문제다!' 라는 관점은 완전하지도 않을 뿐더러 자기 집단의 이익을 도모하는 정치화된 이익 집단입니다.
사회적인 관점만을 강조하는 건 남성의 성을 넘어 기존 남성들이 가지고 있었던 공격성을 앗아가고자 하는 욕구를 저변에 두고 있습니다. 이들이 원하는 건 평등이 아닌 자신들의 우위와 권력입니다. 극단들의 싸움이 항상 논의가 아닌 개싸움이 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건설적인 결론을 내고자 할 때 우린 토론을 합니다. 그러나 누군가에게서 무언가를 앗아가고, 지키려는 자존심 싸움을 할 때 우린 전쟁을 합니다. 비기는 건 없죠. 이기는 사람이 이기고 지는 사람은 죽을 뿐.
- 성범죄에 대한 사회적 변화를 이룰 첫번째 방법은 하향식 전략(즉, 법 제정)이다.
- 이는 효과적이다. 즉각적인 행동을 억제하는 억제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 그러나 억제는 암시장을 활성화시킨다.
- 또, 법은 법을 어긴 자를 처벌할 뿐 법을 따르는 자에게 보상을 주지 않는다.
- 또한 성적 상호작용은 미묘하고 주관적이기에 본질적으로 어렵다.
- 새로운 용어, 새로운 사회적 각본, 성역할의 탈피, 궁극적으로 새로운 사회적 의식을 만들기 위한 행동과 대화. 즉, 상향식 접근법이 필요하다.
- 미투 운동 등은 당장 법률 제정의 움직임으로 시작하겠지만, 그 한계를 인정하며 사회 의식 등을 바꿀 것이다.
- 상상하기 힘든 많은 것들이 결국 법과 사회 의식의 변화 속에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게 된다.
행동심리학자인 스키너는 처벌을 통한 학습 능력을 여러 번 실험한 결과, 처벌은 책임을 피하기 위한 면피성 행동을 늘릴 뿐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긍정적 효과를 내지 못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법을 신설하고, 법 조항을 바꾸고, 애매함을 세부 조항으로 기워서 처벌망을 촘촘히 하면 성과 관련된 문제가 사라질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린 이제 성에 대해 갖고 있던 감정, 생각, 행동, 규범, 윤리, 관례 등을 모두 내려놓고 제로에서 시작해야 할 때입니다. 인간의 본능은 무엇이든 축복입니다. 마냥 나쁘기만 한 욕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인간을 이롭게 하고, 개인을 지키고자 발동하는 거니까요.
지금은 혼란한 때입니다. 인류 전체의 진일보를 방해하는 극단 집단, 이익 집단, 정치 집단 등이 옷을 바꿔입고, 가면을 쓰고 서로의 갈등을 부추깁니다. 이 흐름 안에 눈이 먼다면 우리 손에 잡히는 건 다른 이의 따스한 손이 아닌 서로의 멱살이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은 있어요. 수만번 돌아갔지만 결국 바른 길로 도착했던 우리들의 저력을 믿으니까요.
* 반디심리연구소 관련 프로그램
https://blog.naver.com/3fbaksghkrk/2215581048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