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소리의 형태>를 통해 보는, 학교폭력의 상처와 치유.
오늘 볼 영화는
<목소리의 형태, 聲の形, A Silent Voice : The Movie, 2016> 입니다.
본 리뷰에는 스토리에 대한 전반적인 네타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혹시 불편하신 분은 페이지를 뒤로 눌러주시기 바랍니다.^^
※ 형아쌤의 반짝 평점
참신성 : ★★☆☆☆
(흔치는 않지만 일상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몰입도 : ★★★★☆
(어떻게 끝나게 될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되는 영화였어요. 이미 원작을 본 상태여서 더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메시지 : ★★☆☆☆
(메시지는 사실... 뭘 얘기하고 싶은 건지 파악하기 힘듭니다. 한 개인의 상처와 그 극복과정...?)
심리 : ★★★☆☆
(심리는 단순합니다. 충분히 복잡하게도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 아쉬운 부분이에요.)
전체 : ★★★☆☆
(기대하고 봐서 그런지 아쉬움이 더 많은 영화였습니다.)
저는 목소리의 형태라는 단편 만화를 예전에 봤던 적이 있어요. 너무 마음에 드는 내용이라 제 블로그에 스크랩도 해놨었는데, 이렇게 영화화까지 된다고 하니 매우 반가웠습니다.
대략의 줄거리를 살펴보자면
-----------------------------------
나는 네가 정말 싫었다.
너를 다시 만나기 전까진…
따분한 게 질색인 아이, 이시다 쇼야.
간디가 어떤 사람인지, 인류의 진화과정이라든지, 알게뭐람.
어느 날 쇼야의 따분함을 앗아갈 전학생이 나타났다. 니시미야 쇼코. 그 아이는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한다.
쇼야의 짓궂은 장난에도 늘, 생글생글 웃고만 있다. 짜증난다.
그의 괴롭힘에 쇼코는 결국 전학을 갔고, 이시다 쇼야는 외톨이가 되었다.
6년 후, 더 이상 이렇게 살아봐야 의미가 없음을 느낀 쇼야는 마지막으로 쇼코를 찾아간다.
처음으로 전해진 두 사람의 목소리. 두 사람의 만남이 교실을, 학교를,
그리고 쇼야의 인생, 쇼코의 인생을 바꾸기 시작한다.
------------------------------------
형아쌤이 이미 단편으로 봐서 알고 있었던 작품!
근데 영화로 나왔다고? 싶어서 깜짝 놀라 보게된 작품!
목소리의 형태! 시작합니다!
1. 학교 폭력, 한 스푼
이 영화에 대해선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아니나다를까 역시인 것 같더군요. 그리고 그 이유는 ‘폭력 가해자들을 정당화하는’ 느낌의 영화라는 것이었습니다.
쇼코는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청각 장애를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쇼코가 학교 폭력을 당하는 것은 아닙니다. 장애가 있는만큼 아이들도 더욱 관심을 주고 어울리려 하죠. 하지만 쇼코에 의해 실제적인 피해를 하나둘 입게 되면서 아이들의 생각은 바뀝니다. 그리고 그 괴롭힘의 선봉에 쇼야가 있죠.
이들이 학교 폭력을 하는 이유는 ‘자기 세상이 무너지는 것이 짜증나서’입니다. 말을 잘 듣지 못 하고, 목소리가 이상한 쇼코 때문에 학교 수업을 놓치고, 가창 시험을 망치는 등의 일은 선의를 학교폭력으로 변모시키죠.
사람과 사람이 사귀는데 있어서 가장 필요한 것이 뭐라 생각하시나요? 형아쌤은 성격도, 기질도, 환경도 아닌 존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상대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맞지 않는 부분을 인정하는 것은 존중이 기반으로 깔려 있지 않은 이상 불가능하죠. 서로 맞게끔 맞춰가는 것이 아니라 맞지 않은 부분을 서로 인정하면서 가는 것. 그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2. 합리화라는 독, 한 스푼.
어떤 마음으로 친구를 괴롭히게 되는 걸까요? 재밌어서, 만만해보여서 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대지만 대다수의 가해자가 말하는 이유는 ‘쟤가 먼저 이러이러한 짓을 했다.’ 는 겁니다. 아무리 사소한 꼬투리라도 잡아서 그걸 빌미로 가해를 시작한다는 건데요. 그 이유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양심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양심이라는 건 마음의 눈과 같아서 마음을 더럽히는 것들 앞에서 찝찝하고 개운치 않은 느낌을 주게 됩니다. 그런데 양심을 개운하게 하는 방법은 더럽고 찝찝한 것을 없애는 방법 말고 다른 것이 있어요. 그게 바로 ‘눈을 가리는 것’입니다. 도리어 ‘나쁜 것을 벌준다.’는 느낌의 합리화는 학교 폭력을 정의의 실현으로 인식하게 하기도 하죠.
학교에는 이런 경우가 될 테고요. 가정에서는 ‘훈육’을 빙자한 가정 폭력이 될 수 있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쇼야가 교내 공인 가해자가 되면서 자연스레 쇼야는 학교폭력 가해자에서 피해자가 되어버립니다. 쇼코를 괴롭히는 것에 동조했다는 죄책감의 눈을 가리고, 쇼코를 가장 많이 괴롭힌 쇼지를 벌주자 라는 합리화를 한 것이죠.
이에 쇼지는 큰 상처를 받고, 그 때부터 사람 대 사람 간의 만남을 하지 못 하게 됩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의 얼굴에 X표시를 하고 있는 본 영화의 독특한 연출은 쇼지의 마음 상태를 반영한 상태로 흘러가게 되지요.
3. 필요한 사람, 한 스푼.
쇼지가 그렇게 쇼코를 괴롭힘에도 불구하고 쇼코는 쇼지를 미워하지 않습니다. 이 부분이 초반에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요. 쇼코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이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쇼코는 애당초 자기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는 아이입니다. 밝은 얼굴을 하고, 항상 웃고, 당당하게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지독히 외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쇼지가 자신에 대한 욕이 적힌 칠판을 지워주는 순간, 쇼코는 필요 이상의 감동을 한 것이지요.
쇼코는 그렇게나 맑은 사람이고 그래서 상처도 잘 받습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해가 되는 존재라는 것, 자기 옆에 있으면 불행해질 거라는 마음은 서글프고 감당하기 힘든 마음입니다. 작품 종반에 쇼코가 했던 선택이 그간 쇼코가 가졌던 마음의 짐을 표현해낸 것이라 생각되는데요.
개인적으로는 마음에 들지 않는 전개였지만... 시사점은 짚고 넘어가보죠.
살면서 나 자신에 대한 무가치함을 느끼는 경우가 있죠. 여러분에겐 그런 경우가 어떤 때인가요? 나는 실수투성이에다, 잘 하는 것 하나도 없고, 도움도 안 되고, 나를 좋아해주는 사람도 없을 것만 같은 기분. 그래서 앞으로 살아가는 것이 벅찬 기대보다 막막하고 암울한 기분만 들 때, 우리는 ‘희망이 없다.’ 고 표현합니다.
내게 초점이 맞춰져 있는 이런 상황에서 시야가 좁아지는 것은 당연해요. 나를 힘나게 하는 것보다 힘들게 하는 것만 보이는 것 역시 당연하죠.
그러니 혹시 쇼코같은 마음을 갖고 계시는 분이 주변에 있으시다면 쇼야처럼 답답하게 표현하지 말고! 꼭! 깔끔하고 당당하게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난 네가 살았으면 좋겠다고. 넌 나에게 매우 소중한 존재라고요.
아, 만약 여러분이 쇼코와 같은 마음을 갖고 계시다면 제가 말해드릴게요. 당신은 소중한 존재라고요.
목소리의 형태는 상처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람에게 받은 상처를 사람을 통해 다시 치유받는 작품이죠.
그 과정에는 마냥 긍정적인 사람도, 마냥 부정적인 사람도 없습니다. 어느 정도 양보하고, 이해하고, 소중함을 깨닫는 거죠.
그 밀고 당김을 지켜보고 싶은 분들이라면 오늘 목소리의 형태 한 편 어떠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