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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또 카운트 다운

단편 소설

“좆같네. 진짜..”


로또 용지를 찢어 던졌다. 이미 주위엔 아까 찢긴 18장의 로또가 나뒹굴었다. 남은 용지는 하나. 이 한 장의 종이로 내 수명이 결정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살아보거나, 아니면 죽거나.


나는 일본어 강사다. 삼촌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다양한 만화책과 애니를 볼 수 있었다. 삼촌은 번역본을 기다리지 못 하는 급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덕분에 삼촌 방의 만화 대부분은 일본어 원본이었다. 어릴 때는 그림 보는 재미로 보았으나 나이가 들며 그 내용이 궁금했고, 자연스레 일어 공부를 하게 되었다. 

다행히 난 언어 영역에 특출난 재능이 있었다. 처음엔 애한테 만화만 보여준다며 은근히 도련님을 싫어하던 우리 엄마도 내가 일어를 유창하게 하니 간섭을 그만 두었다. 그렇게 삼촌 방의 책 전부를 섭렵할 때 내 나이가 12살이었다.


흥미와 재능을 어린 나이에 발견했으니 당연히 진로도 그 쪽으로 정해졌다. 일어학과를 나왔고, 과탑을 유지했다. 교수님은 애정 어린 눈으로 내게 대학원 진학을 권유하셨고, 나는 수락했다. 어리석게도.

나는 가르치는 데에 일가견이 있었다. 대학교 학비도 과외비로 충당했을 정도이다. 석사까지 나왔지만, 결국 갈만한 곳은 과외, 학원 강사, 번역이었다. 이럴 거면 석사 왜 나왔을까... 하는 후회를 하며 졸업 이후에도 과외를 지속했다.


미래에 대한 포부? 그런 거 없었다. 그냥 무탈하게 별 일 없이 평범하게 사는 것.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였다. 입소문을 탄 과외로 인해 적당히 생계도 꾸려갈 수 있었으니 불안, 불만 이런 건 나와 거리가 멀었다.


내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문제는 일본에 있는 멍청이한테 있었다.

지금까지도 여러 병크를 터트리던 일본 총리 자식이 결국 외교 분쟁을 만들었다. 곳곳에서 No재팬 운동이 펼쳐졌다. 처음에는 ‘일본 저 놈들은 대체 언제쯤 조용해질까?’ 하며 혀를 끌끌 차는 정도의 문제였으나, 분쟁이 장기화되며 그 피해가 고스란히 내게 돌아왔다.


“이 시국에 일어 공부하기가 좀 그렇네요. 앞으로 경쟁력도 없어질 것 같고요. 죄송해요. 선생님.”


과외 하는 학생의 학부모에게 온 문자이다.

다른 형태이나 같은 내용의 문자가 하나둘 오기 시작했다. 나는 웃음 이모티콘을 쓰며 다음을 기약하는 문자를 보냈으나, 입으론 아베 개새끼를 외쳤다. 과외길이 끊기니 생활 유지하기가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난 한 일본어 학원 강사 모집에 응시했다. 다행일까? 결과는 합격이었다.


그리고 합격 통보를 받은 일주일 후 코로나19 뉴스를 접했다. 처음에는 “중국 저 놈들도 문제구만. 어째 우리는 위아래로 또라이들만 있어?” 하며 팔짱 + 도리도리 정도의 문제였으나, 신천지가 병크를 일으켰다. 역시나 그 피해가 고스란히 내게 돌아왔다.

 학원이 정상 운영을 할 수 없게 되자, 학원장이 내게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다.

 아직 계약서를 쓰기 전이었고, 학원 사정도 익히 알기에 알겠다고 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이제 어떻게 살아야지? 분명 내 30대는 창창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좌표 없는 하소연을 허공에 날리며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이게 이렇게 길게 이어질 거라곤 생각하지 못 했다. 점점 통장의 잔고는 떨어져갔다. 생전 해본 적 없는 막노동과 배달 알바를 검색하기에 이르렀다.


 광복절을 기점으로 최악의 집단 감염이 터지며, 올해 내로 괜찮아지기는 틀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난 주어진 대로 성실히 살았을 뿐인데, 점점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일본 총리가, 중국이, 사이비 종교가, 생각 없는 일부 청년이, 공감 못 하는 엉터리 애국자들이 자기 주장에 열 올릴 동안, 난 2평 남짓 원룸에서 쌀 떨어지는 걸 걱정하게 되었다.


 화보단 막막함이 들었다. 대출 받아야 하나? 근데 그러면 빚 갚아야 하잖아. 빚 있으면 열심히 살아야 하잖아? 열심히 살려면 쫓겨야 하잖아? 난 그러고 싶지 않은데?


 딱히 치열하게 살아갈 욕심은 없었다. 마침 운 좋게 되어지는대로 살고 있었을 뿐.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그제야 몸이 움직였다. 내가 뭘 해야 하는지 알았다.


 그래서 산 게 로또다.

 몰랐는데 로또는 주 10만원이 한도더라. 20장의 로또를 자동 추첨으로 돌렸다. 목적은 간단했다. 신이란 게 정말 있다면, 그래서 내가 아직 살기를 바란다면, 한동안 열심히 버텨볼테니 그걸 알려주길 바랐다.

 규칙은 이러했다. 이 스무 장 로또 중에 하나라도 당첨되면 열심히 살아보는 거고, 그렇지 않으면 미련 없이 죽는다. 물론 여기에서 당첨은 5등도 포함이다. 번호 여섯 개 중에 3개만 맞아도 나는 산다. 주변에도 5등 당첨은 이따금 있었으니 이 정도면 모티베이션으로 충분하겠다는 생각. 이 정도면 설마 죽겠어? 하는 마음도 솔직히 있었다. 그게 3일 전.


 19장을 확인할 동안 당첨이 없는 게 지금 상황이다. 첫 번째 로또를 확인할 때는 오락하는 느낌이었는데 막상 여기까지 오니 오히려 절망적이다. 그냥 운이 좋아서 지금까지 살았을 뿐, 신은 나를 지켜주지 않는구나. 헛웃음이 났다.


 원룸이 낮아서 떨어져 죽을 수 없는 높이이므로 죽는 방법은 연탄불로 정했다. 학원 합격 후 큰 맘 먹고 산 차를 이렇게 쓰게 될 줄이야. 인생이란 정말 아무도 모른다.


 아직 확인하지 않은 로또를 쳐다봤다. 긴장감을 위해 뒤집어 놓았기에 번호는 보이지 않았다. 만약 이게 당첨되지 않는다면 나는 어떻게 해야 할까? 또, 당첨이 된다면 어떻게 해야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5등이 나와도 그리 기쁠 것 같지 않았다. 이미 버림 받은 후라 그런가?


 ‘아, 1등 되고 싶다. 그러면 평생 아무 것도 안 하고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텐데.’


 이런 코웃음 칠 욕심이 들었다. 조금씩 진심이 되어가는 것 같아 고개를 저었다. 미친 놈아. 그럴 리가 없잖아. 에휴.


 그리고 용지를 뒤집었다. 이미 숫자는 다 외우고 있었기에 슬쩍 훑어보는 것만으로도 당첨 여부를 알 수 있었다. 당첨 숫자가 많이 적힌 용지구나 바로 보였다.

 어? 그런데 배열이 이상했다. 아는 숫자가 한 줄에 모여 있었다. 야, 이거 탈락은 아니구나. 어? 뭐야. 이거 5등도 넘겠는데? 정신이 또렷해졌다.


 결과는 1등이었다.


 “우왁!”


 나도 모르게 소리가 나온다는 게 이런 거구나. 단말마를 질렀다. 거듭 확인했으나, 1등이었다. 1등이 확실했다. 1등이었다! 내가 로또 1등에 당첨되었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어이 없게도 뼈해장국 사먹어야지였다. 생각해보니 오늘 한 끼도 안 먹었었다. 전국적으로 유명한 맛집이 동네 근처에 있으나 평소엔 비싸서 먹을 엄두를 못 내는 곳이었다. 그게 먹고 싶었다.

 로또를 놓고 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품에 지니고 있는 게 안전할 것 같았다. 잉크가 지워지지 않게 휴지로 꼬옥 감싼 후 카드 지갑에 넣었다. 시켜먹을까? 이런 생각도 했지만 꼭 나가서 사먹고 싶었다. 시간도 애매해서 안에 사람도 없을 거야. 코로나19여도 사람 엄청 많던데 지금은 없겠지?


 밖을 나서니 조금씩 실감이 되었다. 1등이다. 무려 로또 1등이다! 신은 나를 거하게 아끼는구나. 어떻게든 내가 살았으면 좋겠구나. 이 1등으로 뭐하지? 진짜 꿈 아닌가? 여러 생각이 쌓일수록 심장이 쿵쿵거렸다. 귀까지 뜨거워졌다.


 이러다 열 37.5도보다 높게 나와서 밥 못 먹는 거 아니야? 속으로 이런 농담까지 떠올리며 횡단보도를 건넜다. 빵빵 거리는 소리가 내 왼쪽에서 들렸고, 고개를 돌리니 트럭이 내게 가까워오고 있었고 거기에서 내 기억은 멈췄다.



 *


 웅성대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나뭇잎이 바스락거리는 거슬리는 소리였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키가 작고 거추장스러운 옷 차림의 사람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우스꽝스러운 코스프레였다. 내가 만화에서 보던 판타지 전사 같은 복장이네?


 일어나려 했지만 머리가 지끈거렸다. 다시 눕자,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더 심해졌다. 귀를 틀어막으려 손을 올리자 왠 여자가 다가왔다. 자기 키만한 모자를 쓴 사람이었다. 그녀는 주변 사람들과 바스락 소리를 내더니 이상한 유리병을 꺼냈다. 그리고 묻지도 않고 병을 내 입에 들이댔다.


 내가 고개를 돌리자, 주변에 있던 코스어(코스프레를 하는 사람) 두 명이 내 얼굴을 강제로 잡았다. 입을 닫았으나 여자가 내 코를 움켜 쥐었다. 숨이 막혀 입을 열었고, 곧장 병이 꽂혔다. 액체보단 젤리라고 하는 게 맞을 기분 나쁜 달달함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목젖이 꿀럭이는 걸 보고나서야 이들은 나를 놓아주었다.


 “씨발! 뭐야? 너희들? 뭐 하는 짓이야?”


 욕을 내뱉으며 입을 닦았다. 이런 건 토해내면 되지. 목에 손가락을 넣어 토하면...


 “진정하세요. 용사여. 당신과 대화를 해야 하기에 범한 무례를 용서하세요.”


 유튜브에서 들었으면 바로 구독 눌렀을 청초한 목소리가 들린 건 그 때였다.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기분 나쁜 바스락 소리가 사라져 있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인 곳이면 으레 들릴 법한 웅성거림이 가득할 뿐이었다.

 모자를 쓴 여자가 고개 숙여 내게 인사했다. 다리를 꼬고, 한 쪽 팔을 배에 대며 공손히 하였다. 이거 뭐야. 정말 무슨 상황이야?


 “당신은 혼돈에 빠진 이세계를 구해 줄 선택 받은 자입니다. 당신의 고유 스킬인 ‘91나로코’는 마왕군의 호흡 활동을 병들게 하여 서서히 죽어가도록 하는 능력입니다. 그 어떤 무력도 통하지 않는 저들을 체내부터 붕괴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당신이라는 이야기죠.”

 “...네?”

 “오직 당신만이 마왕군에게서 저희를 구할 수 있어요. 부탁드립니다.”

 “어.... 그러면 지금 여기가 진짜 이세계라는 거죠?”


 눈을 부비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한국에 있을 리 없는 호화로운 고딕 양식의 성. 자세히 보니 눈동자 색이 다른 우스꽝스러운 코스어, 죽기 직전 봤던 트럭까지... 아무래도 여긴 이세계인 듯 했다. 황당하게도.

 내게 말을 걸었던 여자는 간절한 눈으로 손을 모으고 있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희망에 부푼 자, 우는 자, 아직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자 등 다양했다. 뭐야? 진짠가?


 “그런데 저는 아무런 힘이 없어요. 도와달라고 하셔도 제가 어찌...”

 “걱정 마세요. 용사님은 아무 것도 안 하셔도 됩니다. 그냥 길가에 있는 슬라임 한 마리에게 ‘91나로코’ 스킬을 사용하시면 끝나요. 슬라임에서 시작한 91나로코는 조금씩 다른 몬스터에게로 병을 옮겨 결국 마왕성까지 들어가게 됩니다. 물론 선택 받은 용사이므로 마왕군을 무력으로 퇴치할 수 있는 패시브 스킬도 갖추고 계시지만 그런 위험한 일까진 부탁하지 않습니다.”

 “...그래요?”


 아무래도 전염병을 창궐하여 마왕군을 멸족시키는 게 나의 능력인가보다.


 “저희 왕궁의 뛰어난 점성술사가 계산해보니 마왕군 멸족까지 걸리는 시간은 용사님의 세계 기준으로 1년 5개월 27일입니다. 용사님께서 사망하실 경우 마왕군에서 백신을 소환할 수 있으니 용사님은 그저 왕궁 곳곳을 구경하시며 호화롭게 생활하시면 됩니다. 마왕이 쓰러지면 용사님을 원래 세계로 돌려보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1년 반만 여기 있으면 된다는 거죠? 아~ 그 정도는 할 수 있겠네요.”


 사기 아니야? 싶을 정도의 달달한 조건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주머니에 손을 넣었고,

 ‘투욱’

 느껴졌다. 카드 지갑이.


 아뿔싸.


 황급하게 지갑을 꺼냈다. 당연히 목표는 휴지말이였다. 휴지를 걷어내니 아까 보았던 로또 용지가 있었다. 


 “저... 방금 1년 6개월이라고 하셨죠?”

 “정확히는 1년 5개월 27일 14시간 23분입니다. 용사님.”

 “그럼 안 돼요!!”


 아까 로또 번호 검색하며 봤던 내용이 기억났다.

 로또는 당첨일을 기준으로 1년의 지급 기한을 가진다. 즉, 1년 후에 이 로또는 그저 종이 쪼가리일 뿐이다. 이런 미친!


 “전염병 말고 조금 더 빠르게 끝내는 방법 없어요? 1년 이내로요! 저 얼른 원래 세계로 돌아가야 한단 말이에요!”

 “네...? 물론 용사님께서 수련을 통해 강해지신다면 1년 내에 마왕군과 대적할 힘을 기를 수 있겠지만 그건 위험하기도 하고, 굳이 그렇게 하실 필요가...”

 “그렇게 하면 1년 내로 원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어요?”

 “어... 그렇겠죠? 용사님께서 마왕을 쓰러뜨리신다면...?”

 “알겠어요! 그러면 저 그렇게 할래요! 시간이 없어요. 혹시 무기나 방어구 좀 얻을 수 있을까요?”


 얼떨떨해하는 왕궁 사람들에게 다급히 장비를 챙겨나왔다.

 내 인생 최초로 목표라는 게 생기는 순간이었다. 

 ‘1년 내로 원래 세계에 돌아가기.’ 


 지금 이 순간에도 로또 지급 기한은 다가오고 있다. 지체할 시간 따위 없었다.

 이게 나의 마왕군 퇴치 첫 날의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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