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리 없는 철학자를 양성하는 이슈(2. 냄비 근성)

오른쪽 차선 #010.

4164756091_80f19ce3e2_z.jpg?type=w773

필자는 큰 노력 하지 않고 누군가를 친해지게 할 수 있다. 마법의 방법을 알고 있다. 그건 바로 공동의 적을 만드는 거다. 그 사람이 내놓고 싶은 불만과 욕을 적재적소에 신랄하게 표현한다면 금상첨화다. 영혼을 공유한 것 마냥 그와의 사이가 가까워 질 것이다. 물론, 공동의 적과는 멀어질 것이고.


김보름 선수, 왕따 논란, 국민청원


최근 마무리 된 평창 올림픽의 키워드는 무엇일까? 김연아와 드론과 인면조로 시작해서 윤성빈이 띄우다가 김보름이 끓어올리고 컬벤져스가 마무리 지었다고 본다. 그 중 김보름을 대상으로 한 일련의 움직임은 다른 의미로 대단했다. 전 국민이 이렇게 똘똘 뭉치는 건 다른 나라에서 볼 때는 놀라운 일이겠지.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참 익숙하고 질리는 장면이었다.

여자 팀추월 경기 예선에서 김보름 선수와 박지우 선수가 팀전인데도 불구하고 노선영 선수를 멀찌감치 떨어뜨려 놓은 채 본인들만 앞서가는 일이 생겼다. 여기까진 그냥 어이없는 경기 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모두의 심기를 거스른 게 있었으니 김보름 선수의 인터뷰 내용이 그것이었다. 인터뷰에서 김보름 선수는 노선영 선수가 자신들을 따라오지 못 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다소 어이없다는 듯 실소를 보였다.

IiIKZ1NpXIiWFaNq3-YBKrzrFBEE.jpg?type=w773


전 국민은 분노했다. 김보름 선수와 박지우 선수가 개인의 영달에 눈이 멀어 같은 동료인 노선영 선수를 버리고 본인들만 앞서 나갔다며 이들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하고, 올림픽 등의 국제 대회 출전 정지를 시켜야 한다는 여론이 등장했다. 곧 이어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고, 거의 하루 만에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동의를 넘었다. 최종 동의자는 60만명 이상이었다. 각종 커뮤니티엔 김보름 인터뷰 영상을 비롯한 수많은 비난 영상 및 게시글이 생성되었다.



물론 비난 받을만했다. 팀 경기에서 팀 플레이를 하지 않은 것은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엄연한 패착이다. 노선영 선수에 대한 빙상 연맹의 횡포, 김보름 선수가 받은 특혜, 빙상 연맹의 전반적인 적폐 사실 역시 비난 받아 마땅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보름 선수를 둘러싼 이 폭발적인(?) 반응은 정상적이지 않았다. 광기였다. 잊을 만하면 일어나는 집단 광기였다.


비난이 아닌 광기


비난 받을 일에 비난을 했는데 이게 왜 집단 광기냐고? 필자가 분석한 김보름 사건의 심리 흐름은 이러하다.

1) 어? 뭐야? 여자 팀추월 왜 한 명만 버리고 가...? (불편)

2) 헐, 인터뷰 하는 꼬라지 봐. 싸가지 없어. (예의 없음)

3) 뭐야? 노선영 선수가 언니야? 지금 가장 연장자를 왕따시킨 거야? 인성 쓰레기네. (연장자 공경 하지 않음)

4) 야. 알고 봤더니 노선영 선수 이번 올림픽 참가하는 거 자체가 엄청 힘들었대. 빙상 연맹이 갑질해가지고 그랬다는데? (피해자 사정 딱함)

5) 대박..;; 빙상 연맹 갑질 쩔어. 파면 팔수록 여긴 적폐 덩어리인데? (뒷 배경이 쓰레기임)

6) 이거 봐ㅋㅋ 빙상 연맹에서 김보름 뜨게 해주려고 연습도 따로 시키고 특혜 쩔었대. 인성만 쓰레기인 줄 알았더니 낙하산이었네. (금수저 & 낙하산)

7) 야, 욕해. 이딴 년이 국가대표라니 국가 망신이다. 도대체 우리나라에는 언제 정의가 꽃필까? (정의감)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자. 팀 경기에서 팀플레이를 하지 않은 것은 김보름 선수 혼자가 아니다. 박지우 선수도 같은 패착을 저질렀다. 그러나 비난의 중심이 된 것은 김보름 선수였다. 이를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IMiugn5NxZcvdQ_wWY6y8UYy1r60.jpg?type=w773


대다수의 비난 좌표는 팀 플레이를 하지 않고 팀 내 왕따를 시킨 그 인성이었다. 그러나 실상 그들의 심기를 건드린 건 싸가지 없는 인터뷰 태도와 실력 없는데 낙하산으로 올라온 금수저였기 때문이었다. 연장자 우대를 하지 않았고, 잘못을 반성하지 않았고, 말투가 싸가지 없었으며, 빽이 있어서 성공한 사람이 김보름 선수였다. 한국 사람들을 분노케 하는 모든 요소를 꾹꾹 눌러담은 듯한 사람이다.

평생을 운동에 매진한 사람에게 그 운동을 할 수 없게 하는 건 매우 커다란 형벌이다. 지금까지 쌓아놨던 모든 것을 무너뜨린다고 봐도 된다. 인생이 좌지우지 되는 큰일이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들어가는 데에 불과 하루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진위를 파악하고, 죄질의 경중함을 따지고 객관적으로 판단하기엔 충분치 않은 시간이었다.

IOBfQUMDkVLjlwv8Clny6ypCAuf8.jpg?type=w773

그래서일까? 필자는 김보름 사건이 자꾸만 과거 티아라 왕따 사건과 겹쳐보였다. 당시 최고의 인기 주가를 달리고 있던 티아라가 하루 아침에 망한 이유는 팀 내 불화가 밝혀지면서였다. 왕따 논란 후 결국 다양한 과거 영상에 ‘이것도 왕따 장면 아니냐.’ 하는 추측이 달라붙으며 티아라는 인성 쓰레기 그룹이 되었고 그대로 몰락했다.

없는 얘기를 지어내서 마녀사냥을 했다는 말이 아니다. 왕따, 필자가 봐도 그랬던 것 같다. 그러니 비난을 받을 수도 있고, 팬심이 떠날 수도 있다. 다만 그들이 분노하고 몰아쳤던 비난의 정도가 그들의 잘못만큼이었는가? 이렇게 묻는다면 나의 대답은 “글쎄요...” 다.

그들은 더욱 크게 분노했다. 아니, 분노할 곳이 생기니 마음 놓고 분노를 시작했다. 정의롭지 않은 일이 발견되었고, 그런 일에 분노를 하는 건 미덕이었다. 미덕! 남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예의범절! 예의도 지키면서 속 시원하게 비난도 할 수 있다니 이런 좋은 기회가 또 어디 있겠는가?


무분별한 분노는 변수를 만나면 도망을 간다.
0002895516_001_20180225193107933.jpg?type=w773

그러나 이번 김보름 사건은 예상 외의 변수가 발생한다. 팀추월 7,8위 결정전에서 팀이 나란히 주행을 하자 기록이 매우 안 좋았다는 것이 첫째요, 김보름 선수가 은메달을 따낸 게 두 번째다. 은메달 리스트를 실력 부족으로 욕할 수 없다. 즉, 비난의 중요한 부분이었던 ‘낙하산’ 부분이 애매해졌다. 게다가 은메달을 따고도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하더니, 결국 신경정신과에 입원까지 했다고 한다. 이거 참... 더 이상 뭐라고 하기가 애매해진 것이다. 한참을 끓던 냄비의 불씨들은 불타오르기 모호해진 상황 속에서 그냥 입 씻고 사라진다. 요, 욕 먹을만 했잖아? 라면서.

민감한 예시지만 故조민기 배우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창 욕하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나니 입 씻고 사라진다. 욕하기 애매해진 것이다. 다수가 사라진 빈 공간엔 깊은 생채기만 남아있다. 그들은 잘못에 대해 비난하기에 앞서 비난할 대상에 대해 광분했다. 그러니 가치 판단도 제대로 잡히지 않고 무작정 분노를 뿌렸던 것이다. 죄와 사람 간의 분리가 안 되니 ‘죽은 사람한테 더 욕하기가 모해졌어...’ 하며 애매해진 것이다. 죄는 철저하게 비판하고, 별개로 죽음에 대해서는 안타까워 할 수도 있는 거다.

자, 집단이 광기처럼 일으킨 이 비난 여론이 정말 피해자에게 깊이 공감하고 그를 보호해주기 위한 이타성을 기반으로 움직였는가? 마냥 가해자를 비난하고 욕하기 위해서 움직였는가? 결국 그들의 정의감에는 자신의 묵은 분노를 해소하기 위한 이기적인 목적이 다분했다.


대상의 잘못이 아닌 자신의 감정을 쏟아내는 무분별함


한국은 감정 표현이 매우 약한 나라다. 참고 견디고 삼키고 눈치 보는 게 미덕인 나라다. 우리나라에 냄비 근성이 왜 이렇게 많냐고? 어디 하나 걸리기만 해봐라 하며 벼르고 있기 때문이다. 쉽게 풀어내지 못 할 감정 보따리를 꾸깃꾸깃 여며가며.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얘기가 있다. 힘든 말이다. 솔직히 죄가 미우면 사람도 미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그 죄만큼 미워해야지, 죄 하나 때문에 그 사람 전체를 미워하면 안 된다. 그랬다간 미움을 받아내는 사람도 괜스레 억울한 게 생긴다.

37807087764_5f0c8508ff_b.jpg?type=w773

건강한 가치관을 바탕으로 생각하고, 분별해야 한다. 그래서 김보름 선수가 은메달을 땄다고, 또 신경정신과에 입원을 했다고, 입 씻고 숨어버리기 보다는 “빙상 연맹 적폐의 수혜를 얻었고, 팀 경기에 적합하지 않은 모습을 보인 건 잘못이다. 이에 대한 책임을 져라. 인터뷰 태도가 불량했던 게 철이 없고 아직 뭘 잘 몰라서 그랬던 거라면 스스로 뉘우치고 반성을 했으면 한다. 그간 노력해서 은메달 딴 거 매우 축하한다. 죄송한 은메달은 없다. 자랑스러운 은메달이다.” 라고 뚝심 있게 반응했으면 좋겠다.
오히려 “넌 인성 쓰레기네. 뭘 하더라도 넌 욕 먹어야 싼 년이야.” 보다 이 쪽이 더 엄격하고 엄중하지 않은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미투 운동,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덜컹대는 열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