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부러진 등(20화)

새들이 점령한 나라

by 씨킴


구부러진 등



저들은 가슴을 펴고 살라 하지만

나는 하도 고개를 수그리고 살아서

등이 휘었다.


누군가는 내게

곧 별이 되어 돌아올 거라 말하지만

여태 의지가지없이 살아온 나는

자존심마저 구부러졌다.


사람은 죽어서 밤하늘의 별이 된다는

어느 성현의 말씀이 와닿는 이 밤에,

세상은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주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그래도

살만한 곳.


이런 나를 보고

그들 모두는 펑펑 울음을 터뜨렸다.

아주 가까이에 자리 잡은 내 별도,

구부러진 등을 보고는

가끔씩 하늘을 쳐다보며 살라 하지만

그 재회가 믿기지 않았으므로 나는

눈물조차 흐르지 않았다.


다만,

저 밤하늘 어딘가에 있을 한 사람에게는

이 시를 꼭 들려주고 싶다.

나는 지금까지 너의 시인이었다는 것과

너를 향한 나의 영혼이 처음으로 위대했다는 것을!

















[새들이 점령한 나라]


​사람들은 그곳을 '새들이 점령한 나라'라고 불렀다. 산 자의 땅과 죽은 자의 하늘 사이, 그 경계에 놓인 거대한 숲. 그곳은 먼저 떠난 이들이 별이 되기 전, 잠시 새의 몸을 빌려 머무는 곳이라는 전설이 있었다.

​노인은 오늘도 구부러진 등을 한껏 웅크린 채 숲의 입구에 서 있었다. 평생을 고개 숙여 살아온 탓에 그의 척추는 낫처럼 휘어 있었고, 그 굽은 등 위로는 세월의 무게와 자존심의 파편들이 얹혀 있었다. 사람들은 그에게 "이제 그만 가슴을 펴고 남은 생을 즐기라"고 했지만, 노인에게 세상은 단 한 사람, 아내가 떠난 뒤로 그저 견뎌야 할 긴 터널일 뿐이었다.


​"사람은 죽어서 별이 된다는데, 당신은 왜 아직도 새의 목소리로만 나를 부르는지."


​노인이 힘겹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성현의 말대로라면 그녀는 저 높은 밤하늘의 빛나는 별이어야 했다. 하지만 노인의 곁을 맴도는 것은 화려한 별빛이 아니라, 이름 모를 새 한 마리였다.

​그 새는 노인의 굽은 등을 볼 때마다 슬픈 울음을 터뜨렸다. 그 울음소리는 마치 "제발 하늘 좀 보고 살아요"라는 아내의 잔소리 같기도 했고, "왜 당신은 눈물조차 흘리지 않느냐"는 책망 같기도 했다.

사실 노인은 울지 않은 것이 아니라, 울 수 없었다. 그녀와의 재회가 너무나 비현실적이라 눈물샘마저 구부러져 버린 듯했다. 하지만 노인은 알고 있었다. 세상은 이유 없이 나를 좋아해 준 단 한 사람, 그녀가 있었기에 살만했다는 것을.

​노인은 품 안에서 낡은 종이 한 장을 꺼냈다. 생전 그녀에게 다 전하지 못했던 고백이 적힌 시였다.


​"나는 지금까지 너의 시인이었다는 것과, 너를 향한 나의 영혼이 처음으로 위대했다는 것을!"


​노인이 시를 읊조리자, 숲을 점령하고 있던 수만 마리의 새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 그 거대한 날갯짓은 마치 굽어 있던 노인의 등을 어루만지는 손길 같았다. 비로소 노인의 눈에서 마른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그날 밤, '새들이 점령한 나라' 위로 아주 낮게 떠 있던 별 하나가 유난히 밝게 빛났다. 그 별은 더 이상 구부러진 등을 가진 노인을 슬퍼하지 않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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