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퇴장
아침
평온한 아침이 왔다.
전쟁이 지나간 것도 아닌데
아침이라는 포문에 기대어
노크를 하는 순간,
이 세상은 어쩜 그리도 상냥할까요?
삶의 짐 벗어 놓으려니
이름 모를 새들 지저귀고,
설레는 맘으로 아침을 맞이할 수 있게
어쩜 이 세상은
제게 그런 기회를 다시 주시는 걸까요?
평온한 아침이 왔다.
평화가 지속된 것도 아닌데
떠나려는 사람에게는 작별하지 않게
어쩜 이 세상은
아침마다 그런 호사를 다 베푸는 걸까요?
전장이든 신개지든
저에게 내려 주신 감사한 마음으로
모두를 배웅할 수 있는
이 세상은 어쩜,
이제서야 오롯이 평온한 아침이 왔다!
[찬란한 퇴장]
눈을 떴을 때, 방 안을 채운 것은 기적 같은 정적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내 삶은 비릿한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전장이었다. 누군가와 싸워 이겨야 했고, 치인 상처를 부여잡고 울분을 삼켜야 했던 전쟁터. 하지만 오늘, 이 세상은 언제 그런 일이 있었느냐는 듯 태연하고도 상냥하게 내 방문을 노크한다.
"아아, 이토록 평온하다니."
전쟁이 끝난 선언문이 도착한 것도 아닌데, 아침이라는 포문(砲門)은 더 이상 포탄을 쏘아 올리지 않는다. 대신 그 구멍을 통해 쏟아지는 것은 눈부신 햇살과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였다.
나는 오랫동안 어깨를 짓누르던 삶의 짐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한때는 그 짐이 내 전부인 줄 알았으나, 설레는 마음으로 창을 열자 세상은 내게 다시 시작할 기회를 아무런 조건 없이 베풀고 있었다. 어제 내가 품었던 시커먼 울분조차 부끄러워질 만큼, 세상은 지나치게 다정했다.
문득, 내 삶을 스쳐 지나가려는 사람들이 떠올랐다. 예전 같았으면 붙잡으려 애쓰거나 상처받은 마음으로 작별의 인사를 준비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아침은 다르다. 이 세상이 매일 아침 베푸는 이 호사스러운 평화 덕분에, 나는 떠나는 사람에게 구태여 슬픈 작별을 고하지 않기로 했다. 그저 그들이 가는 길을 넉넉한 마음으로 지켜봐 줄 뿐이다.
이곳이 여전히 누군가에게는 치열한 전장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낯선 신개지(新開地)일지라도 상관없다. 내게 내려진 이 감사한 마음 하나면 충분하다. 나는 이제 내 곁을 스쳐 가는 모든 인연과, 고통스러웠던 어제의 나 자신까지도 너그럽게 배웅할 수 있을 것 같다.
창밖의 풍경이 오롯이 내 안으로 들어온다. 비로소, 정말 비로소 평온한 아침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