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불꽃의 문장
촛불
꺼지지 않은 채로
안간힘이 사방으로 퍼진다.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필사가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깨치는 촛불만이
고요히 방 한구석을 지키고 있다.
외롭다고 말해본들
외롭지 않더냐.
눈물을 흘린들 잊혀지더냐.
잊혀진들 모두 떠나지 않더냐.
열정을 가지고 살았던 날들이 새삼 그립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나날들,
그 사랑이 그립다.
사랑을 지니고 살았던 날들도 한때 있었다.
사랑이 넘실거렸던 시절,
그 희생이 너무 그립다.
내 어머니와도 같은, 촛불이시여!
[마지막 불꽃의 문장]
방 안의 공기는 서늘했다. 노인은 삐걱거리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양초 하나를 응시했다. 심지 끝에서 피어오른 불꽃은 금방이라도 사그라들 듯 파르르 떨리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사방으로 제 몸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작은 빛은 필사적이었다. 어둠을 한 치라도 더 밀어내 보려는 그 몸짓은 마치 절벽 끝에서 밧줄을 놓지 않으려는 손아귀 같았다. 노인은 그 빛을 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외롭다고 말해본들, 그게 어디 가겠느냐."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공허하게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눈물을 흘려봐도 슬픔은 잊히지 않았고, 잊으려 애를 써봐도 소중했던 사람들은 이미 모두 곁을 떠난 뒤였다. 고요한 방 한구석을 지키는 것은 이제 저 촛불과 노인의 그림자뿐이었다.
노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감긴 눈꺼풀 너머로 환상처럼 열정으로 가득했던 나날들이 일렁였다. 무언가에 미쳐 밤을 지새우던 청춘의 열기,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이를 품고 세상을 다 가질 듯 뛰어다니던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 열정 뒤에는 항상 사랑이 있었다.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마음을 적셨던 사랑.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태우고,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면서도 아까운 줄 몰랐던 그 희생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때는 나도 촛불처럼 뜨거웠지."
노인이 눈을 뜨자, 양초는 어느새 제 몸을 녹여 투명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 살을 깎아 빛을 만드는 그 모습은 영락없이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녹여내던 어머니의 등을 닮아 있었다.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히고, 결국 한 줌의 재로 남을지언정 결코 빛을 포기하지 않던 그 숭고한 뒷모습.
노인은 가늘게 떨리는 손을 뻗어 촛불 주변의 온기를 느꼈다. 비록 방 안은 여전히 고요하고 외로웠지만, 촛불이 뿜어내는 마지막 안간힘 덕분에 노인의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그리운 이름들이 비로소 환하게 깨어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홀로 타오르는 촛불은, 이제 노인에게 단순한 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나온 삶의 증거이자, 여전히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