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26화)

마지막 불꽃의 문장

by 씨킴


촛불



꺼지지 않은 채로

안간힘이 사방으로 퍼진다.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필사가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깨치는 촛불만이

고요히 방 한구석을 지키고 있다.


외롭다고 말해본들

외롭지 않더냐.

눈물을 흘린들 잊혀지더냐.

잊혀진들 모두 떠나지 않더냐.


열정을 가지고 살았던 날들이 새삼 그립다.

열정으로 가득했던 나날들,

그 사랑이 그립다.


사랑을 지니고 살았던 날들도 한때 있었다.

사랑이 넘실거렸던 시절,

그 희생이 너무 그립다.


내 어머니와도 같은, 촛불이시여!















[마지막 불꽃의 문장]


​방 안의 공기는 서늘했다. 노인은 삐걱거리는 의자에 몸을 기대고 책상 위에 놓인 작은 양초 하나를 응시했다. 심지 끝에서 피어오른 불꽃은 금방이라도 사그라들 듯 파르르 떨리면서도, 안간힘을 다해 사방으로 제 몸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 작은 빛은 필사적이었다. 어둠을 한 치라도 더 밀어내 보려는 그 몸짓은 마치 절벽 끝에서 밧줄을 놓지 않으려는 손아귀 같았다. 노인은 그 빛을 보며 나직이 읊조렸다.


​"외롭다고 말해본들, 그게 어디 가겠느냐."


​입 밖으로 나온 말은 공허하게 벽에 부딪혀 돌아왔다. 눈물을 흘려봐도 슬픔은 잊히지 않았고, 잊으려 애를 써봐도 소중했던 사람들은 이미 모두 곁을 떠난 뒤였다. 고요한 방 한구석을 지키는 것은 이제 저 촛불과 노인의 그림자뿐이었다.

​노인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 감긴 눈꺼풀 너머로 환상처럼 열정으로 가득했던 나날들이 일렁였다. 무언가에 미쳐 밤을 지새우던 청춘의 열기, 가슴속에 뜨거운 불덩이를 품고 세상을 다 가질 듯 뛰어다니던 그 시절이 사무치게 그리웠다.

​그 열정 뒤에는 항상 사랑이 있었다. 넘실거리는 파도처럼 마음을 적셨던 사랑. 누군가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태우고,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주면서도 아까운 줄 몰랐던 그 희생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 그때는 나도 촛불처럼 뜨거웠지."


​노인이 눈을 뜨자, 양초는 어느새 제 몸을 녹여 투명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제 살을 깎아 빛을 만드는 그 모습은 영락없이 자식들을 위해 평생을 녹여내던 어머니의 등을 닮아 있었다. 스스로를 태워 어둠을 밝히고, 결국 한 줌의 재로 남을지언정 결코 빛을 포기하지 않던 그 숭고한 뒷모습.

​노인은 가늘게 떨리는 손을 뻗어 촛불 주변의 온기를 느꼈다. 비록 방 안은 여전히 고요하고 외로웠지만, 촛불이 뿜어내는 마지막 안간힘 덕분에 노인의 마음 한구석에 묻어두었던 그리운 이름들이 비로소 환하게 깨어나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홀로 타오르는 촛불은, 이제 노인에게 단순한 불빛이 아니었다. 그것은 지나온 삶의 증거이자, 여전히 가슴 속에 살아 숨 쉬는 어머니의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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