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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수다 왕언니 May 12. 2023

'어머니'라는 공통점...

[한 여자_아니 에르노 저_열린책들] 을 읽고...

 봄 햇살 때문인지, 벚꽃의 빛깔 때문인지, 눈부시게 빛나는 어느 날 오후였다. 도서관에서 한 여자의 죽음에 관한 짧은 소설을 읽었다. 2022년도 노벨 문학상 수장자인 아니 에르노가 자신의 어머니의 죽음에 관해 써 내려간 글이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난 후 10개월에 걸쳐 썼다는 이 짧은 글은 어떤 은유나 비유도 없다. 눈물을 짜내는 신파도 존재하지 않는다. 시종일관 20세기 전쟁과 전후 힘든 삶을 헤쳐 나간 한 여인에 대한 기록이 분석적이고 객관적이다. 사실 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자전적이고, 에세이라고 하기에는 한 평생의 무게가 묵직하다. 나는 담담한 감정의 서술에 꾹꾹 눌러왔던 슬픔을 이야기의 막바지에 결국 참을 수 없어 터뜨려 버리고 말았다. 



나는 어머니의 폭력, 애정, 과잉, 꾸지람을 성격의 개인적 특색으로 보지 않고 어머니의 개인사, 사회적 신분과 연결해 보려고 한다.(중략) 하지만 내 안의 무언가가 뻗대고 있고, 어머니에 대해 순수하게 감정적인 이미지들을, 온기 혹은 눈물을, 의미 없이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함을 느낀다. 
p. 51~52 중에서...



 나의 어머니는 국민학교를 졸업하고, 그 시대 가난한 농촌 집안의 딸들처럼 남의 집 식모살이로 도시생활을 시작했다. 그리고 가난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22살 어린 나이에 첫 딸을 낳았다. 서울 변두리 단칸방에서의 삶은 팍팍했고, 연탄배달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무뚝뚝하고 배려심 없는 남편은 임신한 아내에게도 배달 일을 시켰고, 그런 남편을 호되게 꾸짖던 이웃집 할머니를 어머니는 두고두고 기억하고 있었다. 중고차 매매일에 뛰어든 아버지는 수완이 좋지 않아 벌이가 시원치 않았다. 어린 딸들을 두고 어머니는 여관 청소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고집 세고 주장이 강한 나는 육체적으로 힘들고 남편에게 사랑받지 못했던 한 여자의 한 풀이 대상이었다. 그래서 자주 맞았다. 옆집에 소리가 들릴까 봐 이불을 둘둘 싸서 때렸던 어머니가 참 고마웠던 밤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그래도 공부를 잘해 반장, 부반장을 도맡아 했던 그 딸을 어머니는 자랑스러워했다. 5학년 어느날인가 어머니가 다른 아줌마들과 간식을 들고, 학교를 방문했던 그날의 환한 미소를 나는 함께 기억한다. 



그녀는 나를 통해 배움에 대한 열망을 추구했다.
p. 57 중에서...



 어머니는 육체노동을 하지 않고, 딸들이 사무실에서 컴퓨터로 일하는 것을 시시때때로 감사한다고 말했다. 가난한 살림에도 어린 딸이 책을 좋아하는 것을 알고 비싼 전집을 할부도 들였다. 좁은 방에 책을 들이고, 돈을 썼다는 남편의 욕과 타박에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책 읽는 딸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옆집 여자들이 놀러 오는 것도 문 앞에서 막을 정도로 교육열이 높았다. 



나는 떠날 수 있기만을 꿈꿨다. 그녀는 내가 루앙의 고등학교에, 나중에는 런던에 가는 걸 막지 않았다. 
p. 66 중에서...



 결혼 전에 나는 자정이 지나 귀가하는 것도, 외박을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그 시대 다른 어머니들처럼 여자는 얌전히 지내다 좋은 남자 만나 결혼하는 것이 행복의 주문인 것처럼 말했다. 그래서 젊은 시절 술 먹고 춤추고 사람들과 어울리기 좋아했던 나는 친구들 사이에서 별명이 신데렐라였다. 12시를 넘길 수 없기 때문에...



편지들을 받아 보면, 그녀는 자신에게는 심심할 틈이 없다고 장담했다. 하지만 속에 품고 있는 유일한 바람, 그것은 나와 함께 사는 것. 어느 날엔가 수줍게 건넨 말. 
[내가 너네한테 간다면 집안일을 도맡아 해줄 텐데.]
p. 76 중에서...



 나는 아이를 낳고 만 3년을 꼬박 키웠다. 아이는 한 명만 낳기로 남편과 약속한 터라, 첫 경험이자 마지막일 것 같은 육아를 정말 열심히 했다. 3년을 채워가던 막바지에 우연히 다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머니는 나대신 손자를 초등학교에 들어갈 때까지 지극정성으로 키웠다. 주 중이면 딸의 집에서 손자를 키우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다. 금요일 퇴근하는 딸에게 인사말도 남기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버릴 정도로, 아이를 키우며 살림을 하는 일은 힘들었다. 


지금은 2월 말이고, 비가 잦고, 날씨가 제법 온화하다. 오늘 저녁 장을 보고 난 뒤 노인 요양원에 가봤다.(중략) 21세기의 언젠가, 내가 이곳이든 혹은 다른 곳에서든 냅킨을 폈다 접었다 하면서 저녁 식사를 기다리고 있는 그 여자들 가운데 한 명이 되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p. 76 중에서...



 나는 흰머리가 나이에 비해 많다. 2살 많은 남편과 비교해서 영락없이 뒷모습은 내가 노인에 가깝다. 70대 초반의 다른 노인들과 비교하면 나의 어머니도 흰머리가 많다. 유전인 듯하다. 몇 년 전 안압이 갑자기 올라가 수술을 하고 시력이 많이 떨어진 어머니를 보고 나는 염색을 멈췄다. 자극적인 화학약품이 시력과 얼마나 관련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혹시 나에게도 찾아올 시력저하가 두렵다. 저자의 어머니는 요양원에서 알츠하이머병으로 돌아가셨다. 나의 어머니는 70대 초반의 나이로 아직 건강하시다. 다행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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