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_버지니아 울프 저_민음사]를 읽고...
얼마 전 황당한 기사를 읽었다. 국민의 힘에서 저출산 해결을 위한 대책으로 30세 이전에 자녀 3명을 낳으면 군대를 면제해 주는 정책을 논의했다고 한다. 어이가 없어도 너무 없었다. 가장 기본적인 것을 망각했기 때문이다. 아이는 남자가 낳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낳을 수 있다. 지금이 21세기가 맞나 싶었다. 출산의 주체가 여성이라는 사실을, 가장 기본적인 것조차 왜 그들은 잊고 있었을까?
버지니아 울프는 혁신적인 서술 기법과 등장인물의 내면을 탐구하는 것으로 알려진 영국의 선구적인 모더니스트 작가이다. 그녀는 20세기 가장 중요하고 영향력 있는 작가 중 한 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번에 나는 에세이 '자기만의 방'을 읽었다. 이 에세이에서 울프는 여성이 자기 결정권을 갖기 위해서는, 연간 500파운드(현재가치로는 한화 5천만 원)와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여성은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언제나 가난했고, 이 두 가지가 있어야 리얼리티에 직면할 수 있으며 활기 넘치는 삶을 영위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리얼리티는 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문학계와 학계에서 여성들이 배제되고 있는 현실을 일컫는다. 이 작품이 페미니즘 문학의 획기적인 작품으로 간주되고 있는 이유이다. 또한 개인적 성찰, 문학적 분석, 사회적 논평을 결합하여 찬사를 받고 있다.
나는 그저 다른 무엇이 아닌 자기 자신이 되는 것이 훨씬 중요한 일이라고 간단하게 그리고 단조롭게 중얼거릴 뿐입니다.
버지니아 울프 디 에센셜 p.277 중에서..
20세기 초반만 해도 많은 국가에서 여성은 여전히 가정 내 역할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투표권과 같은 기본적인 권리가 부족했고, 직업을 갖고 경제적 부를 쌓기도 어려웠다. 영국에서 여성은 문학계와 학계에서 거의 배제되었으며, 교육 기회마저 없었다. 사회 경제적 제약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했다고 저자는 주장한다. 그래서 울프는 여성이 글을 쓰고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기에 자기만의 물리적, 정신적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21세기 나의 삶은 어떠한가? 나는 대학교육도 받았고, 원하면 직업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경력단절로 연간 5천만 원의 부를 쌓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선거권을 갖고 있어 국가적 현안에 내 생각을 투표할 수 있다. 남편보다 내가 더 오래 사용하는 공동의 서재가 있으니 공간도 있다. 그렇다면 울프가 말하는 자기 결정권을 나는 갖고 있는가? 나는 사람들과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누고 글을 쓴다. 글을 쓰면서 내가 어떤 사람인가 깊이 성찰하려고 노력한다. 그렇다면 나는 저자가 말하는 독립적 인간으로 옳은 삶을 살고 있는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성을 떠나 인간이기에 자기 결정권은 중요하다. 삶을 통제하고 외부의 제약 없이 행동할 수 있어야 한다. 결정권을 갖기 위한 필수 요소가 경제적 여유와 공간이라니, 지금의 현실과도 맞닿아 있다. 많은 젊은이들이 내 집마련과 파이어족을 꿈꾸는 것이 그 증거라고 생각한다. 돈을 좇는 삶은 피폐해질 수 있지만, 생계를 위협하는 가난도 사람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런 의미에서 울프의 주장은 꽤 일리 있다. 100여 년 전에 이런 사고와 성찰을 할 수 있었던 그녀의 지적 재능이 부러웠다. 국가정책을 논의하고 월급 받는 정치인들도 그녀의 식견을 10분의 1이라도 본받았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