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곳을 향해야 하는 교사의 시선

by 해뜨는집

“우리가 하는 말의 뜻을 모를 때는 어떻게 하지?”

“….”

“사전을 찾아야 하는 거야. 찾아 보면 모든 말의 뜻이 거기에 있어.”

“한번 찾아보자. 우리 학교 주변에 나무가 많지?”

“네.”

“창밖을 볼까? 저기 노란색 잎이 있는 나무가 있네. 저게 무슨 나무지?”

“….”


사전 찾기 수업을 계획했었다. 국립국어원 사이트에 들어가면 ‘표준국어대사전’이 나오고, 수시로 그 사이트를 이용하면 유용하다는 걸 말해주려 했다. 그런데 아이와 대화를 하던 중 막힌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전을 이용하는 건 좋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단어를 알아야 한다. 알아야 검색을 할 수 있다. ‘고슴도치’라는 이름을 모르면 검색을 할 수 없고, 하늘에서 내리는 게 ‘눈’이라는 걸 모르면 마찬가지로 찾아볼 수가 없다. 그런데 은행잎이 노랗게 달려있는 나무 이름을 모르니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가 없었다.


중학교 1학년 아이들 중에 기초학력이 좀 떨어지는 아이를 대상으로 한 수업이었다. 대개 이런 수업은 교육청에서 제공해주는 맞춤형 수업 교재를 이용하게 된다. 이 교재는 읽기, 쓰기, 말하기, 듣기 등의 국어 교과 영역이 분류되어 있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풀어갈 수 있는 설명과 문제 풀이 위주로 되어 있다. 예를 들어, 읽기는 1. 읽기의 원리와 방법, 2. 건의하는 글 읽기, 3. 읽기와 삶의 경험. 이런 식으로 나오니 하나하나 단계적으로 읽으면서 풀어나가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사전 찾아보기가 있으니 한번 해보고자 했던 것이었다.

아이가 나무 이름을 모르니 할 수 없었다. 그럴 수도 있지. 평소에 나무 이름을 거론하지 않는다면 천천히 돌아가려 마음을 먹었다. 그래서 아는 나무 이름을 모두 써보라고 했다. 우리 생활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나무들이다. 은행나무, 소나무, 벚나무, 사과나무, 감나무 등을 썼다. 서너 개를 쓰고 나서는 막막해하기에 대추가 열리는 대추나무도 있지 않냐고 했다. 아이는 바로 알아듣고는 그 이름을 적었다.


다 쓴 공책을 본 순간 깜짝 놀랐다. 수준이 좀 떨어지기는 해도 중학교 1학년인데 이 정도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아이가 내민 공책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음혜나무, 소나무, 벗꽃나무, 사과나무, 감나무, 배추나무”

은행이 음혜로, 벚꽃이 벗꽃으로, 대추가 배추로 바뀌어 버렸다. 역시 받침이 있는 단어는 어렵다. 그렇다고 받침이 없는 글자만으로 세상을 살아갈 수도 없는 일, 적어도 다른 사람들과의 맥락 있는 대화를 통해 언어를 이해하고 표현해야 한다. 그러니 걱정이다. 은행이 음혜가 되고, 배추가 나무 이름이 된다는 것은 말의 뜻이 아닌 소리만으로 대화한다는 것 아닌가?

확실히 아이들과 함께 활동을 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일과 만나게 된다. 20년 이상 아이들 수업을 담당했지만 여전히 생소한 상황은 적응이 잘 되지 않는다. 아이가 쓴 공책의 단어들을 보면서 스스로 반성도 했다. 아이들이 말을 하고 글로 쓰는 것에 대해서 내가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을 했구나. 이런 것조차 모르는 아이가 있다는 것에 대해서 알지 못한다면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인가? 이런 아이들이 곳곳에 있을 텐데, 수준이 높은 아이, 보통인 아이, 낮은 아이로 쉽게 삼 등분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일까? 교육의 목표가 균질적인 평균의 인간을 만드는 게 아니라 개개인의 특성에 맞춰 키워내는 것인데, 얼마나 넓은 스펙트럼을 교사는 가져야 하는가? 그 짧은 시간에 많은 생각을 했다.

코로나 이후 학생들의 기초학력 수준이 그 이전과 비교해 많이 낮아졌다고 한다. 교육부에서 발표한 ‘2021학년도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결과’에 따르면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2학년의 보통학력 이상 비율과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모두 전년도에 비해 낮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남학생이 여학생에 비해 기초학력 미달 비율도 3배 이상 높았고, 대도시 아이들에 비해 읍면 지역 학생들의 점수가 10% 이상 낮게 나타나기도 했다. 코로나가 만든 새로운 세상의 모습이다.


그래서 충청북도교육청에서는 ‘더배움학교’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교육 회복 지원사업의 일환으로 학습 동기를 강화하고 학업 역량을 향상하기 위한 것이다. 수준이 높고낮음에 상관없이 모든 학생들의 성장을 지향하는 방과후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수업의 조건이 참 아름답다.


학생 한 명을 대상으로 하는 강좌 개설 가능.

교사의 판단으로 필요한 수업은 개설 가능.

정규시간 이외에 아무 시간이나 수업 진행 가능.


돌봄이 필요한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도, 함께 책읽기를 하는 것도, 부족한 부분을 골라서 교사가 채워주는 것도 가능하다. 과외 형태도 가능하고 그룹 단위 레슨도 가능하다. 이런 이야기를 들었을 때 활용만 잘하면 정말 괜찮을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교사와 학생의 참여만 있다면 학원을 가는 것보다 훨씬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래서 여름방학 중에 드디어 한 명을 대상으로 수업을 열었던 것이고, 대상자는 1학년 동철이(가명)였다. 수업 시간에 거의 존재감이 없었고, 물어보는 말에도 말소리가 입술을 넘어 나오기가 어려운 아이였다. 그래도 선생님과 활동을 좋아했고, 늘 먼저 와서 기다리던 성실한 아니였다. 그러기에 나는 한 학기 동안 정규 수업을 담당했지만 단순하게 수준이 좀 떨어지는 지극히 내성적인 성향이라고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런 판단은 잘못되었다는 게 확실하게 드러났다. 친구들과 많이 다른, 접근 자체부터 다르게 해야 하는 아이였던 것이다.

그 후로 동철이와의 수업은 일반 수업과 달라야 했다. 말을 한 다음에 두 번 세 번 알아들었는지를 점검했고, 아주 기초적인 내용을 주고받았다. 받아쓰기를 다시 시작했고, 생활 주변에서 쓰이는 단어들을 떠올리게 했다. 우리나라 지도에서 충청도와 경상도를 구분하게 했고, 1년이 365일이라는 것과 4주가 모여서 한 달이 되는 것도 다시 설명해 주었다. 세계 지도를 놓고 나라 이름 찾기 퀴즈를 했고, 우리나라의 대기업 이름을 대보는 활동을 하기도 했다. 또한 이런 아이들에게 스마트폰이 좋은 동반자가 될 수가 있을 거란 생각을 했다. 내 뇌에 담을 수 없는 것을 스마트폰이라는 외뇌로 보완할 수 있다면 학습에도 도움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해서였다. 일주일의 수업은 이렇게 뜻하지 않은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 수업이 동철이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교사로서 가려지고 눈에 잘 띄지 않는 부분을 봐야한다고 일깨워주는 시간이 된 것만은 분명하다.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낮추면 그냥은 보이지 않는 걸 볼 수 있으니까.

지금 우리나라에는 수많은 동철이가 존재감 없이 학교를 다니고 있다. 수업 중에 교사가 학생에게 “알았지?”라고 말하면 “네.”라고 대답하지 않는 부류 중 많은 아이들이 동철이와 같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무사히 세상으로 내보내는 일도, 조금은 더 성숙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도 다 교사의 몫이다. 적어도 학교에서 교사가 어떻게 접근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은 분명하다. 경기도교육연구원에서 발표한 ‘1980년대 초등학교 학부모의 특성’이란 자료에 보면, 학부모들은 학교에서 인성 지도를 잘 하고 공동체 생활 경험을 내 아이에게 심어주는 것을 가장 우선시한다고 나타났다. 인성이라는 것도, 공동체 생활 능력도, 말귀를 알아듣고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나타내는 데에서부터 출발이 가능하다. 많이 궁리하고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다들 잘하고 똑똑하면 좋겠지만, 우리 주변에는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저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두가 함께 살아가는 게 사회 아니던가. 그리고 그들 모두는 소중한 우리의 이웃들이다. 역시 교육에 많은 것들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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